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추운 금요일 저녁, 현관문을 열어 정기 배송시킨 물품을 안으로 들이려던 민준은, 문 앞에 놓인 정체 모를 택배 상자를 발견했다. 박스 테이프가 한 겹 더 덧대어져 있고, 모서리 한쪽은 살짝 눌려 있었다. 투명 테이프에 반쯤 덮인 배송 스티커는 글자가 번져 잘 보이지 않았다.
수령인: 서*후
주소: 영중오피스텔 701호
‘뭐지. 이거 잘못 온 것 같은데.’
명백한 오배송이었다. 1701호인데 앞의 1을 못 본 모양이었다. 민준은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작은 호기심에 상자를 들어 올려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안쪽에서 내용물이 아주 작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적막한 늦은 밤, 그 작은 소리조차 쓸데없이 크게 울렸다.
대신 전해주기는 귀찮으니 경비실에나 맡겨둘까 하던 찰나, 초인종 아래에 붙어 있는 관리사무소 공지문이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공지] 경비실 보관 공간 부족으로 택배 대리 수령/보관을 중단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
민준은 공지문을 한 번 더 훑었다. 경비실에 맡긴다는 선택지는 이미 막혀 있었다.
'하아, 귀찮게 진짜.'
결국 701호로 직접 가져다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민준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용품을 대충 현관 안쪽에 들여놓은 그는 외투를 걸치고 오배송된 상자를 양손으로 고쳐 들었다. 거친 골판지의 결이 손바닥에 닿았다.
엘리베이터 앞 복도는 어두웠고, 센서등이 켜졌다 꺼지는 간격은 일정하지 않았다. 불빛이 켜질 때마다 바닥 타일의 서늘한 광택이 잠깐 살아났다가, 불이 꺼지면 이내 죽어버렸다. 복도 어딘가에서 세제 냄새가 얇게 감돌았고, 누군가 저녁으로 먹었을 음식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섞여 났다.
민준은 7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립니다.'
7층 복도는 17층보다 훨씬 고요했다. 발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고, 오피스텔 특유의 차가운 공기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민준은 701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 안쪽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인기척이 없었고, 문 아래 고무 패킹은 약간 들떠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 민준은 짐을 든 손을 바꿨다. 박스 모서리가 팔에 눌려 뻐근했다.
딩동.
초인종을 누르고 5초 정도 지났을까. 인터폰 너머로 무겁게 가라앉은, 그러나 몹시 방어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누구세요."
민준은 차분하고 일상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아, 701호분 맞으실까요? 1701호 사는 사람인데, 택배가 잘못 온 것 같아서요."
인터폰이 툭 끊기고 정적이 이어졌다. 문 너머로 발소리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느리고, 몹시 주저하는 듯한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가까워졌다가 멈추고, 다시 가까워졌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더니 문 앞에서 망설이는 얕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철컥. 문이 열렸다기보다는,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 그 틈 위쪽으로는 도어체인이 단단히 걸려 있었다. 체인이 팽팽하게 당겨져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문틈 사이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압도적인 흉통이었다. 좁은 문틈인데도 그 공간이 꽉 차 보일 만큼 체격이 거대했다. 핏이 여유로운 검은색 후드 집업을 입고 있었음에도, 그 아래로 넓은 어깨와 두꺼운 골격, 묵직한 근육의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후드 지퍼를 턱 아래까지 꾹 올려 입은 상태였는데, 그 안쪽으로 짧고 빳빳한 황색 털이 언뜻 보였다. 인간의 피부와는 확연히 다른, 날것의 질감. 민준은 그 사실을 인식하며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올렸다.
드러난 얼굴을 보자, 민준은 그가 시바견 수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시선이 얽히는 순간, 민준의 등줄기를 타고 묘한 긴장감이 치받고 올라왔다.
