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궁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서 드러났다.
처음에는 모두 나를 깨지기 쉬운 유리잔처럼 다뤘다.
왕세자 전하께서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않으셨다, 낙마의 충격으로 예민하시다, 이상한 질문을 하더라도 자극하지 마라.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밥을 먹고, 수업을 듣고, 복도를 걷고, 꼬리로 엎는 잉크병의 수가 줄어들자 왕궁은 점점 원래의 속도를 되찾았다.
그리고 원래 속도의 왕궁은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시종들은 빠르게 움직였고, 교육관은 수업 시간을 줄여주지 않았다.
의원은 매일 내 눈동자와 맥을 확인하면서도, 내가 약간이라도 꾀병을 부리면 바로 알아차렸다.
유모는 내가 피곤한 척 침대에 엎드리면 갈기 털이 눌린다는 현실적 협박으로 나를 일으켜세웠다.
나는 그들이 나를 덜 걱정하게 된거 같아 약간 섭섭했다.
하지만 동시에 안심했다.
왕궁이 나를 다시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니까.
물론 일상이라는 말이 편하다는 뜻은 아니다.
왕세자의 일상은 빡빡했다
식사 예법
왕국어 고전
계보학
산술
역사
무예훈련
궁정예법
저녘에는 부모님께 배운 내용을 보고
나는 여섯 살이었다.
여섯 살
전생의 기준으로는 유치원생에 가까운나이
수인의 신체발달은 약간 빠른거 같긴하니 넉넉하게 쳐줘도 초등학교 1~2학년 정도이다.
그런데 이 세게의 여섯 살 왕세자는 자기 왕조의 조상 이름과 주요 귀족 가문의 혼맥,
남부 곡창의 세입구조와 북부 변경의 방어선을 배워야 했다.
왕족이란 직업은 조기교육이 어마어마하게 심한 직업이었다.
다만 처음에는 몰랐다
내가 그나마 편하게 교육받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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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어두컴컴하고 우중중한 어느날의 오후였다.
그날 나는 산술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걷고 있었다.
왕궁 서쪽 회랑은 동쪽보다 조용했다. 동쪽에는 왕의 집무실과 접견실이 많았고,
서쪽에는 교육실과 작은 연무장, 왕족 전용 도서실이 있었다.
나는 시종 하나와 유모를 뒤에 두고 천천히 걸었다.
수업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남부 농척과 수도 척의 환산 문제를 풀다가, 나는 결국 종이 위에 전생의 미터법 비슷한 임시 기준선을 그렸다.
교사는 그걸 보고 한참 침묵했다.
그 침문은 아마 '또 시작이군'같은 거였으리라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나로 정하면 되잖아'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단순하지 않다는것을 조금 알았다.
기준을 하나로 정한다는건, 누군가의 기준을 폐기한다는 뜻이었다.
누군가의 기준을 폐기한다는건, 그 사람이 지금까지 누리던 해석권을 빼앗는다는 뜻이었다.
여섯살짜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피곤한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때
작은 연무장 쪽에서 목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탁 탁
그리고 다시 탁
이번에는 조금 더 날카로웠다.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연무장 문은 반쯤 열려있었다. 안쪽에는 어린 사자수인 하나가 서있었다.
루시안이었다.
나보다 두살어린 네살짜리 내동생
네살짜리가 들기에는 목검이 커보였다
물론 왕실 훈련용으로 가볍게 만든 것이겠지만.. 그래도 커보였다
루시안은 작은 손으로 목검을 쥐고 있었고, 맞은편에는 무예 교관이 서있었다.
"다시"
교관이 말했다.
루시안은 숨을 골랐다.
"예"
그는 다시 검을 들었다.
자세는 제법 반듯했다.
아니, 이상할 정도로 반듯했다.
'아무리 수인이 성장이 빠르더라도 네살짜리가 저렇게 반듯한 자세를 잡을수가있나?'
라는 생각을 하는순간 루시안의 목검이 중심을 잃고 내려갔고
교관의 목검이 그것을 쳐냈다
탁
루시안의 손목이 흔들렸다.
"손목이 무너졌습니다"
교관이 말했다.
"다시"
루시안은 대답했다.
"예"
나는 문 앞에 멈춰 섰다.
유모가 낮게 말했다.
"전하 이동하셔야 합니다"
"잠깐"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루시안은 다시 검을 들었다
그의 귀는 바짝 긴장해 있었고 꼬리는 뻣뻣하게 선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알수있었다...
저건 침착해서가 아니라 억지로 붙잡아 두고 있는것이다
그사이 또 목검이 부딪혔다
탁
이번에는 루시안이 한걸음 밀렸다
교관이 분명 봐주고는 잇었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달래는 방식으로 봐주는 느낌은 아니다
"다시"
루시안은 숨을 몰아 쉬었다
"예"
그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나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 무예 수업은 이정도가 아니였다.
물론 나도 왕세자답게 훈련 받았다.
하지만 낙마 후라는 이유로 강도가 줄어든 것도 있었고,
애초에 내 수업은 왕세자 보호라는 명목 아래 신중하게ㅐ 조절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수업은 무엇인가
작은 몸이 지쳐 봉리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제야 이상한점을 하나씩 떠올렸다.
아침 식사 때 자주 루시안이 졸린눈을 하고 있었던것
식사전 자꾸 손목을 만져됬던것
내가 수업을 마치고 쉴때 루시안은 다른 교육관으로 이동했던것
어머니가 그를 볼때마다 아주 잠깐 굳은 표정을 보였던것
아버지가 루시안에게는 나에게 하는것보다 짧게 말하던것
나는 그것들을 그냥 지나쳤다
동생도 왕자니까 교육받겠지 그런 생각이나 하면서
하지만 그런게 아니였다
같은 왕자라도 같지 않았다.
나는 첫째였고 왕세자였다.
지켜야 할 왕실의 얼굴이었다.
루시안은 둘째였다.
그리고 전생에서 둘째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떠올렸다.
예비후계자
정략의카드
대타
왕세자의 보좌
필요에따라 버려질수있는 아이
그런말들이 머리속에서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지식이었지만
지금은 당장 눈앞에 있다.
탁
루시아늬 목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연무장이 조용해졌다.
루시안은 급히 허리를 숙여 목검을 주우려 했다.
교관이 말했다.
"전하"
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차가웠다.
"왕족은 손에서 검을 놓지 않습니다"
루신안의 작은 어깨가 움찔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걸음 앞으로 달려 나가려 했지만 이내
내 소매를 붙잡는 유모때문에 재지당했다.
"전하"
나는 그 한마디에 멈췄다.
왕궁에서는 아무렇지않게 끼어들수 없었다.
그 정도는 이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거와 납득은 다른것이다
루시안은 목검을 주워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의 손이 떨렸다 아주 조금
아마 교관은 봤을 것이고 내 뒤에있는 유모도 봤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게 왕실 교육이었다.
나는 문 앞에서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받고 있는 교육이 힘든게 아니었구나..
적어도 내가 가장 힘든쪾은 아니었구나
루시안이 다시 검을 들었다.
교관이 말했다
"다시"
그리고 내 동생은 대답했다
"예"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귀에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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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파트 본격적 시작
생각나는게 너무 많아 히잏어히히ㅣ히힣
6살 4살 ? - dc App
주인공이 6살떄 이세게전생을 자각함 + 인간이랑 나이개념다르다는 설정 + 실제로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랑 유치원생인데 엘리트교육에 희생되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면됨
성인되서 하는거지? - dc App
@파란마카롱5 유아편만해도 상당히 길어질거같은 문제가... 일단 다음편이 우애깊어지는 편이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