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특별한 이유는 뭘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있어서?


1년을 잘 버텨온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줄 수 있어서?




가족을 모두 잃고 난 이후로 내게 새해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하루에 불과할 뿐 살아가는 것 자체가 괴로울 뿐이었다.




출소 후에도 분명 똑같을 것이었다. 옆에 있는 이 남자가 없었더라면..






"...어디 가려고."






조금의 뒤척임에도 내 몸을 감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는 이 남자.


대형 육식수인 곰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몸 여기저기에는 흉터가 있어 주변의 공기마저 차갑게 만드는남자지만.


지금은 그저 자신의 큰 덩치를 나를 자신의 품에 가두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냥 조금 더워서요"






한 겨울에 덥다는 말이 우습게 들리겠지만.


온몸에 털이 빼곡하게 나있는 수인이라는 특성상 인간만큼 추위에 약하진 않다.


특히, 열량 덩어리인 곰과 몸을 맞대고 있으니 더욱 덥게 느껴지는 것 같다.






"조금만 참아."






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곰은 나를 풀어주기는커녕 더욱 끌어안는다.


조금만요. 작게 바둥거리며 애원하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과 귓가에 느껴지는 축축한 곰의 혀뿐이다.






"하윽...."






꼬리와 귀가 약점이기에 건드리지 않는 것은 수인들끼리의 불문율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이 곰은 내 반응에 재미라도 들린 듯. 시도 때도 없이 귀를 깨물거나 핥는다.


진지하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도 능글맞게 넘어가 버려 이마저도 포기했다.




이런 나의 포기 선언을 잘 알고 있는 곰은 큭큭거리며 승리를 만끽한다.






"시팔"






곰과의 첫 만남에서 들었던 말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출소 후 처음으로 마주했던 사회라는 벽에 범죄자라는 나를 끼워 넣을 곳은 없다고 느꼈던 그때는


비를 피하는 것조차 나에겐 사치라고 느꼈던 시간이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겁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서


나를 구해준 남자가 해준 말을.. 어찌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문득...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친구가 키우던 애완 새가 너무나 탐이 났고 나는 하루가 멀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그것을 가지겠다고 앙탈을 부렸었다.


아버지의 절대 안 된다는 불호령에도 눈물을 흘려가며 애원하던 나를 어머니는 쓰다듬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부모님을 잃고 난 뒤로는 단 한 번도 떠오른 적이 없었는데...




나는 몸을 돌려 곰을 바라본다..


곰또한 아무런 반응도 없이 나를 바라볼 뿐이다. 


이남자라면.. 알고있을까...






"있죠."






"뭐가있는데."






늘 대화를 시작하는 말과. 항상 똑같은 반응.. 


변함없는 짓궂음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 이남자라면 분명 알려줄 것이다.






"저한테 엄청 엄청 소중했던 사람이 해준 말이 있거든요?"






"그런데"






"몇 년을 까맣게 잊고살다가.. 방금 막 머릿속에서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뭐"






남들이 보기엔 시큰둥한 반응일지 모르겠지만.


곰은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정말 관심이 없었다면 대답조차 해주지 않았을 테니까.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 알려주실래요..?"






궁금한것을 물으면 곰이 알려준다.


그것이 엉뚱한 질문이라도 곰은 항상 알려주었다.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처럼..






"...무슨말인데?"






툴툴거리면서도 나의 이어질 말에 집중하는 곰.






" 알을 깨고 태어난 아기 새는 제 눈으로 처음으로 본 것을 어미라 여긴다."




.


.


.




"...너... 새였냐...?"






내 말을 들은 곰은 전혀 몰랐다는 듯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분명 의미를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나를 놀리는 것 같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또 나만 진지했지...


투정부리는 내 반응을 재밌어하던 곰은 손을뻗어 내얼굴을 만지작거린다.


얼굴에 있는 털결을 보드랍게 만지면서도, 가볍게 코를 눌러 장난을 친다.


