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그거.”
쌈을 우적거리던 곰이 엄지와 검지로 고리를 만들었다.
“혹시 이거 아니냐?”
그러곤 반대편 검지를 고리에 쑥 집어넣는 시늉을 했다.
어제 보았던 기괴한 광경을 설명하던 태건이 입을 다물었다. 손가락이 고리 사이를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려니, 가슴 안쪽에서부터 묘한 불쾌감이 엄습했다. 우스꽝스러운 손짓에 구체적인 모습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아이, 씨발. 밥맛 떨어지게.”
“처먹지 말든지.”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곰은 주눅 드는 기색이 아니었다. 외레 낄낄 웃으며 술을 입안에 쫄쫄 털어 넣기나 했다. 큼지막한 손바닥에 들린 소주잔이 유독 작아 보였다.
금요일 저녁이었음에도 고깃집은 한적했다. 애초에 잘 나가는 업장도 아니었거니와, 시간조차 조금 이를 때였던 까닭이다. 이 일대에서 유일한 무한 리필 집이라는 점만 아니었으면 태건과 곰도 이곳엔 얼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네. 호모 기둥서방이라는 것도 있어?”
걸걸하게 웃어대는 눈앞의 곰 수인은 태건의 선수 시절 선배인 ‘구대웅’이었다. 십여 년쯤 전에 다녔던 도장에서 처음 만났던 사범이자, 현재는 그럴듯한 중견기업에서 과장 직책을 달고 있는 남자. 체육인 시절 깍듯했던 군기도 이제 더는 없었다.
오늘처럼 대웅은 이따금 태건을 술자리에 불러내곤 했다. 공짜 고기에 공짜 술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태건은 군소리 없이 대웅의 부름에 응했다. 몇 주에 한 번씩 술집에서 만나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전 선후배 사이. 딱 그 정도.
대웅이 널리고 널린 후배 중 하나인 자신을 구태여 이렇게 챙겨주는 이유를, 태건으로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빌빌거리며 사는 자신에게 무슨 동정심이라도 느끼나. 아니면 죄책감? 허리가 박살났을 때 나를 그토록 몰아붙였던 걸 후회라도 하나.
무엇이 됐든 얻어먹을 수만 있다면 괜찮았다. 맥주를 꼴깍꼴깍 들이켠 태건이 우렁차게 트림했다. 오만상을 찌푸린 대웅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입을 열었으나, 목소리까지 나오진 않았다.
“아, 전화 왔네. 잠깐.”
전화벨이 울렸기 때문이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한 대웅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익숙한 듯 지긋지긋한 풍경에 태건은 미간을 모았다. 그러곤 마지막 남은 고기 한 점을 얌체같이 주둥이에 집어넣곤, 통화 버튼을 누르는 대웅을 물끄러미 구경하기나 했다.
“응. 공주님. 왜요?”
성대를 바꿔 끼우기라도 했는지, 소름 돋을 정도로 나긋나긋한 목소리.
“응, 응. 그랬어요? 장하네~ 우리 딸.”
태건이 토하는 시늉을 했다만, 그러든 말든 대웅의 헤벌쭉한 미소는 사라질 기색이 없었다.
“아빠? 잠깐 친구 만나는 중이지.”
“…….”
“피자? 엄마가 알면 화낼 텐데~ 아빠 혼나면 아야, 해요.”
이건 무슨 유아 퇴행도 아니고.
통화는 그러고도 몇 분이 더 지나고서야 끝났다. 액정에 대고 주둥이까지 쪽쪽거리던 대웅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일련의 과정을 전부 지켜본 태건이 혀를 쯧쯧 차자, 대웅이 멋쩍다는 듯 헛기침했다.
“……뭐, 인마.”
“그냥 뭐, 좋겠수다~ 싶어서.”
“좋지.”
끝내 피식 웃었지만.
“강태건이.”
“왜요.”
“너도 이제 슬슬 정착해야 하지 않겠냐.”
생뚱맞은 소리였다. 태건은 눈살을 홱 찌푸렸다.
“정착은 무슨.”
“내가 여자 하나 소개시켜 줘? 아주 참한 분인데.”
“여자는 무슨 죄야. 씨발.”
날선 반응에 대웅은 입을 꾹 다물었다. 더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생각이나 해 보라고. 혹시 사귀는 사람 있으면 진지하게 만나보고. 늦기 전에.”
“…….”
“이 선배님은 피자 사러 가야 하니까 먼저 일어난다? 술 더 시켜 줘?”
솔깃한 제안이었다만, 어째서일까. 입맛이 뚝 떨어졌다. 테이블에 수북하게도 쌓인 고기 접시와 맥주병을 번갈아 보던 태건이 고개를 내저었다.
“됐어. 나도 일어날라니까.”
***
아파트 단지로 돌아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양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태건은 구부정한 자세로 비척비척 걸었다. 이따금 무언가가 발에 채일 때마다 뻥, 거칠게 차기도 했다. 빈 음료수 캔이 옹벽과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뭘 안다고 지랄이야, 지랄은…….”
