“하아, 씨이팔……”
늑대는 방 한가운데에 대자로 누워 온갖 불평을 뇌까리고 있었다. 대학가 주변의 허름한 원룸을 가득 채운, 유월의 뜨끈하고 꿉꿉한 공기가 늑대의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상황에서도 늑대는 온기를 원했다. 조금 더 농밀하고 끈적한, 자신의 모든 불평불만을 녹여버릴 만한 불꽃같은 온기를 갈망했다.
늑대가 대학에 입학한 지 어언 사 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간 늑대가 보낸 대학생활을 설명하자면, 이런저런 미사여구와 수식어를 덧붙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단 한 단어로 충분했다.
아웃사이더.
늑대는 오티도 엠티도 그 무엇도 참여하지 않았다. 생식 본능보다는 생존 본능이 앞섰던 과거의 경험이 축적된 탓이었을까, 아니면 얼마든지 세상을 홀로 살아나갈 수 있다는 치기 어린 신념 탓이었을까.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늑대는 결국 홀로 서기를 택했고, 학기 초에는 밤낮 구분 없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알코올을 들이켜는 저들을 바라보며 혀를 차곤 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늑대의 신념은 산산이 조각난 사금파리처럼 맥없이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학생활의 무자비성이 몸을 드러낸 것이다. 뒤처진 자에게 기회는 없다. 그 점이 바로 여태 안락한 초중고 시절을 보냈던 늑대가 간과했던 점이다.
좋으나 싫으나 익숙해진 얼굴들과 하루종일 교실에 몸이 매여 함께 시간을 함께 보내야 했던 초중고 시절과는 달리, 대학에서는 그런 유의 익숙함이 부재했다. 늑대가 강의에 집중하기 위해 맨 앞자리만을 고수하던 탓도 있었지만, 매 강의마다 달라지는 사람들의 자리 탓에 늑대는 그 누구의 얼굴도 외울 수 없었다. 심지어 강의가 끝나 복도로 나왔을 때는,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눈들이 텅 빈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혼란스러워했다.
이런 자잘한 부분까지는 늑대도 어찌저찌 버텨볼 만했다. 늑대가 백기를 들게 만든 결정타는 대학의 위치였다. 상권이라던가, 교통 문제라던가와 같은 구체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대학의 위치가 늑대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서울의 한복판이라는 점이 바로 그 문제였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십오 분만 나아가면 바다가 펼쳐졌던 고향과는 달리, 서울에서는 꺼지지 않는 전광판의 불빛과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늑대를 지나쳤다. 모두 어딘가 바빠보였고 지쳐보였다. 인파 속에서도 고독이 더욱 짙어질 수 있다는 점을 늑대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마음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가던 늑대의 고독이 절정에 달했을 때는, 마지막 남은 시험인 수학 시험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나도 연애하고 싶다. 같이 손잡고 산책하고, 밥 먹고 카페 가고 싶다. 영화를 볼 때 의도치 않게 팝콘 박스 안에서 손이 맞닿았으면 좋겠다. 그럼 상대는 무슨 반응을 보일까?
십 분 전만 해도 늑대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미적분학 내용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온갖 원초적이고 강렬한 열망이 서려 있었다.
늘 그랬듯 아무런 만남 없이 자취방으로 곧장 돌아온 늑대는 그간 생각만 하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애써 무시해왔던 일, ‘만남 앱’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앱은 일반적인 만남 앱과는 다른 경향을 띠었다. 늑대와 같은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앱이었으니 말이다.