그러기를 몇 분. 






"그래서 대답이 궁금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곰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표정이 즐거운 듯해 보이니 오히려 내가 불안해진다.








"맨입으로는 좀 그렇고"






곰은 이미 가까웠던 얼굴을 가져다 댄다.


불과 몇cm 도 되지 않는 거리,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만큼이나 가깝다.


아.. 그 뒤로 나올 말이 뭔지 알 것만 같다.






"한번 해주면 알려줄 마음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떠냐?"






"아까... 낮에 했잖아요..."






출근을 하지않았던 터라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던 우리는 소파에 누워 영화를 같이 봤었다.


의례 그렇듯 연말에 잘 어울리는 영화를 재밌게 보고있었는데...


지루하다는 핑계를 대던 곰은 그대로 소파에서 나를 덮쳤다.


아직도 털끝에 정액 냄새가 남아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뭐. 대답 듣기 싫어?"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치사하게 그걸 빌미로 협박을 하다니...


이미 결론이 나왔다는걸 아는 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조용히 속삭인다.






"이번엔 진짜. 안 아프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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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마"






귓속에 들리는 곰의 목소리에. 움찔하고 몸이 떨린다.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몸을 돌리는데.






"윽..!"






허리즈음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온다.


살살하겠다던 곰의 약속은 늘 그랬듯 지켜지지 않았다.


안 아프기는 무슨. 잠깐 움직이는 것도 찌릿하구만...






"...안아프게 한다고 한 거야"






곰은 나의 반응에 변명을 늘어놓지만 그렇다고 아픔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곰이 더 얄밉게 느껴진다.






"그래서 왜요오..."






내 침까지 모조리 핥아 먹을 기세였던 곰 탓에 목이 마르기 까지 하다.


부른 이유를 묻자 곰은 갈 곳이 있어 라고 한다. 지금이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방안이 캄캄한 것을 보니 어딜 나갈 시간은 아닌것같은데...






"조..조금만 있다가 나가면 안 될까요?"






몸의 통증뿐만 아니라 나가려면 온몸에 묻은 이 정액 덩어리들은 씻어야 할 텐데


도저히 그럴 체력이 남아있지 않다. 급한 게 아니라면 조금만 더 자다가...






"아냐. 지금 바로 가야 해. 급하거든"






나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곰은 단호하게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고 한다.


...움직이기가 힘들다고 칭얼거리자






"그럼 이렇게 하자"






곰은 팔을 뻗어 내 몸에 감아 번쩍 들어 올린다.


나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공주님 안기 자세를 당한다.


그와 밀착하자 곰의 몸에 묻어있던 누구의 것인지 모를 정액 덩어리가 몸에 닿아 끈적하게 느껴진다.


거기에 코에는 곰 특유의 체취와 정액 냄새가 섞여 자극한다.






"팔 얼른 감아 떨어질라."






일단은 시키는 대로 목에 팔을 감자, 곰은 그대로 걸어간다.


이대로 간다고? 






"자..잠깐만요..."




"왜. 이래도 아파?"




"아니 그게아니라... 나가려면 씻어야 할 거 아니에요..? 최소한 옷이라도 입어야..."




건조한 목을 쥐어짜 곰에게 묻자. 곰은 아 그런가. 라며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을보인다.


변태라는 걸 자각 하곤 있지만. 우리 이 정도까진 아니잖아요...


그래도 설득이 통했다고 안심하는순간.






"이러면 충분하지?"






곰은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이불을 주워다가 몸에 감는다.


그마저도 대충 얹어놓은 터라 본인은 30% 정도는 가려졌을까. 나는 전혀 가려지지도 않는다.






"아니.. 이꼴로 어찌나간다는ㄱ...."






"걱정마. 멀리 안 가"






목 아프니까 오래 말하지 말고. 라며 내 말을 끊은 곰은 계속해서 걸어간다.


진짜 이 꼴론 어디를 나가도 문제다. 신고라도 당할 텐데 무슨생각인거냐고..


