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하면 다시 보겠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 불만도 기대도 없었다마는, 어째서일까. 최호범의 이야기를 듣는 나는 묘하게 들떠 있었다. 처음으로 지금을 괴롭히는 걱정 대신 막연한 앞날에 찾아올 무언가를 상상한 것이다. 이를테면 이른 아침 교실, 나를 알아보고 다가올 친구들.
창가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최호범.
“그래. 그때 보…….”
“좋았어, 그럼!”
나지막이 대답하려던 내가 어깨를 들썩했다.
“우리도 소고기다!”
운전석 쪽에서 우렁찬 고함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퍼뜩 차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널따란 도로에 합류한 검은색 승용차는 이제 막 강을 건너는 와중이었다. 껌뻑거리는 헤드라이트는 다리 너머 도심을 향해 있었다.
“야구부보다 훨씬 좋은 곳 가서 먹어야지, 엉? 명색이 MVP신데.”
“연우는 소고기 좋아하니?”
“네?”
식겁한 내가 고개를 틀었다. 데려다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이 이상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아뇨, 저는…… 괜찮은데.”
“괜찮다네요, 여보.”
“소고기 별로다 싶으면 말하고. 아저씨가 여기 맛집 빠삭하거든?”
“아뇨. 그게, 그러니까.”
대화가 묘하게 엇나가고 있었다. 나는 허둥지둥 손짓까지 해가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안 데려가 주셔도 괜찮아요.”
“어허!”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최호범의 아버지가 곧장 씁 소리를 냈다.
“어른이 사 주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래도…….”
“고기 한 판 비울 때까지 집 절대 안 데려다 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어투는 짐짓 엄했다만, 백미러에 비치는 얼굴엔 짓궂은 웃음기로 가득했다. 농담을 마냥 농담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오른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조수석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아주머니 또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미리 말을 맞춰둔 모양이었다.
“아, 배고프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최호범 또한 별 도움이 되질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우는 꼴을 보면 애초에 도움을 줄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고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좌석에 늘어진 굵다란 꼬리는 드럼 스틱처럼 시트를 툭툭 두들기고 있었다.
이것이 순수한 호의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단순한 동정으로 지레짐작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으로부터 시작해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 준 것도, 어쩌면 집이 물에 잠긴 가족에게 방 하나를 내어주었던 것까지도. 전부.
아마 모두가 그랬을 터였다. 수학여행 비용을 대신 내 주겠다던 담임 또한 이들과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몰랐다. 설사 다른 의도가 섞였다 한들 큰 상관도 없을 테다. 친절과 선의는 무엇으로 포장하든 친절과 선의이니까. 베푸는 이가 베푼다면 받아들이는 이는 기꺼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 일이니까.
다만…….
“……감사합니다.”
끝끝내 미소 지은 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즐겁게 떠드는 호랑이 가족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창밖을 바라보려다 말고,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온종일 앉아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주머니 속에 들어간 지폐는 네모반듯했던 형태를 잃고 꾸깃꾸깃하게 변해 있었다.
지폐를 어루만지던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승용차는 이제 막 먹자골목에 들어가는 참이었다. 여름도 이젠 슬슬 끝자락인지, 방금까지만 해도 새파랗던 하늘은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고물 에어컨 앞에 서서 더위를 식히던 어머니의 얼굴만큼이나.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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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듈아와줘서 고마어
호범이네로 시집가자 - dc App
연우야 행복해야해.... 근데 왠지 이 이후에 몬가가 일어날거같은 불길한 예감이.. - dc App
주인공 자격지심 숨막히네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