위압감을 줄 만큼 거대한 체격 속에 숨겨진 둥글고 유순한 선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순해 보이는 인상을 주는 표정에 그것은 민준이 오랫동안 막연히 그려왔던 육체적, 심리적 기준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형태였다.
순간적으로 훅 끼쳐오는 직관적인 끌림에 민준이 저도 모르게 표정을 풀려던 찰나였다. 민준을 확인한 상대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크게 뜨이는가 싶더니, 이내 화들짝 놀란 듯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시선을 피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오히려 그 강박적인 회피가 뇌리에 깊게 박혔다.
게다가 머리 위로 솟아 있어야 할 그의 두 귀는 낯선 이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 때문인지 양옆으로 납작하게 누워 있었다. 코끝은 미세하게 붉었고, 꾹 닫힌 입술 사이로는 불안하게 숨을 삼킨 흔적이 역력했다.
언제든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타인 앞에 선 것만으로 숨이 막혀 잔뜩 웅크린 기형적인 방어 기제. 그 위태로운 얼굴을 마주하자, 민준의 머릿속에 차가운 이성이 돌아왔다.
'진정하자. 적극적이게 말하면 문을 바로 닫아 버릴거 같아.'
민준은 불쑥 솟구치는 텐션을 꾹 내리눌렀다. 상대가 조금의 압박감도 느끼지 않도록, 민준은 시선을 거두고 상자의 송장을 응시했다. 무심하고 건조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웃의 태도를 유지해야 했다.
"여기 주소가 701호라고 적혀 있는데."
민준은 송장을 가리키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수령인 이름도 제가 아니여서 전해드리려고 온거에요."
문틈 너머로 커다란 손이 쑥 나왔다. 손가락 마디가 굵직했고, 손등에도 얇은 황색 털이 덮여 있었다. 그가 상자 모서리를 잡는 순간, 찰나지만 통제하지 못한 악력이 들어가 골판지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우그러졌다. 금방 힘이 풀렸지만 깊게 패인 자국은 선명하게 남았다.
"아.. 감사합니다."
목소리는 한없이 낮고 조용했으며, 말끝은 흐려졌다. 고개가 아주 조금 숙여졌다. 좁은 문틈 사이로 보이는 그 거구의 남자가 짓는 굽신거림이 어쩐지 기묘할 정도로 정중해 보였다.
"아닙니다. 경비실에 맡기려 했는데, 공지 때문에 안 된다고 해서 가져왔어요."
그는 잠깐 멈칫했다. 문틈 너머의 시선이 아주 짧게 민준의 단정한 얼굴을 훑고 지나가더니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납작하게 누워 있던 그의 귀가 아주 미세하게 한 번 움찔거렸다. 결국 그는 얕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입을 열었다.
"그... 저..정말... 감사합니다."
'정말'이라는 단어가 아주 조심스럽고 얇게 덧붙여졌다. 겉보기엔 그저 사람을 기피하는 듯했지만, 그 억눌린 목소리 끝에 미약한 떨림이 묻어났다.
민준은 그 거대한 체격과 대비되는 미세한 떨림이 주는 괴리감에 묘한 갈증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갔다가는 저 남자가 완전히 숨어버릴 것을 직감했기에, 민준은 스스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가볍게 목례했다. 거리를 두어야 저 흔들리는 시선도, 애써 진정시킨 자신의 충동도 통제가 될 것 같았다.
"네. 그럼 이만."
그는 고개로 살짝 인사를 받아주며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밀어 닫았다. 이내 철컥, 하고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민준은 그 소리가 완전히 끝난 뒤에야 제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을 슬며시 풀고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 내내, 머릿속에는 자꾸만 문틈 사이로 보였던 짙은 눈동자와 불안하게 억눌려 있던 숨소리가 떠올랐다.
민준은 묘한 여운에 걸음을 멈추고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굳게 닫힌 701호의 문. 하지만 이내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재촉했다. 자꾸 돌아보면, 비좁은 문틈 사이로 자신을 보며 작게 흔들리던 그 눈빛에 당장이라도 다시 문을 두드리고 싶어질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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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고요한 영중오피스텔 701호.