“이게 맞나……”
늑대는 엎드린 채로 팔로 눈을 가리고는 꿍얼거렸다. 설치버튼을 누른 것만으로도 어딘가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애초에 자신과 같은 동성애자가 이런 특수한 경로를 거치지 않고 어떻게 연인을 만들겠는가. 길을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이가 나타났을 때, 다가가서 ‘안녕하세요, 그쪽이 마음에 드는데 번호 좀 알려주실래요?’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빨이 뽑히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돌연 출처를 알 수 없는 자신감에 휩싸인 늑대는 설치가 완료된 앱을 켰다. 빠른 속도로 이런저런 의미 없는 약관에 동의하고, 갤러리에 얼마 없는 자신의 사진 중에서 그나마 괜찮게 나온 것을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했다. 소개란에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어딘가 조잡해 보였기에, 늑대는 간단히 나이와 키 그리고 친하게 지낼 친구를 찾고 있다는 짧은 한 줄만 적어놓았다.
모든 기본 설정을 끝마친 후, 처음으로 메인 화면을 마주치자 늑대의 숨이 잠시 멎었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이 주변에 그토록 많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스크롤을 내리며 늑대는 수많은 프로필을 일일이 점검했다.
짧고 검은 반바지 밑으로 널찍한 허벅지를 자랑하는 호랑이부터 흰 티셔츠 위로 유두의 윤곽을 드러낸 용까지. 늑대의 동공이 확장됐다. 더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늑대에게 있어 잘 차려진 구첩반상이었다. 늑대의 심장이 힘차게 피를 내뱉었고, 더이상 늑대는 엎드려 있을 수 없었다.
왜, 왜, 왜 이런 걸 이제야……!
잔뜩 흥분에 휩싸인 늑대는 대자로 드러누워 바지와 드로어즈를 내렸다. 물론 자위를 하려는 건 아니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억압되어 있던 페니스가 당당히 고개를 들추려 하자 그 끝이 아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늑대의 자신감이 순식간에 휘발되고 말았다. 흩어진 자신감은 꿉꿉한 공기와 짝을 이뤄 사라졌고, 대신 늑대의 아웃사이더 기질이 발끝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온몸을 감쌌다.
이런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다고……
사실 늑대는 알고 있었다. 그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태도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도망치는 행위라는 것을. 그럼에도 타인에게 먼저 말을 걸기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겁이 많다는 것을. 결국 늑대는 아무에게도 메시지를 보내지 못한 채 휴대폰을 땅바닥에 엎어버렸다. 허공을 잠시 응시하다가 그것마저도 질렸는지 늑대는 눈을 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블라인드 사이사이로 비쳐 들어온 햇빛이 늑대의 온몸에 빗금을 긋고 있었다. 늑대는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욕망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였다. 핸드폰이 부산스럽게 알림 소리를 울린 것은.
늑대는 길쭉한 귀를 반으로 접은 채 핸드폰을 집어 올렸다. 보나마나 쓸데없는 학교의 공지 이메일일 터였다.
“어?”
늑대는 알림을 확인하자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왔다. 메시지가 왔다.
늑대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그냥 메시지가 온 거야.
하지만 늑대는 전혀 침착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간을 보기 위해 알림을 치우려 했으나, 실수로 터치하는 바람에 미끼를 물은 물고기처럼 채팅 화면으로 끌려가고 만 것이다. 디스플레이에 쓰인 문자는 늑대의 부풀어오른 심장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안녕하세요!
아무런 치장 없는 인삿말과, 그 밑에는 어디서나 보일 법한, 한 번 보고 나면 완전히 잊어먹을 것 같이 대충 생긴 개 이모티콘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럴 때면, 늑대는 현대의 기술이 미워지곤 했다. ‘읽음 표시’같은 기능은 도대체 왜 만들어 놓은 것인지. 뭐라고 답해야 할까. 늑대는 아무 잘못 없는 자신의 엄지를 노려보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늑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상대방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하지만 얼굴이나 몸을 자랑하는 사진이 놓여 있어야 할 곳에는 고작 중앙에 샛노란 보름달이 걸린 밤하늘 사진뿐이었다. 그 외에도 소개란에는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어떤 인연을 원하는지와 같은 사소한 정보가 한 글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어떤 종(種)인지라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씨, 잘못 걸린 거 같은데……”
늑대는 한숨을 내쉬고는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만에 온 첫 연락인데. 심지어 이걸 끝으로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앞으로도 내가 먼저 누군가한테 연락을 할 자신은 없고. 그런데…… 그래, 어차피 친구를 만드는 거잖아. 은밀한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 뭐, 메시지 몇 개 보낸다고 잡아먹히는 것도 아니잖아?