뜨문뜨문 새어나오는 숨소리에 노기가 섞여 있었다. 으르렁댄 태건이 고개를 이리저리 젖혔다. 희뿌연 안개 같은 상념은 흩어지지 않고 머릿속 깊숙이 박혀 있었다. 이제라도 정착하면 어떻겠냐는 제안. 함께 보여준 가족사진. 공을 들고 행복하게 웃고 있던 여자아이.
아버지.
투덜대던 태건이 별안간 딸꾹질했다. 낭패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전에, 벽에 손을 짚을 새도 없이 벌어진 주둥이에서 토사물이 쏟아졌다. 싯누런 액체와 함께 바닥으로 쏟아지는 고기와 술. 시큼한 위액이 식도를 타고 역류할 때마다 눈에서 눈물이 찔끔 샜다.
“후…….”
쭈그린 채로 숨을 한참이나 헐떡대던 태건이 몸을 일으켰다. 뿌연 눈가를 거칠게 닦아내며 옷부터 확인했다. 나름 민첩하게 허리를 굽혔음에도 토사물이 옷과 바지에 묻어 있었다. 코를 벌름거리자 땀내와 맞물려 징그러운 냄새가 풍겼다.
먹었던 것을 전부 게워내니 속은 개운해졌지만, 영 아까웠다. 텁텁한 기침과 함께 가래를 길바닥에 뱉은 태건이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기껏 열심히 먹었는데 다 뱉어버렸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기어나가지 말걸. 괜히 기분만 잡치고.
“하…… 씨발, 진짜.”
뇌까린 태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동현관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동안에도 상념은 멈추질 않았다. 도리어 술에 절어 있을 때보다도 선명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태건을 괴롭혔다. ‘정착’ 내지는 ‘결혼’, 그리고 ‘혼자’라는 단어가 밤송이처럼 마음 이곳저곳을 쿡쿡 찔러댔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럴 형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니와, 무엇보다 현재 제 상황이 본인이 가장 증오해 마지않던 사람과 똑 닮았기 때문이었다. 공사판을 이리저리 전전하고, 쉬는 날엔 집구석에서 술이나 퍼마시고. 불길 같은 분노가 가슴에서 사라지질 않는.
제 아버지를.
태건이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 이것일 터였다. 지금 자신이 걷는 길이 아버지의 길을 답습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남편에게 질린 아내가 곁을 떠나고, 아버지는 홀로 남은 아이에게 화풀이 삼아 손찌검하는.
그런 비참한 대물림.
그랬기에 이것은 태건에게 있어 최후의 반항이었다. 핏줄 깊숙이 자리한 아버지의 잔재를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고자 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본인을 위해서였다. 비록 끝이 비슷할지언정 모든 부분에서 같은 최후를 맞이하지는 않을 테니까.
“…….”
그러니 외로움 정도는 감수할 가치가 있겠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태건이 터덜터덜 걸어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그대로 잠들 요량이었다. 오늘은 컨디션이 영 아니니, 내일 밤에는 어디 업소라도 들를까. 또 너무 크다고 퇴짜 맞는 건 아니겠지.
한숨을 내쉰 태건이 몸을 틀었다. 침침한 복도식 아파트엔 불이 들어온 세대가 몇 없었다. 좁디좁은 복도 이곳저곳을 점거한 별의별 짐, 거센 바람에 덜컹거리는 창틀. 을씨년스러운 복도 끄트머리에 자리한 자신의 집, 419호.
“저기요.”
문앞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밤인데다 조명까지 침침해 제대로 분간할 수는 없었다. 작고 왜소한 실루엣이 구부정한 자세로 초인종 부근에 서 있었다. 누리끼리한 노란색 조명에 푸석푸석한 모피가 어렴풋이 빛났다. 겨울 나뭇가지처럼 가녀린 팔로는 웬 밀폐용기 여럿을 끌어안고 있었다.
“남의 집에서 뭐 하십니까.”
의아하기도 했고, 꺼림칙하기도 했다. 눈을 가늘게 뜬 태건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이쪽을 확인한 실루엣은 크게 움찔하나 싶더니, 이내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벌벌 떨자 밀폐용기 중 하나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상대의 모습 또한 선명해졌다. 목과 소매가 늘어진 티셔츠, 파란색 수면 바지. 바람이라도 불면 그대로 날아갈 듯 깡마른 체격과, 빛바랜 하얀색 모피. 퀭한 듯 흐리멍덩한 노란색 눈동자는 이쪽에 고정되었지만 파르르 떨렸다.
“아, 아, 안녕하, 하세요…….”
어눌한 말투를 듣기도 전에, 태건은 상대의 정체를 금방 알아차렸다.
“저, 저……. 옆집. 인데요.”
어제 보았던 그 남자였다.
유부남구대웅따먹는태건은어디에
절뫙.
구대웅 유부남 되다 - dc App
글 왤케 잘씀 진짜
아이좋아
근데 AU라고 화자도 강태건으로 바꾸고 벽간소음낸것도 고영윤으로 바꾼거 왤캐 왤캐임
진짜 개맛있다..
ㄹㅇ 서순 바뀌는거 개마싰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