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담실에서 만난 40대 구철 씨도 마찬가지였다. 구철 씨의 아버지는 구철 씨가 어린 시절, 날마다 어머니를 폭행하고 폭언을 했다. 자주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구철 씨에게 술주정을 했다. 구철 씨에게 아버지는 공포 그 자체였다. 구철 씨는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어머니로부터는 방임을 당했다. 어머니도 너무 힘이 없었고, 또 힘들었기에 자녀들을 잘 보호하지 못했다.
구철 씨는 지금 겉보기에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직장에서는 말수가 적은 성실한 직장인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는 아내와 아이들과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남자이다.
구철 씨는 자신의 아이가 길에서 넘어져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아내의 말로는 그냥 경비 아저씨처럼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한다고 했다. 구철 씨는 가족들과 전혀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 못하고 마치 고립된 섬처럼 존재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표출하는 것은 분노, 짜증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전부였다.
구철 씨의 아내는 남편에게 수없이 이 문제에 대해서 호소했지만 아내의 말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는 바깥에서는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예의 바르고 성실했으며, 단지 말수가 적은 것 말고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직 집안 식구들만이 힘들 뿐이었다.
나는 구철 씨와 상담을 하다가 그가 ‘감정적 마비’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감정적 마비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적 환경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아예 차단하거나 상황과 감정을 분리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몸과 정신이, 감정이 분리되어 서로 따로따로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상대방과 정서적, 감정적 교환이 전혀 불가능해진다. 정서적 소통을 위해서는 정서를 사용해야 하는데 정서 체계가 마비되어 상황에 맞는 소통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략)
구철 씨의 아버지는 과거에는 가족들을 괴롭히던 폭군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된 지금은 아들과 아들 내외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구철 씨의 아버지에게서 두 사람을 보았다. 가족들을 매일 괴롭히던 폭군이었던 아버지와 미안함의 마음으로 아들과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는 아버지였다.
구철 씨에게는 단지 가족들을 괴롭히던 아버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아버지의 모습도 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보호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만든 감정적 마비의 회피기제 속에서 소통을 거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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