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cea8873b4826af337efe9e44ed0273feef1bb221160d9507434f3438cba29d72549de4daff039273be5ca7a3cb367daefd1


한바탕 뒹굴어야 했다. 오늘 밤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굴어야 했다. 지친 심신을 위로할 순간이 지금밖에 없을 것만 같이. 내 가장 오랜 친구를 품 아래에 두고, 나는 그를 탐했다.

들뜬 분위기를 상대에게 불어넣는 건 어렵지 않다. 가쁜 숨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주면 되었으니까.

풀어헤친 옷들을 뒤로하고, 눈앞의 늑대가 내 등에 손을 얹는다. 조금 더 아래로,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곳으로. 꼬리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곧. 엉덩이인데.



"...아틀라스."

"으응…? 왜."

"너 좀 살찌지 않았냐."

"..."

"..."

"...꼬리 곁도 살찐 것 같은데. 보통 여기도 찌나. 혹시 고추도 커졌니?"



...나는 죽일듯한 눈으로 러너를 바라봤다.



"...미안."

"분위기 어쩔 건데. 망할 늑대새끼야…. 아."

"내가 더 잘하면 되지."

"뭐 어떻게…. 억... 어엇."



러너가 나를 끌어안고 뒤집었기에, 방금과는 다르게 내가 그에게 깔린 모습이 되었다. 그 와중에 내 팔목을 착실히 붙잡고 나를 몰아붙였다. 후끈한 열기가 그의 잔근육에서 찬찬히 내려온다.



"우리 도마뱀, 이러고 있으니까 귀여운데."

"남자가 귀엽긴 뭐가 귀엽냐. 미쳤다고..."

"관점에 따라 다른 거지."



늑대가 날 잡아먹을 듯이 다시 혀를 집어삼켰다. 물렁물렁하고 끈적한 혀가 입안을 헤집는다. 핥고, 훑고, 살짝 물어 잡아당기고. 서로 녹이듯이 맞대고. 그러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졌다.

더욱이 붙잡힌 팔은 움직이지 않았고 숨은 쉬기 힘들었다.



이러다 정신을 잃을 것 같아.



"읍…. 그만, 흡. 컵, 흐읍…. 윽. 그만!! 읍, 러…. 너!"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정말로. 위험하다 싶을 때.



"후아!!! 허억…. 헉, 헉..."

"하악!!! 하아, 헉, 큽, 하아..."



멈췄다.



"이…. 하, 미친…. 새끼... 하, 훕, 숨 쉴 틈은 줘야지..."

"알아. 하지만 보고 싶었다고. 정말로, 정말..."

"...그 정도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나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우린 그저 절친한 친구일 뿐인데. 섹스나 몇 번 했다 뿐이지 그렇게까지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헤헤.... 아틀라스."

"음..."

"박아줄까?"



아니다. 그 사이에 러너에게서 감정이 싹텄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런 감정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좋긴한데…. 러너. 우리가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건 알지?"

"뭐...?"

"그렇잖아. 우리가 뭐, 그냥 몇 번 잤다 뿐이지. 딱히 사귀자고 한 적도 없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벙찐 늑대.



"뭐랄까, 솔직히 우리 사이에 사랑 같은 게 막 피어나고 그러진 않았잖아? 며칠 밤을 즐기긴 했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 아니, 잠깐만. 아틀라스, 뭐라고?"



"그럼 우리가 사귀고 있는 게 아니라고?"



정적이 흘렀다. 뭐지,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어느새 분위기는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러너가 묻는다.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언제부터냐니…. 처음부터지."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야."



오늘따라 러너가 이상하게 굴었다.



"사귄 적 없잖아. 우리."



뭐랄까, 방에 한기가 돌았다.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좀 전까지 우릴 감쌌던 달빛은 그저 차갑기만 했다. 이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네가 싫다는 뜻은 아니고, 오히려 나는 좋지. 난 우리 사이도 나쁘다고 생각 안 해. 편하잖아. 우리 하던 거 마저 할까?"



나는 러너의 귀에 속삭였다.