긴 상념 끝에 늑대도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그 다섯 글자를 입력해 놓고 전송 버튼을 누르는 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바늘구멍에 실을 넣을 때처럼 달달 떨리는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늑대의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메시지를 보내고 늑대는 한숨을 돌리기 위해 찬물을 마시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대방이 즉시 메시지를 읽고 답장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늑대의 답장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늑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앱에서는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게 관습인가? 저 사람은 겨우 내 프로필 사진 하나만을 봤을 뿐인데? 그리고 ‘저녁에 시간 되세요’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지? 뭘 하겠다는 건데? 산책? 영화? 술? 그것도 아니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냉탕에 빠져버렸다는 듯 늑대의 온몸이 얼어붙었다. 반응이 없는 늑대를 채근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던진 말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인지, 뒤이어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같이 밥이나 먹으면 어떨까 해서요.
늑대의 머릿속 세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항상 최악의 결과를 먼저 고려하던 늑대는 어김없이 이번에도 그 경우의 수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밥을 같이 먹는 것뿐이라면 나쁠 게 있을까. 아니,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없다. 오늘 저녁에 밥을 함께 먹고, 상대가 폭탄이라면 자리를 빠르게 파하고 집에 돌아와서 차단하면 된다. 만약 차단하지 않더라도 그 폭탄과 친해져 그를 다리로 이용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그러니까 더 마음에 드는 이들에게 접근하기 수월할 것이다. 아무튼 나보다는 발이 넓을 테니까. 이건 절대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좋아요. 어디서 만날까요?
늑대는 이번 메시지를 보내며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펑퍼짐한 꼬리가 바닥을 쓸었고, 입가에는 야릇한 미소가 퍼지고 있었다.
*
저 타미 힐피거 흰색 티셔츠에 밝은 회색깔 고무줄 긴바지 입고 있어요.
늑대는 약속 장소인 학교의 정문 앞에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고 있었다.
저 도착했는데……
늑대는 무언가를 입력하다가 다시금 싹 지워버렸다. 입력 칸 위의 커서가 아무 의미 없이 깜빡거렸다.
약속 시간인 여덟 시까지 단 일 분.
늑대의 눈앞이 핑 돌기 시작했다. 막상 의문의 상대와 만나려 하니 긴장이 몸을 지배했던 것이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고, 귀가 자꾸만 팔락거렸다. 유월의 늑장을 부리는 해와 아직까지 펼쳐진 검푸른 하늘, 그리고 축축한 공기는 더이상 늑대의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괜히 나온 걸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갑자기 이렇게 만나도 되는 걸까. 심지어 그렇고 그런 앱에서 만난 사람을……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늑대는 모종의 체념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초록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4차선 횡단보도를 틈 없이 가득 메워 건너갔다. 순서와 질서 따위는 사치라는 듯, 사람들로 이루어진 물결은 신호가 빨간불로 바뀐 후에도 이어졌다. 그들의 어깨가 부닥치지 않는 것을 늑대는 신기하게 여겼다.
그때였다. 건너편에서 이목을 끄는 곰 한 마리가 황급히 이편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면, 삼대가 멸망한다는 저주라도 들은 것일까. 곰은 육중한 몸을 던져 인파에 묻혔다.
물론 흔한 풍경이었다. 달음박질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그닥 진귀한 광경이 아니니까. 늑대의 이목이 끌린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그 곰의 몸이었다. 키가 얼마나 컸는지, 사람의 물결 속에서도 머리가 빠끔히 튀어나와있었고, 검은 티셔츠 위로 드러난 가슴의 윤곽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심지어 흔히 볼 수 없는 털의 패턴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공기 중으로 드러난 곰의 몸은 전체적으로 푸른 빛을 띠는 흰 털로 덮여 있었는데, 특이사항이 있다면, 손과 발끝으로 갈수록 검어졌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몸이 ‘날 좀 봐주세요’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늑대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내가 저런 몸을 가졌으면, 거울 보면서 자위를 했을 텐데.