형광등조차 켜지 않은 어둑한 방 안에서, 지후는 현관문에 등을 기댄 채 그 자리에 주르륵 주저앉아 있었다.
"하아..."
참았던 숨이 뜨겁게 터져 나왔다. 후드 지퍼를 내리자,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와 납작하게 누워 있던 황색의 두 귀가 확연히 드러났다.
178cm에 98kg. 한때 매트 위를 구르며 단련했던 묵직한 근육 위로는, 유도를 그만두고 세상과 단절한 채 무기력하게 방치해 둔 체지방이 덮여 있었다. 핏이 넉넉한 검은색 후드 집업과 통이 넓은 회색 스웻팬츠로 애써 가려보려 했지만, 거대하고 둔탁한 그의 몸집은 스스로 몸을 웅크릴 때마다 주변의 공기를 짓눌렀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치듯 숨어들어야 했던 '그 일' 이후, 낯선 타인의 방문은 지후에게 철저히 사회적으로 발가벗겨졌던 과거의 서늘한 시선들을 끄집어내는 공포였다. 그래서 인터폰을 누르기 전까지 지후는 온갖 추악한 상상들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시선을 내린 순간, 지후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문밖에 서 있던 남자. 하얀 피부에 단정하게 떨어지는 중간 길이의 흑갈색 댄디컷. 그리고 그와 같은 색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흑갈색 눈동자. 누군가를 함부로 재단하거나 혐오하지 않을 것 같은, 맑고 단단한 인상이었다.
그것은 지후가 세상의 시선에 베이고 다치기 전, 마음 한구석에 남몰래 품어보았던 어떤 닿을 수 없는 갈망의 형태와 지독할 정도로 똑같았다.
강렬하게 시선을 옭아매는 벅찬 감각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생물학적인 수치의 본능이 지후를 덮쳤다. 상대에게 자신의 이 거대하고 기형적인 은둔자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하는 두려움에 짓눌려, 쫑긋 서려던 두 귀가 양옆으로 비참하게 누워버렸다.
상대의 맑은 눈동자가 지후의 얼굴을 확인하고 크게 뜨이는 것을 보았을 때, 지후는 덜컥 숨이 막혔다. 저 다정한 눈빛이 곧 과거의 그들처럼 경멸이나 혐오로 일그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도망치듯 시선을 피했다. 과거의 상처와 굳은살이 박인 데다 살집까지 붙어 투박한 자신의 손이, 상자를 건네주던 그의 단정한 손과 너무 대비되는 것 같아 끔찍하게 부끄러웠다.
손끝이 살짝 스쳤을 때는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만 알았다.
그냥 문 앞에 두고 가도 모를 일인데, 굳이 이 무거운 걸 들고 17층에서 내려와 주었다는 사실이 지후의 명치를 뻐근하게 눌렀다. 그리고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자신을 바라보던 그 흑갈색 눈동자에 어떤 동정이나 혐오감도 묻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후를 지독하게 안도하게 만들었다.
지후는 두꺼운 팔에 얼굴을 파묻은 채 깊게 앓는 소리를 냈다. 눈을 감아도 방금 전 마주쳤던 단정한 눈매가 깊은 잔상처럼 남았다. 결코 가져서는 안 될, 다시는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기대감이 자꾸만 혈관을 타고 번질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바닥에 웅크린 지후의 거대한 몸 뒤로, 잔뜩 숨죽이고 있던 풍성한 황색 꼬리가 저도 모르게 툭, 툭, 리듬을 타며 현관 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애써 현실의 무게를 자각하며 밀어내려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수인의 생물학적 본능과 마음은 이미 그 짧은 만남 하나에 속절없이 반응하며 그를 배신하고 있었다.
오나홀주문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