"오랜만에 슬릿 섹스...."

"아냐, 아틀라스. 잠시만…. 나 이거 싫어."

"...뭐."



러너는 벌떡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아 멍을 때렸다. 그렇기에 나도 마주 앉았다.



"그게 그렇게 충격이야?"

"응. 충격이야. 나 바람 좀 쐬고 올게. 쉬고 있어."



옷을 챙겨입은 내 친구는 황급히 외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 * *



'도망가 버릴 정도인가.'



다음 날 아침, 사무실 책상에 앉아 고민해도 해결되는 건 없었다. 어제 꽤 좋은 밤이었는데. 괜히 말을 꺼냈다. 섹스라도 다 하고 말 꺼낼걸. 분위기는 달아올랐는데 하지는 못해 허리가 뻐근했다.

지금까지도 러너에게 연락은 없었다. 어딜 가버린 건지. 이 놈. 나만 혼자 남겨두고. 서운했다. 언젠가 연락하겠지. 늘 그랬듯이.



'아직 안 사귀는 거면, 그냥 그날 고백하고 사귀어도 되는 거 아냐? 귀찮은 녀석.'



집에 가서 혼자 해결하기라도 해야지. 온몸이 아직도 후끈하게 달아올라 현기증이 살짝씩 일었다.

이럴 땐 일에 집중해야 한다.



"선배님. 요청하신 판례는 정리해서 클라우드에 올려뒀어요."

"그래 고맙다. 니나."

"별말씀을요."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변호사로서 제법 바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오전에는 프롬프터 적용 법률에 관한 서류 정리와 회사의 공식 입장문을 만들어야 했고, 오후에는 니체의 대리인으로서 영광스러운 결혼식에 주례자로 참석해야 했다.



'프롬프터와 인간의 첫 번째 결혼.'



결혼도 안 한 내가 주례자라니. 폐가 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니체의 변호사는 잡무가 많았다......

후배가 가져다준 자료를 열람해 보면, 이미 사람들은 이번 결혼식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예전에도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결혼하는 사람들은 특이한 관심을 모았다. 이번 건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후배는 이거 괜찮다고 봐? 인간과 프롬프터가 결혼하는 거."



정장을 입은 채로 아주 동그란 안경을 쓱 밀어 올리는 여자 후배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수인결혼도, 동성결혼도 법제화된 마당에 안 될 건 또 없지 않을까요? 제가 잘 아는 분야는 아니지만요."



나는 자료를 스크롤 하며 휙휙 넘겼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30% 부정적 시각이 40%…. 나머지는 무관심으로 보는 편이 맞겠지. 댓글을 보면 일관된 반응이 있었다.



[걔네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공지능과 결혼하는 세대, 이대로 괜찮은가?]

[인류 멸망의 첫걸음]

[자기가 원하는 이상향에 다가가겠다는데 왜 님들이 오지랖임?]

[좋은듯]

[솔직히 나도 프롬프터랑 결혼하고 싶다. 연애하는 것보다 안피곤함 ㅋㅋ]



스크롤이 멈췄다. 프롬프터들은 기본적으로 순종적인 경향이 있었으니 피곤하게 굴지 않는 건 당연했다. 무슨 말을 해도 네, 좋아요. 하는 나만의 애인이라니. 꿈만 같지 않은가.

연인과의 인간관계라는 하드코어 난제를 누워서 케이크를 먹는 것처럼 쉬운 일로 치부할 수 있었다.



[프롬프터랑 결혼? 아직은 정상은 아닌듯]

[사회성 뒤진 모쏠아다찐따들한테는 좋은 대안 ㅋㅋㅋ]



동시에 피곤한 일이었다. 뭐만 하면 진흙탕으로 변해버리는 뉴스룸의 댓글 창에 피로를 느끼고 닫아버렸다. 트렌드 파악은 이만하면 됐다.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네."

"쟤네들은 최신형 프롬프터들을 못 만나봐서 그래요. 이전 세대 프롬프터들만 기억하니 그러지. 요즘 나오는 애들이 얼마나 인간 같은데."