머릿속의 브레이크가 빠진 늑대는 온갖 몽상을 피우며 힐끔힐끔 곰을 쳐다보았다.
횡단보도를 건넌 곰은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듯, 핸드폰을 일별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도 누구를 만나기로 한 걸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보네. 부럽다. 진짜 뒤지게 부럽다……
늑대는 대놓고 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곧 지나갈 사람인데, 눈요기를 하는 게 그렇게 나쁠 일인가. 늑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욕망을 표했다.
“아……”
늑대는 고개를 홱 돌렸다. 곰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너무 빤히 쳐다봤나. 뭐라 하면 어떡하지. 팔뚝 굵기만 봐도, 한 대 맞으면 양악 수술이 필요 없을 거 같은데. 그래도 사진 같은 건 전혀 안 찍었으니 봐주지 않을까. 그래, 눈 마주친 거 하나로 사람을 반으로 접지는 않겠지. 제발 저 사람이 만나야 하는 사람이 빨리 좀 나타났으면……
늑대는 왼쪽으로 또르르 눈을 굴려 몰래 상황을 염탐했다. 그 순간, 늑대의 손끝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곰은 늑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늑대와 곰 사이에는 단 열 발자국 정도의 거리만 남아 있었다.
왜지? 왜 나한테 오는 거지? 설마 3초 정도 쳐다봤다고? 진짜로 그것 때문에?
늑대가 이미 만남 앱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어버렸을 무렵이었다. 늑대의 퓨즈를 싹둑 잘라버린 건 곰의 목소리였다.
“맞으시죠?”
곰은 휴대폰을 들어 늑대와 나눈 채팅을 보여주었다. 늑대의 화면에서 좌우가 뒤바뀐, 거울을 비친 것 같은 화면이었다.
“아……” 늑대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내뱉다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네, 네. 맞아요. 저……”
늑대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우유를 쏟은 초등학생처럼 기계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뿐이다.
곰은 씨익 웃더니 조용히 늑대를 바라보았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전신이 연회색과 흰색 털로 뒤덮인 늑대를 찬찬히 분석하는 것 같았다. 둥글고 길쭉한 귀와 그 안의 뽀얀 속털을, 앙증맞은 흰 눈썹을, 특출나게 멋들어진 것은 아니어도 군살 하나 없이 딱 알맞은 몸의 크기를, 풍성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그 꼬리를, 곰은 음미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늑대는 어딘가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늑대 역시 가만있을 수 없었다. 늑대는 곰과 마찬가지로 찬찬히 곰의 온몸을 뜯어보았다. 검은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두툼한 허벅지는 곰이 사내대장부라는 사실에 이견을 달 수 없게 구두점을 찍었다. 가까이서 보니 모질(毛質)도 거칠어 보였다. 샤워를 하고 나서 털을 대충 말리는 타입인 듯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곰의 몸에서 두드러진 부위는 눈이었다.
역안.
곰의 눈은 역안이었다. 흰자위가 있어야 할 자리에 검은자위가, 그 중앙에는 푸른 눈동자가 보석처럼 박혀 빛나고 있었다. 역안을 실제로 보는 것은 늑대도 처음이었다. 불과 이십 센티미터 정도 사이를 두고 그 눈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늑대는 온몸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뭐 먹으러 갈까요?”
늑대가 제정신을 차리게 만든 것은 우렁우렁한 곰의 목소리였다. 몸만큼이나 거대하고 나직한 목소리였다.
