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요.”
문 앞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밤인데다 조명까지 침침해 제대로 분간할 수는 없었다. 작고 왜소한 실루엣이 구부정한 자세로 초인종 부근에 서 있었다. 누리끼리한 노란색 조명에 푸석푸석한 모피가 어렴풋이 빛났다. 겨울 나뭇가지처럼 가녀린 팔로는 웬 밀폐용기 여럿을 끌어안고 있었다.
“남의 집에서 뭐 하십니까.”
의아하기도 했고, 꺼림칙하기도 했다. 눈을 가늘게 뜬 태건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이쪽을 확인한 실루엣은 크게 움찔하나 싶더니, 이내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벌벌 떨자 밀폐용기 중 하나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상대의 모습 또한 선명해졌다. 목과 소매가 늘어진 티셔츠, 파란색 수면 바지. 바람이라도 불면 그대로 날아갈 듯 깡마른 체격과, 빛바랜 하얀색 모피. 퀭한 듯 흐리멍덩한 노란색 눈동자는 이쪽에 고정되었지만 파르르 떨렸다.
“아, 아, 안녕하, 하세요…….”
어눌한 말투를 듣기도 전에, 태건은 상대의 정체를 금방 알아차렸다.
“저, 저……. 옆집. 인데요.”
어제 보았던 그 남자였다.
태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너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상대를 뚱한 눈으로 응시하기나 했다. 무릎을 꿇고 떨어진 밀폐용기를 주섬주섬 줍는 남자. 쭈그리나 일어서나 변함없이 내려다 봐야 할 정도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몸집.
남자 구실은 평생 못 하겠군.
속으로 빈정거리고 있으려니 아까 대웅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손가락으로 만든 고리를 검지로 푹푹 쑤셔대는, 세상 노골적이고 더러운 제스처. 웃겨 죽겠다는 듯, 아니면 불쾌하다는 듯 낄낄거린 곰이 꺼낸 조롱.
‘호모 기둥서방이라는 것도 있어?’
“……옆집인데, 그래서 뭡니까.”
또 기분이 더러워진 태건이, 조용히 읊조렸다.
남자는 눈에 띄게 움찔했다. 세상 퉁명스러운 반응에 당황이라도 했는지, 아니면 본래부터 사회성이 떨어지는 족속인지. 잠시 입술을 뻐끔거리며 괴상한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애써 주운 밀폐용기가 또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 아. 그, 그게…… 그게요…….”
“그건 또 뭐고.”
애석하게도 태건의 참을성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남자가 태건이 턱짓한 플라스틱 통을 다시금 주웠다. 이어서는 이쪽을 힐끔거리며 주둥이 끄트머리를 이상하게 일그러뜨렸다. 딴에는 미소라도 지으려는 듯했지만, 막상 태건의 눈에는 전혀 웃음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딘지 고통스러워 보인다고 해야 할까.
“이. 이거. 바, 반찬…… 인데요…….”
웃음 같지도 않은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남자가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말을 듣기는 했으나, 이해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아리송한 이야기에 태건이 눈살을 홱 찌푸렸다. 이건 무슨 병신도 아니고, 반찬이 뭐? 말을 할 거면 사람이 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든지. 반찬통 들고 남의 집 앞에서 음침하게 서성거리는 이유는 뭐고.
“반찬인데, 뭐요.”
“고, 고. 고마워서……. 어제…….”
이번에는 조금 알아먹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갑갑함은 눈 깜짝할 새 잠잠해졌다. 대충이나마 말뜻을 이해한 태건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소리도, 상대에게 호감이 생겼다는 소리도 물론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보쇼, 형씨.”
참, 애잔하다고 해야 할까.
태건이 허리를 비스듬하게 굽혔다. 그럼에도 눈높이는 여전히 맞춰지질 않았다. 애초에 상대가 시선을 맞출 생각조차 못했고 말이다. 작달막한 고양이 수인은 거리가 좁혀지자마자 경기라도 일으키듯 딸꾹질을 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어깨는 덤이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어서 말하는 건데.”
“……네, 네.”
“나는 어제 그쪽 도와줄 생각 하나도 없었습니다.”
“…….”
“그냥 시끄러워서 그랬다고. 아시겠어요?”
한껏 움츠러든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위아래로 경련하듯 까딱이는 고개가 제 말을 알아들었다는 신호인지, 아니면 단순히 겁을 먹어 저러는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를 듣자하니 아무래도 후자인 모양이었다만.
