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야!”
별안간 경적과 함께 우렁찬 고함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어깨를 들썩한 나는 고개를 홱 틀었다. 시장 입구 부근, 그러니까 대여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작은 주차 공간이 하나 조성되어 있었다. 주차장이라기보다는 조금 넓은 갓길에 가까울까. 아마 시장을 방문한 이용객들이 주로 사용하는 곳인 듯싶었다.
차종도 크기도 들쭉날쭉한 차량들 사이로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띄었다. 크기나 형태보다는 그 관리 상태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찌그러지고 긁힌 부분 하나 없이 광택으로 매끈한 검은색 승용차 한 대. 앞면에는 문외한도 곧장 알아볼 법한 엠블럼이 달려 있었다.
운전석 창문은 열려 있었다. 그 너머로부턴 후덕하고 건장한 호랑이 수인 하나가 앉아 이쪽을 향해 손을 홰홰 흔들고 있었다. 눈가에는 웬 검은색 선글라스를 하나 쓴 채다. 눈을 확인할 순 없었으나, 주둥이 끝을 씩 비틀어 올린 것을 보건대 아마 웃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다, 여기.”
간만에 보는, 최호범의 아버지였다.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고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뒷좌석 문을 조심스레 여니 시원한 바람이 볼을 홱 훑고 지나갔다. 가게 천장에 매달린 녹슨 에어컨이 구색만 갖춰 둔 고물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안쪽은 널찍했다. 잘 끼어들면 너덧 명도 거뜬할 법한 좌석 두 개는 전부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향제 냄새로 은은한 오동색 시트는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목 부분이 조금 빛바랜 것을 보면 새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많이 덥지?”
조수석엔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선글라스를 걸친 채다. 샐샐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모습을 보니 일종의 장난인 모양이었다. 슬쩍 내려간 렌즈 너머로 드러난, 맹수답지 않게 부드러운 노란색 눈동자.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꾸벅, 방금처럼 목례한 내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호범이는요?”
그러곤 이렇게 물었다.
“야구부는 벌써 부원끼리 버스 타고 갔지, 짜샤.”
껄껄거린 최호범의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제야 바보 같은 질문이었음을 인지한 나는 민망하게 따라 웃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당연하지 않은가. 나 같은 일개 관객이 아닌 대회에 직접 출전하는 최호범은 진작 경기장에 도착했을 텐데.
“아이고, 연우 너도 어제 그놈이 하는 짓 봤어야 했는데. 도연우 꼭 데려오라고 아주 오만 난리도 아니야.”
“음료수 마실래? 콜라랑 주스 중에 뭐가 낫니?”
“아…… 아무거나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자자, 그럼 출발합시다!”
우렁차게 외친 최호범의 아버지가 페달을 밟았다.
딸기 음료수를 받아든 내가 다시 한 번 목례했다. 이어 등받이에 몸을 기대곤 창밖으로 시선을 슬쩍 던졌다. 괄괄하기가 기차 화통 같은 주인과 달리 고급 승용차는 소리 하나 없이 스르르,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속도가 붙기 시작하니 풍경도 금세 바뀌었다. 3분 정도 지나자 그나마 눈에 익었던 것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넓고 기다란 도로 중간마다 세워진 교통 표지판, 그리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설치된 내비게이션만이 목적지를 이따금 상기시켰다.
“녀석이 날 닮아서 운동은 참 잘한단 말이지.”
“뱃살부터 빼고 그런 소리 하셔요.”
“연우, 아나? 이 아저씨가 대학 때 럭비를 했는데…….”
앞좌석을 차지한 두 부부는 참으로 화기애애했다. 불과 십여 초 만에 선글라스를 벗어던지고는 시도 때도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화제도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아들 자랑으로부터 시작해 수십 년 전 대학 시절 이야기, 일과 취미, 단순 농담 따먹기까지도.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늘 적응이 되질 않았다. 내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이란 파도처럼 밀려드는 질문에 빠짐없이 대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창문에서 떼어낸 시선은 웃고 떠드는 두 사람에게 옮겨간 지 오래였다. 어디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온전한 가족.
부럽다기보다는, 까마득한 무언가.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차츰 나다니는 차량이 사라지기 시작하는도로. 약간의 틈을 두고 심어둔 가로수. 갈비뼈 같은 가지에 흐드러진 이파리를 보다 보니, 문득 어머니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호범이 좋아하는거 티 다 내고 다니네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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