“네, 네? 아……” 늑대는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저, 저는 아무거나 괜찮은데…… 그, 그러니까, 요 앞에 파스타 집이 생겼다는데, 아, 파스타는 저녁으로 별로인가……”
늑대의 꼬리가 돌판처럼 빳빳해졌다. 왜 마음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조별과제 할 때는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도 쉽게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었는데. 정작 필요할 때가 되자, 목 안에 불로 데운 쇠꼬챙이라도 박힌 듯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 모습을 본 곰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의도가 다분한 기습을 건넸다.
“실물이 더 나으신데요?”
늑대는 이번에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떨구고 자신의 흰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그때 자신의 꼬리가 살랑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늑대는 평생 모를 것이다.
“그럼, 제가 아는 곳으로 갈래요? 그래도 제가 이 주변은 잘 꿰고 있거든요.”
“네, 네?” 늑대의 어깨가 흠칫했다. “아, 네! 좋아요……”
곰은 피식 웃고는 늑대의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다.
“귀엽네……”
곰의 혼잣말은 늑대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아, 오늘 종강했다구요?” 곰은 능숙하게 삼겹살을 먹음직스러운 크기로 자르며 말을 이었다. “처음으로 한 학기 마쳐본 소감은 어때요?”
“그냥저냥 흘러가더라구요…… 눈 떠보니 종강이었어요.”
“에이, 원래 일 학년 때가 제일 재밌는 건데. 엠티 간다고 하면 전날부터 설레고 그러지 않았어요? 저는 일 학년 때 맨날 술만 마셨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고생하고 있지만.”
“어, 지금 대학생이세요?”
“제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요?”
“아뇨,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농담이에요. 졸업반이에요.”
곰은 키득거리며 늑대의 앞접시에 잘 익은 고기를 놓아주었다.
“아, 이렇게 일부러 안 놓아주셔도…… 제가 집어 먹을게요.”
늑대의 예상과는 달리, 만남은 몹시 평범하게 흘러갔다. 늑대와 곰은 캠퍼스 앞의 흔하디흔한 가성비 좋은 삼겹살집에서, 대다수의 20대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시간을 보냈다. 늑대가 아주 약간이나마 기대했던 ‘특수한’ 이야기는 싹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늑대가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늑대는 연인에 앞서 마음이 맞는 친구를 갈구했었다. 머릿속에서 단어가 잘게 부서지던 처음과는 다르게, 어느덧 편안해진 분위기 속에서 늑대는 곰에게 자신이 보낸 외로운 대학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서울의 비정함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상하게 이 사람 앞에서는 말이 거리낌 없이 잘 나오네.
풀기 없는 상추에 그닥 품질이 뛰어나지 않은 삼겹살을 싸서 입에 우겨넣은 늑대는, 제스처까지 사용해가며 자신의 케케묵은 감정을 토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편안한 분위기가 흐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곰이라는 점을 늑대는 몰랐다. 늑대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고, 적절한 질문을 던지며 자연스레 늑대의 안에 엉킨 실을 뽑아내는 행위가 화려한 사회적 기술이라는 점을, 아웃사이더인 늑대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그러니까요. 다들 시험 기간이 되니까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오더라니깐요. 물론 저도 그랬지만.” 늑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시험 기간에는 다들 그렇죠. 근데…… 혹시 술 드실래요?” 곰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술이요? 저 술은 못하는데……” 늑대가 말꼬리를 늘렸다.
“음, 그럼 어쩔 수 없죠. 저 혼자만 마셔도 될까요?” 곰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취할 정도로 마시지는 않을게요. 딱 한 병만 시킬 거니까.”
“그, 그럼!” 늑대가 돌연 소리쳤다. “저는 맥주 시켜주세요……”
사실 늑대는 오래전에 단 한 번, 생맥주 오백 밀리미터를 마시고 위액을 게운 적이 있었다. 물론 늑대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변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행위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날 뼈저리게 느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드센 고개를 넘어 성사된 ‘특별한 사회적 교류 시간’인가를 고려해 보면, 답은 하나였다. 늑대는 나중에 다가올 역경이 어떻든 간에 지금 이 분위기를 이어 나가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곰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늑대는 자충수인 줄 알면서도 앞으로 발을 내디딜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안 드셔도 돼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마실 수 있어요.”