왜 저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저러니 되레 이쪽이 당혹스러웠다. 겁이나 좀 줘서 쫓아내려던 태건이 머쓱한 듯 헛기침했다. 아닌 밤중에 옆집 비위를 맞춰주려니 짜증이 확 치밀었으나, 그뿐이었다. 쭈뼛거리던 태건은 끝내 남자의 품에 안긴 반찬통을 턱짓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저거는 필요 없고.”
속으로 참을 인을 외치며, 태건이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그냥 그쪽이 드쇼.”
“…….”
“비실비실해 갖고. 그러니까 처 맞고 다니지.”
마지막엔 친절히 덕담까지 얹어 줬다.
대화가 끝났음에도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훌쩍임 또한 전혀 멈추지 않았고 말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울음소리가 더욱 커지는 모양새였다. 콧물 킁킁 빨아들이는 소리, 앙다문 잇새에서 새는 흐느낌, 가쁜 숨소리. 플라스틱 뚜껑 위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울음소리.
“……아이, 씨발. 진짜. 쯧.”
기어이 태건의 참을성마저 동나고 말았다.
태건이 별안간 손을 홱 뻗었다. 숨을 꼴까닥 집어삼킨 남자는 크게 움찔했으나, 그렇다고 뺨이 돌아가진 않았다. 몇 초 뒤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텅텅 빈 제 품속과, 다시금 허리를 곧게 펴는 태건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자, 받았죠?”
반찬통 여럿을 한 손에 든 태건이 말했다.
“이제 끝인 겁니다? 예?”
동시에,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십여 분 가까이 실랑이를 벌였음에도, 서로를 마주 보는 것은 이번으로 처음이었다. 그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한 태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깥도 조명도 여전히 어둑할진대, 어째서일까. 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남자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목소리만큼이나 중성적인 외모였다. 하물며 나이조차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 갸름하니 예쁘장한 얼굴은 꽤 어려 보였다만, 초점 없이 흐릿한 눈동자는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노인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눈가와 볼을 덮은 모피는 지금도 물기로 축축했다.
시선을 먼저 피한 쪽은 고양이였다. 무슨 괴상한 꿈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듯, 얼떨떨한 느낌에서 벗어난 태건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그러곤 슬그머니 비켜 주는 남자를 성큼성큼 지나쳐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이제 진짜 방해하지 마쇼. 알겠어요?”
남자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태건이 문 안으로 휙 들어갔다.
문을 꽝 닫은 태건이 식식대며 걸어갔다. 안방과 화장실 사이, 좁은 주방에 멈춰 서 그보다도 좁은 식탁에 손에 든 반찬통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한두 개도 아니고 네 개나 되는 플라스틱 밀폐용기 중 하나가 더러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반찬은 무슨 지랄…….”
투덜거린 태건이 허리를 굽혔다. 줍는 과정에서 내용물이 손가락에 묻기까지 하자 불쾌감이 최고점을 찍었다. 금방이라도 쓰레기통에 처박을 듯 반찬통을 모은 태건이 온갖 파렴치한 욕이 튀어나오는 주둥이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쪽 빨았다.
“…….”
그러곤 우뚝 멈췄다.
태건이 저도 모르게 입맛을 쩝쩝 다셨다. 재차 육두문자를 내뱉는 대신 시선을 스윽 기울여 플라스틱 통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방금 먹은 건 아마 미트볼일 테고, 나머지는 제육볶음, 김치. 시금치인지 미나리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풀떼기 두어 개.
눈동자를 떼굴떼굴 굴리던 태건이 쯧 혀를 찼다. 못마땅함 가득한 소리였으나, 통나무 같은 팔뚝은 어째서인지 쓰레기통이 아닌 싱크대 위 찬장으로 향했다. 큼지막한 손은 곧 스팸과 라면 몇 개를 제외하면 텅텅 비다시피 한 찬장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햇반이 어디 있나…….”
이런 혼잣말과 함께.
아시발 ㅋㅋ
진짜 글개잘쓰네,., 발기햇음
고머시기 이제 강태건 스토킹시작할듯...
우리이제영원히함께야.
어떻게 소장본이 나오자마자 공식이 분탕 - dc App
근데 이거 시작만 절망인거야 아님 끝도 절망인거야 - dc App
밥셔틀이네...
이거 점점 다음거 기대되기 시작함
아만있다
맛있나봐ㅋㅋ
원래 수컷은 입맛 자기꺼로 길들이면 게임 끝이야 ㅋㅋ - dc App
구원서사 제발... 원래 우로부치식 전개라도 끝에 희망이 있어야 맛있는 거라고..
하 ㅈㄴ 맛있다, 진짜
필력이 더 좋아졌어
제발고머시기유기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