"아냐,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란 거 알잖아. 사실."



이 결혼식에 내가 니체의 대변인으로서 참여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건 우리가 프롬프터라는 인공지능들을 생명으로 볼 것인지, 사람으로 볼 것인지 판단하는 잣대가 될 첫 번째 사례야. 아주 중요하지. 별일이 없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아직 법률은 마련되지 않았지만."



프롬프터의 대중화라는 니체의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 내지 입지 다지기. 인간과 프롬프터의 결혼식.



"우리의 개인적인 생각이 어떻든 간에, 회사의 입장을 밀어줘야 한다는 거지."

"법안은 준비도 안됐는데 결혼부터 하다니. 사람들 마음이 급하네요."

"이번 결혼식이 성공적으로 완료된다면 이제 특별한 일도 아니게 될 거야.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둘은 아닐 거니까. 프롬프터들도 엄청 팔리겠지."

"이거 잘하면 보너스 나올까요?"

"아마도."

"아자쓰!"



우리도 프롬프터가 하나 있었다. 저쪽 한구석에서 판례를 정리하고 있는 바니걸 복장의 최신형에 근접한 이전세대 프롬프터, 바니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쪽을 바라보고 윙크했다.

아,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바니걸을 입은 여자가 내 취향인 게 절대 아니다. 바니라는 프롬프터는 바니걸 복장을 입는걸 좋아했다. 정말 순수하게.

나는 니나에게 속삭였다.



"...넌 바니랑 결혼할 수 있어?"

"서류철을 인간의 8배 속도로 정리하고, 웹 크롤링을 10초 만에 끝내며 빛나는 지성과, 성격까지 좋은 무적의 여자친구라..."



바니는 여길 보며 미소 지었다.



"고려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굳이 인공지능이랑? 이긴 하네요. 게다가 바니걸 복장이 기본 세팅인 게 부담스러워요. 저는 남자친구도 있다고요 선배."

"저도 니나님이 취향이 아니네요."



바니가 웃으며 기싸움을 걸어왔기에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도 그런 부분에서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 * *



격식 있는 정장을 차려입고 후배와 함께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웨딩홀 밖에는 이미 초대받지 않은 기자며, 구경꾼이며 많았지만. 그것보다 눈에 띄는 것은 하객석에 앉아 있는 구버전의 프롬프터 들이었다.



나는 니나에게 속삭였다.



"구버전이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 건 처음 보는데."

"보통은 산업현장에만 투입되긴 하니까요…. 일주일, 24시간."

"결혼하는 프롬프터가 인맥이 좋은가 보군. 인맥이라고 해야 할까, 사교성?"



옆에서 바니가 거들었다.



"흔하지는 않네요. 보통 프롬프터끼리 접점이 많지는 않은데요. 특히 구버전은요."

"그렇군."



바니는 최근 경험을 쌓고 싶다며 대외적인 업무에도 동행하길 바랬다. 거절해도 고집을 부렸다. 프롬프터 주제에 기어코 따라오겠다면 제발 그 바니걸 복장부터 어떻게 하라는 내 부탁에 따라 이번에는 말끔한 정장을 입었다.

결혼식을 망치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프롬프터들은 일반적으로 주인에게 순종적인데 바니는 좀…. 뭐랄까.

개성이 강했다.



"뭘 봐요?"

"죄, 죄송합니다!"



홀린 듯 바니를 빤히 바라보던 기자 하나가 그녀의 파멸적인 성격에 기겁하며 도망쳤다. 사람은 외모가 다가 아니다. 깨달았겠지. 그대로 우린 의뢰자를 기다렸다.



"아, 일찍 오셨군요. 아틀라스 씨, 그리고 다른 분들도 반갑습니다."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는데, 그곳에는 나와는 다른 드래곤 수인이 서 있었다. 얼굴로 보나 꼬리로 보나. 나보다는 조금 더 동양용에 가까워 보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하게 웃는 미소가 꽤 괜찮은 사람.

격식 있는 턱시도가 잘 어울렸다.