곰은 잠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늑대를 바라보더니 이내 쓴 미소를 지었다.
“무리하진 마요.”
그러고선 몸을 돌리고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사장님! 여기 참이슬 하나랑 테라 하나요!”
예상했듯, 늑대는 얼마 못가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파리해진 얼굴로 늑대는 기름 범벅이 된 테이블에 뺨을 묻었다. 연신 물로 입안을 헹궜는지 입가의 흰 털은 반들반들하게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정신 하나만큼은 말짱했다. 이것이 늑대가 알코올을 기피하는 이유였다.
역시 괜히 먹었나……
다들 술을 마시면 알딸딸해져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던데, 늑대는 그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늑대의 경우에는, 뱃속에서 우글거리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버티기 힘든 욕지기만이 치밀어 오를 뿐이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그 고통을 전부 감당한다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었다.
“괜찮아요?”
늑대가 거친 숨을 몰아쉬자, 한 병을 깔끔히 비워내고도 별다른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 곰이 물었다.
“……아니요.” 늑대는 힘겹게 대답했다.
“일단 나가죠. 계산은 제가 할게요.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있어요.”
늑대는 그 말을 듣고 가게 밖으로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눈앞이 핑그르르 돌았고, 하늘 중앙에 걸린 달이 어쩐지 처량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데도, 쥐가 약간 갉아 먹은 듯한 모양의 보름달에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월 중순에도 의외로 찬 바람이 불어와 늑대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때였다. “꽤 쌀쌀한데요?” 곰이 밖으로 나와 자연스레 늑대의 목에 팔을 둘렀다.
잠시 늑대의 숨이 멎었다. 급작스러운 육체적 접촉에 의한 당황 때문이라기에는, 다른 이유가 월등히 컸다. 곰의 온기가 너무나도 따스했다. 그게 전부였다. 어쩐지 울컥해진 늑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게요.” 늑대는 어떻게든 잇새로 말을 짜내었다.
“오늘 재밌었어요. 늦었으니 이제 집에 갈까요? 저는 집이 거리가 조금 있어서…….”
늑대는 어떻게든 곰을 묶어두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 그럼 저희 집이 여기 바로 앞인데, 자, 자고 갈래요?”
늑대는 충동에 휩쓸린 뒤에야 자신이 어떤 말을 내뱉었는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조졌다. 이건 진짜 돌이킬 수 없다. 왜, 왜 그런 말을 해서. 술기운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메스꺼운 감각은 알알이 살아있는데……
늑대의 의도는 이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두루두루 통용되는 ‘자고 갈래’라는 파격적인 단어의 조합을 늑대는 순수한 의미로 사용했을 뿐이었다. 늑대는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곰과 함께 있고 싶었다.
짙은 상념의 늪에 빠진 늑대를 밖으로 휙 끌어올린 것은 곰의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그 웃음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하, 하하……” 늑대는 영문을 몰라 일단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진짜 웃기네.” 곰은 웃음을 멈추고 엄지로 눈가를 훔치며 말을 이었다. “본인이 귀엽다는 걸 알고 있나 봐요?”
늑대의 모든 감각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시각, 청각, 후각을 포함한 모든 감각기관은 더이상 아무런 정보도 처리하지 않았다. 움직임을 보이는 부위는 무의식적으로 잘게 떨리는 입술뿐이었다.
곰은 그 상태에서도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갔다. 무릎을 살짝 구부려 늑대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씨익 웃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나 홀리려고 그런 거지?”
혹시 소설도 야쓰 나오면 짤림??? 뒤에 다 썼는데 올려도 되는지 모르겄네
잘릴거 대비해서 아카에 올리면 될듯
확률적으로 짤리니 아카에도 올리는걸 추천함
나 2편 급해
존나풋풋하네...
진짜 좋아. 더 써줘...!!!!!
귀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