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 안 불편함?”

“존나 불편할걸. 저 새끼 다리 존나 딱딱해.”

“걍 여기 앉든지.”


1학기만 해도 생면부지였던 녀석의 친구들은 어느새 내게 호의적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처럼 저들끼리의 대화에 끼워주기도 하고, ‘죽부인’ 따위의 농담 섞인 호칭으로 부르기도 하고. 심지어 최호범이 곁에 없을 때조차도 나를 발견하면 알은척을 해 오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달갑게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소위 ‘최호범 무리’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쯤은 사무치도록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동도 게임도 못하고, 하물며 말주변까지 없는 왜소한 동급생. 하는 일이라곤 이렇게 얌전히 앉아 이야기 들으며 웃기가 전부.


이건 무슨 사극 속 애첩도 아니고.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떨쳐내기가 영 힘들었다. 콧방귀라도 뀌듯 픽픽 웃은 나는 눈동자만 떼굴떼굴 굴려 주변을 훑었다. 점심이 끝나기까지 십여 분도 남지 않았건만, 자리를 뜨려는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외레 옹기종기 모인 인원이 아까보다도 더욱 불어난 듯했다.


원래도 그러했지만, 요즈음 들어 최호범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하다시피 했다. 정확히는 야구대회 결승에서 녀석이 MVP를 수상했다는 현수막이 교문에 걸린 이후부터였다. 이라는 문구는 참 화려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야구광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교장은 무려 공중파 뉴스에 송출된, 녀석과의 짤막한 인터뷰 영상을 아침 조례 시간에 틀어주기까지 했다. 흙과 땀이 말라붙은 유니폼을 걸치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은 같은 남자가 봐도 늠름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녀석에게 사람이 몰려드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두머리의 성격이 수더분한 덕택에 누구든 이 모임에 편하게 끼어들 수 있었고 말이다. 지금에 이르러서 이곳은 일종의 만남의 광장, 그 비슷한 무언가로 변모한 지 오래였다.


“어우. 뭔 놈들이 이렇게 많아.”


결국 오늘의 모임도 종이 울리고 한참이 지나고서야 파하게 되었다.


5교시를 맡은 대머리 담임은 앞문을 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눈치를 줬음에도 떠나는 기색이 없자 나무 회초리로 교탁을 두어 번 두들기기까지 했다. 통통, 장구 같은 소리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던 학생 몇몇이 아쉬움과 장난 섞인 야유를 내뱉었다.


“한 대씩 맞기 싫으면 후딱 돌아가라.”


그런들 담임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지만.


그제야 학생들이 우르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온갖 이야기가 오갔다. 교과서나 체육복 따위를 빌려달라는 부탁으로부터 시작해서, 숙제를 베껴 갈 수 있냐는 둥, 혹은 학교가 끝나고 어디로 놀러갈지 정하는 것까지도.


나도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늑대가 차지했던 의자에 걸터앉고는 옆을 흘끔 보았다. 벽에서 등을 떼어내고, 의자에 앉은 그대로 주섬주섬 책상 앞으로 옮겨 가는 최호범. 흡사 통나무 같은 넓적다리는 교복이 아래로 짓눌려 있었다.


“안 무거웠어?”


기지개를 쭉 켜던 녀석이 이쪽을 돌아보곤, 슬쩍 웃었다.


“개 가벼운데.”

“그럼 다행이고.”


나 또한 웃기나 했다.


2학기에 들어서면서, 나와 녀석과의 관계는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내 앞에서 바위처럼 무뚝뚝했던 녀석은 다소 무르게 변했고, 날을 세우고 경계하던 나는 녀석을 받아들였다. 단둘이 있을 때엔 이렇게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킬킬거리기까지도 했다.


어쩌면 원래대로 돌아갔다는 표현이 더욱 옳을지도 몰랐다. 이 세상에 어머니와 아주머니, 그리고 나와 최호범만이 있는 줄로만 알았던 그 어린 시절로 말이다. 찰떡처럼 붙어서 거실을 쏘다니고, 서로 부둥켜안고 잠들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봐도 마냥 즐겁던.


그런 친구.


“그 새끼들 그냥 못 오게 할까?”

“뭐? 왜.”

“귀찮잖아.”


물론 그때와 달리 지금의 내겐 눈치와 염치라는 것이 있었다. 최호범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또 내가 얼마나 초라한 사람인지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누리는 일련의 특권, 내지는 편안함 또한 녀석이 베푼 호의에 불과하다는 사실까지도.


녀석이 나와 그토록 친해지고 싶어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이젠 아무렴 괜찮았다. 애초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내게 필요한 신조라면 그저 녀석의 우정을 얌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것이 주는 달콤함에 너무 취하지 않는 것 정도일 테니.


그럭저럭 친한 소꿉친구.


그러나 너무 깊숙이 다가가지는 않는.


“뭐라는 거야.”


딱 그 정도 거리감이 낫겠지.


결론내린 내가 피식 웃었다. 아까 보았던 것처럼 최호범의 어깨를 주먹으로 밀쳐 보기도 했다. 허벅지와 마찬가지로 통나무처럼 단단한 팔뚝은 밀려나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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