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는데.”


헛기침한 태건이 퉁명스럽게 읊조렸다.


“도, 동파……. 방지.”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끄쇼.”


어물거리던 주둥이가 꾹 다물렸다.


뒤통수를 벅벅 긁은 태건이 콧김을 훅 내뿜었다. 그러곤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성큼성큼 내디뎠다. 영윤 또한 곧장 등허리를 복도에 납작하게 붙였다. 태건의 체격이 워낙 두꺼운 탓인지, 복도가 원체 좁은 탓인지. 깡마른 고양이를 지나칠 때 서로의 몸이 맞닿았다.


“빠, 빨리……. 하시는 게 좋아요.”


문고리에 손을 올리는 태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윤이 재차 입을 열었다.


“여, 여기. 되게 빨리 얼어서…….”

“예, 예.”


걱정 어린 목소리였다만, 태건은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태건에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장조림에 밥을 비벼먹을 생각에 눈이 돌아 있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아니면 일 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든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괜스레 멋쩍어지고 짜증스러워지는 옆집 남자에게서.


현관문을 닫은 태건은 일단 식사부터 했다. 햇반 두 개를 야무지게 해치우고, 입가심 삼아 맥주 한 캔까지 꼴깍꼴깍 마셨다. 그러곤 방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서 심드렁한 눈으로 휴대폰이나 보다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야말로 짐승이 따로 없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코까지 골아가며 퍼질러 자던 태건이 실눈을 떴다. 잠깐 눈만 좀 붙인 것 같은데 세상천지가 어둡게 바뀌어 있었다. 침이 말라붙어 뻑뻑한 주둥이, 싸늘하게 식은 방바닥. 해가 떨어지고도 한참이나 지난 하늘은 완연한 검은색이었다.


깜깜한 주변을 더듬어 겨우겨우 찾아낸 휴대폰이 가리키는 시각은 오후 일곱 시였다. 찢어지게 하품한 태건은 잠시 입맛을 쩝쩝 다시나 싶더니, 이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다시 잠들기엔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았다.


변기 앞에 선 태건이 바지를 내렸다. 오줌을 싸는 동안 겸사겸사 걸친 옷 전체를 훌훌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발을 대충 털어 추리닝 바지를 떼어내고, 깔깔이 지퍼를 쑥 내리고. 드로즈 팬티에 내복까지 제거하니 알몸뚱이가 되는 것도 금방이었다.


두툼한 페니스를 대충 턴 태건이 욕탕으로 향했다. 잠든 동안 주둥이라도 돌아갔는지 온몸이 다 뻐근했다. 아마 뜨뜻한 물로 샤워 좀 하고 나면 바로 괜찮아질 터였다. 그러고 못다 한 잠이나 더 자면 되겠지. 자기 전에 보일러로 등도 지지고.


결론내린 태건이 휘파람과 함께 수도꼭지를 돌렸다.


“……뭐야.”


그러나 물은 나오지 않았다.


태건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직감 비스름한 것이 일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애써 무시하곤 수도꼭지를 다시 돌려 보았다. 낡아빠진 샤워기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래로 뒤집어 봐도 고여 있던 물방울만이 주르르 흘러내릴 따름이었다.


“아, 씨. 뭔데.”


구시렁거리는 와중에도 수도꼭지를 돌리는 손만큼은 멈추질 않았다. 무언가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기보다는, 그저 현실을 어떻게든 부정해 보려는 것에 가깝겠다. 애석하게도 효과는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물은 물대로 안 나오고, 현실도 여전히 현실이고.


공기는 점점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두툼한 모피를 파고드는 추위에 어깨가 절로 떨렸다. 태건은 결국 짤막한 욕지거리와 함께 샤워기를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샤워기 헤드가 아크릴 욕조와 부딪히자 상상 이상으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빨리 하시는 게 좋아요…….’


열이 확 뻗친 머릿속에선 힘없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윙윙댔다.


옷을 도로 걸친 태건이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곤 몇 걸음 가지도 않고 곧장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현관문 왼쪽 아래에 자리한 수도 계량기함은 한눈에 봐도 낡아빠진 상태였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새파란 ‘수도계량기’ 글자는 칠이 반쯤 벗겨져 있었다.


혀를 쯧 찬 태건이 계량기함을 열었다. 예상 그대로 안쪽은 전부 깡깡 얼어붙어 있었다. 커버를 열어젖히기 직전까지 가졌던 일말의 희망이 무색하게도, 파이프는커녕 계량기마저 맛이 간 듯했다. 성에가 어찌나 심하게 끼었는지 숫자를 제대로 확인조차 못할 지경이었다.


“아, 씨발 거 추우면 얼마나 춥다고…….”


투덜거린 태건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거뭇한 주둥이에선 한숨이 절로 푹푹 샜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따로 없었다. 12월 초에 수도관 동파는 또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대충 보아하니 아무래도 주변 파이프까지 전부 얼어버린 모양인데. 이러면 전부 녹일 때까지 몇 시간은 걸릴 테고, 그동안 샤워는 꿈도 못 꿀 테고.


‘여기 되게 빨리 얼어서…….’


그게 몇 시간일 줄은 몰랐지!


머릿속 목소리에 항변이라도 하듯, 태건이 고개를 홱 쳐들었다. 뚱한 시선이 향하는 곳이야 물론 옆집인 419호였다. 굳게 닫힌 현관문 안쪽은 늘 그러했듯 고요하기 그지없었지만, 창가엔 빛이 어른어른 비쳤다. 아직 잠들진 않은 듯싶었다.


치켜들었던 고개는 곧 슬그머니 내려갔다. 419호의 계량기함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옷이며 수건이며 온갖 보온재로 계량기를 꽁꽁 틀어막던 고양이 수인.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막았으니 아마 물도 잘 나오겠지.


물이 잘 나온다.


“물이 잘 나온다…….”


중얼거리던 태건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입가에 손을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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