나는 앞으로 있을 골치 아픈 생각에 눈을 꽉 감는다.




.


.


.




그러기를 잠시. 걸음을 멈춘 듯한 느낌에 조금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몸에 느껴지는 차가운 공깃바람은 내가 밖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아직 현관문을 나가지도 않았을텐데...






"이제 눈떠봐"






"여기가.. 어딘데요....?"






나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곰은 얼른 눈을 뜨라며 재촉한다.


오늘따라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곰의 행동이었지만 


나는 시키는 대로 눈을 떴고.






"와....!"






"왜 이래도 나가기 싫었어?"






곰이 데려온 곳은 발코니였다. 그것도 해가 막 솟아오르기 시작한 그 시간에.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경치에.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곤 감격한다. 왜냐하면 오늘은...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 거기다 오늘은 새해니까."






곰의 센스 덕분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새해 일출을 두 눈으로 구경한다.


감방을 나온 이후 처음으로 맡는 새해... 그곳에 있는 동안에는 마음대로 볼 수 조차 없었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모든 시간을 통제받았으며. 


우리에게 해를 보여주는 너그러움 따위를 줄 리 만무했으니까.


거기다.




가족을 잃고 난 뒤. 처음으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새해.


가진 것 없던 나에게.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가득 채워준 이 남자와 같이 있을 수 있음이 너무나...






그런생각을 하고 있자니. 곰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느껴지는 것은 서로의 입김, 차갑지만 기분 좋은 바람뿐이다.






"아까 너가 말한 거 말야 새 어쩌고"






먼저 침묵을 깬 곰은 안고 있던 나를 조금 더 꽉 끌어안으며 말을 이어간다.






"솔직히 말하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고. 내가 느낀 대로 얘기하자면.."


"저는."






평소였다면 곰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테지만. 이번만큼은 곰의 말을 잘랐다.


곰 또한 내 반응이 놀라웠는지 몸을 움찔거린다. 


하지만 별다른 제지나 잔소리를 하지 않고 나의 말을 기다린다.


이번만큼은 꼭... 내가먼저. 내 입으로 말하고 싶다.






"제 새로운 삶을 만들어준 건 아저씨였어요. 알에서 깨어난 후로 저에게는 아저씨가 어미새 였어요"


"이렇게 새해의 첫해를 볼 수 있는 것도.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전부. 전부 당신덕분이에요..."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사랑해요. 진심으로"




.


.


.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 호섭이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엄마한테서 뺏어간다고 하면 호섭이는 기쁘게 따라갈 거야? 엄마랑 영영 못 보는데도?'




'그건 싫어!! 엄마랑 같이 살 거야!!'




'저 새에겐. 호섭이 친구가 엄마인거야.. 그러니 데려오면 안 되는 거겠지?'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이미 주인이 있는 새를 뺏어온다면. 


새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 뒤로는 그 새를 볼 때마다 가지고 싶다는 생각보단 엄마와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랬다.






이제는 정확한 의미 따윈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 남자와 함께할 수 있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할 수 있음이 나에겐 가장 중요했다.






"...나도"






짧지만 명확한 곰의 대답. 내 솔직한 마음을 말했는데


섭섭한 마음이 조금은 드는 것 가ㅌ...






"사랑한다고. 나도"






"!!!"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듣는 사랑 한다는 말. 


매번 나를 챙겨주고 신경 써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운하다는 느낌이 아예 없던 건 아니였는데..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처음으로 그 말을 들을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




그리고. 라며 말을 잇는 곰.






"나는 어미 새는 못 해주고…. 아빠 새 정도는 해줄 수 있겠네"


"나는 받는 쪽이 아니라 넣는 쪽이니까.. 안그래?"






특유의 능글맞음이 가득한 말로 농담을 건네는 곰.


이것이 곰이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한다는 말임을 이제는 안다.




그렇기에 우리는 동시에 입을 열고 말한다.






"새해 복 많이 받아."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