"마르센입니다. 이 결혼식의 신랑 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니체의 변호인단입니다. 왼쪽에서부터 제 후배인 니나, 여긴 우리 프롬프터 바니, 그리고 전. 아틀라스입니다. 뭐 아시는데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할까요."

"하하하. 그럼요, 맞습니다. 워낙 유명하시니까요."



니체를 대표해서 프롬프터들을 변호하고 다니니, 이쪽에서 유명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점은 일감이 누워만 있어도 몰려온다는 거고, 나쁜 점은 회사가 많이도 떼어간다는 거겠지.



뭐, 회사 덕에 내가 유명해진 탓도 있으니 쌤쌤이다.

마르센이 멋쩍게 웃었다.



"저희 주례를 맡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바쁘시니 거절하실 줄 알았는데...."

"이 정도 짬도 못 내겠습니까. 무엇보다 저희는 모든 사람과 프롬프터들의 행복을 기원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으니까요. 오늘, 두 분은 수많은 분들을 사랑과 자유로 선도하는 위대한 첫걸음을 내딛으시는 겁니다."

"오…. 그건."



너무 번지르르했나.

마르센이 뭐라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멋진 말이군요."



다행이군. 우리는 웃어 보였다.



"그런데 신부는요? 이렇게 좋은 날에는 항상 함께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조금 문제가 있어서요. 이쪽으로 와주시지요..."



우리는 푸른 드래곤 수인이 이끄는 곳으로 걸었다. 화려하게 꾸며진 예식장 한쪽에 마련된 신부 대기실. 그 안쪽에서는 누군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르센은 덩치에 비해 작은 문을 살짝 노크했다. 안에 있는 사람이 놀라지 않도록.



".......알렌. 나 들어가도 돼?"

"..."

"변호사들도 왔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면 내가 도와줄게."

"..."

".......알렌."



안쪽에서는 계속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보시다 싶이…. 이런 상황이라서요."

"엥."



니나가 바보 같은 소리를 냈기에 나는 그녀를 뒤로 물렸다. 엥은 무슨 엥이야. 나는 물었다.



"혹시 싸우셨나요?"

"싸웠다면 제가 사과했을 겁니다. 잘 모르겠어요. 친구들이 다녀가고 나서부터 저런 것 같은데."

"친구요?"

"학교 동창이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뭔가 그 이후로 걱정이 생긴 것 같은데. 저와 이야기하길 거부해서요...."



마르센이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시다면 상담을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뭐. 안 될 건 없는데요."



안타까운 점은 내가 결혼을 해보지도 않았고, 연애에 통달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내가 조언을 구할 사람이 있다면 니나 정도겠지. 그리고 식을 올리기 전까지 조금 여유가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저는 잠시 나가 있겠습니다. 여길 계속 맴돌았더니 머리가 답답해지는 기분입니다. 기자들과 구경꾼들도 조금 더 물러달라고 프런트에 요청해야겠어요. 알렌이 놀란 게 저들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센이 홀을 나가고 신부대기실 앞에는 우리 셋만 남았다. 밖에 모인 사람들이 내는 소음과는 한 꺼풀 떨어진 조용한 공간이었다.



"근데 선배, 누가 프롬프터예요?"

"자료 안 읽었어?"

"이런 건 선배가 다 담당하시니까 평소에 읽을 일이 없죠. 저야 뭐 시다바리만 하는데요."



나는 신부대기실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마르센이 프롬프터야."

"에?! 왜요?"

"왜요는 무슨. 프롬프터니까 프롬프터지. 너는 존재에 이유를 묻니?"



태어난 데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정신 차려보니 세상에 나와 있던 거겠지. 다만.



"저는 바니, 모델명 PPS20350321_3. 제 존재의 목적은 재판 증거물 확보와 유사시 사망선고 도움, 최종적으로는 변호인 보조입니다."

"바니 너 말고."



프롬프터에게만은 태어남에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마르센 씨는 전혀 프롬프터 같지 않았는데."

"그게 요즘 신기술이야. 묘한 일이지...."



달칵.

그때 신부대기실의 문이 아주 미세하게 열렸다.

___

22

게이드래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