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건, 33세.


서른셋 생일을 맞이했음에도 태건의 삶은 이전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새벽 이른 시간부터 인력사무소에 출석해 지명을 기다리다, 어스름이 다 걷힐 때쯤에서야 공사판이든 상하차든 불려가 해가 질 때까지 일했다. 일당을 받고 나면 어디 포장마차에서 술이나 깔짝대며 시간을 때우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 잠을 퍼질러 잤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작업반장과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거나하게 마셔대던 태건은 시뻘겋게 변한 얼굴로 현관문을 홱 열어젖혔다. 부엌과 화장실, 침실 하나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아파트는 인기척은커녕 어둠과 적막뿐이었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라 별 감흥도 없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 꼬나문 태건이 휘파람과 함께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쿰쿰한 곰팡이 냄새로 가득한 고물 냉장고에 든 것이라곤 소주와 맥주, 더해 요기조차 되지 못할 안주 몇 개가 전부였다.


“아주~ 씨발~ 그냥 텅텅 비셨구만~”


태건이 기괴한 곡조를 흥얼거렸다. 두툼한 손가락 끝에 잡혀 나온 것은 소주와 맥주, 둘 다였다.


안방으로 들어간 태건이 담배를 비벼 껐다. 이어선 소주병을 따 주둥이를 그대로 제 입에 갖다 댔다. 꿀꺽꿀꺽, 커피색 모피 아래 두꺼운 목젖이 꺼떡일 때마다 알싸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아래로 콸콸 흘러내려갔다.


혀를 내밀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알뜰살뜰 핥아먹는 것을 마지막으로, 태건은 더부룩한 가슴을 두드렸다. 우렁찬 트림을 내뱉고 나서야 속이 좀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슬그머니 올라오던 취기는 꺽, 소리와 함께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야 말았다.


벽에 비스듬히 늘어진 태건이 찢어져라 하품했다. 11월임에도 민소매 티 하나 달랑 걸친 사내는 한 눈에 보아도 건장한 체격이었다. 비록 군살이 좀 많이 붙기야 했지마는 말이다. 상의 사이로 얼핏 드러난 배는 숨을 내쉴 때마다 식스팩이 희미하게나마 형태를 갖췄다.


또 트림하려던 태건이 별안간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곤 낑낑거리며 몸을 옮겨 바닥에 완전히 드러누운 자세가 되었다. 허리 부근, 바늘로 쿡쿡 찌르듯 시큰대던 통증은 자세를 고치자마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제야 만족한 태건이 히죽 웃었다.


“아이, 씨발…….”


그마저도 잠시였다.


욕지거리를 내뱉은 태건이 휴대폰을 꺼냈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확인해 볼 요량이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분만 잡치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전원 버튼을 누르자마자 떠오른 어떤 알림 때문이었다.


강태건 님, 생일 축하드려요!


“어쩌라고.”


짜증스레 뇌까린 태건이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힌 휴대폰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쁜 숨을 식식대던 태건은 휴대폰을 노려보며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싯누런 송곳니가 창밖에서 쏟아지는 달빛에 어슴푸레 빛났다.


분노는 금세 수그러들었다. 화를 낼 여력조차 없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맥이 풀린 태건은 또 하품하곤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새까만 눈동자에 들어오게 된 것은, 불그스름한 불씨가 남은 재떨이였다.


이곳은 지옥인가?


눈을 껌벅이던 태건이 생각했다. 이곳은 지옥인가. 아마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아무것도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 생일에도 케이크는커녕 눈앞의 재떨이가 전부.


그렇다면 나는 무슨 죄를 지었나.


곰곰이 곱씹어 봐도 뚜렷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떤 죄를 지어서 여기에 왔을까? 그만큼 나쁜 죄였을까? 남에게 피해를 끼친 적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남들이 내게 피해를 끼쳤지. 나를 떠난 어머니, 나를 때린 아버지. 사과 한 마디 없이 자리를 피한 상대 선수.


생각을 이어가던 태건이 또 오만상을 찌푸렸다. 구부정했던 허리를 곧게 펴자 찌르르했던 고통도 다시금 잠잠해졌다. 십여 년 전, 제 허리를 진단하던 돌팔이가 했던 말이 불현듯 기억났다. 재활만 꾸준히 하면 괜찮아질 거라는, 웃기지도 않는 개소리를 지껄여댔지.


며칠 다니다 도망친 건 나지만.


의사의 말마따나 꾸준히 재활했으면 정말로 나아졌을까 싶었지만, 태건은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상상하면 할수록 기분만 우중충해졌던 까닭이다. 기적적으로 부상에서 돌아온 강태건이 금메달을 따든 말든 무슨 상관일까? 지금의 태건은 이미 선택을 내렸는데.


영양가 없는 상상보단 알코올이 더욱 급했다. 온갖 육두문자와 함께 태건이 낑낑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재떨이에 입김을 훅 불어 불씨를 꺼트리고, 비틀비틀 냉장고로 향했다. 소주가 몇 병 남았더라. 여기서 궁상맞게 이러느니 어디 업소라도 가서 물이나 뺄까.


“야.”


이런 말이나 읊조리던 태건이 몸을 우뚝 멈췄다.


“돈.”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잠시 움찔했으나, 그뿐이었다. 눈살을 찌푸린 태건이 혀를 쯧 찼다. 이 거지 같은 집구석은 어찌 된 게 도통 방음이라는 게 되질 않았다. 무슨 옆집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듯 들리기나 하고. 전세 얻기 전에 철두철미하게 알아봤어야 했는데.


“준비했지? 100만 원.”


불평불만을 구시렁거려도 호기심이 동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꺼낸 태건이 귀를 쫑긋 세웠다. 세상 고압적이면서도, 동시에 어째 느끼하게 들리는 남자 목소리. 어디 거지 동네 아니랄까봐 빚쟁이가 옆집에 찾아오기라도 했나.


“아니이…….”


맥주를 홀짝이던 태건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저번에도 50만 원. 가져갔, 갔잖아.”


이건 남자야,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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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클기념짧은AU단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