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적인 에로티즘.
헤르베르트 바이어 - 과거를 찾아서
그에게 에로티즘은 하나의 과잉 에너지의 소비방식이였다. 하지만 에로티즘은 그자체로 소비면서도 생산이며 그렇기에 다시금 과잉에 휩싸인다. 생명으로써의 에로티즘은 이러한 소비(죽음)을 품음으로써 생산(탄생)을 하며 이로인해 죽음과 탄생의 대립적인 이분법을 전복시키고 '변증법적인 지속'을 요구한다. 즉 그에게 에로티즘은 '단순히 성행위를 통한 탄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죽음' 그 자체도 포옹하는 사상이다. 바타유는 여기서 동물과 인간을 구분했다.
'단순히 번식'만을 목표로 하는 '쾌락적 성행위'만을 하는 동물과 '단순히 동물적 성행위가 아닌 내제적인 차원에서 죽음이 함께 이루어지는 성행위'를 하는 인간은 '에로티즘'이 존재하기에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고 했다. 인간은 '오르가슴' 즉 바타유가 말했던 '작은 죽음'은 이러한 '절정'(즉 오르가슴) 속에서 그 주체인 인간은 황홀감(쾌락)과 함께 죽음을 잠깐 경험하고 이성과 의식과 자아를 잃는다. 이떄문에 에로티즘은 순전히 '자기자신'만이 겪을 수 있는 체험이 된다.
그렇기에 에로티즘은 '죽음과 함께한다'라는 사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성행위의 결과로써 탄생하는 우리가 말하는 '임신'은 또한 이러한 탄생 즉 '생산'이 된다. 이 것이 바타유가 말한 '변증법적인 관계'에서의 에로티즘이였다.
조르주 바타유의 책 - 에로스의 눈물
그렇다면 이러한 에로티즘의 근본은 무엇일 까? 그것은 바로 '금기를 제거하기 위한 위반'이 아닌 금기를 한 번 걷어 올리는 행위에서 온다. 인간은 내제에 폭력적인 충동을 가지고있다. 이를 노동과 '이성'이라는 것을 통해 인간의 충동을 제제하고 집단을 이룬다. '노동'은 생산적인 바쁜 삶을 통해서, '이성'은 '마땅히 인간이라면 지켜야할 금기'를 통해서 말이다. 일상에서 이러한 '폭력'을 제제하는 것은 결국 '성과 죽음'으로 귀결된다. 성과 죽음은 노동을 교란하고 과잉과 폭력을 가지기 떄문이다. 인간이 '금기'로써 지정한 것은 '동물적인 자유'이면서도 인간이 인간들의 이상향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증거이기 떄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들이 설정한 '성의 금기'중 하나는 바로 '근친상간'일 것이다.
그는 근친상간을 '집단의 질서적 보호를 위해서 여성과 남성의 적절한 분배가 필요했고 결혼을 집단과 집단의 커뮤니테이션 방법으로써 생각했고 그럼으로써 '여성 교환'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근친상간의 금지가 지정되었다.'라고 말했다. 바타유는 그의 책 '나의 어머니'에서 당시 '금기'로 여겨젔던 근친상간을 정말 유감없이(심지어 네크로필리아까지 겸해서) 정치를 연관지어서 책을 발표했을 정도로 '당시 성적 금기'를 꺠부시기에 일조했다.
구스타프 클림트 - 희망 2
그러면 또다른 '성의 금기'는 무엇일까? 바타유는 또다른 성의 금기로 '월경과 출산의 피의 노출'를 예로 걸었다.
'출혈'은 인간의 내적인 폭력성을 강조하고 인간의 심리에 혼란을 가저온다. 성적인 폭력을 각인시키는 월경의 피와 성행위의 결과로써 나오는 출산, 그리고 성기와 성행위의 노출을 금지시키는 행위들, 살해의 금지같은 '출혈'을 금지시키는 행위는 곧 집단의 안정과 나아가서 이러한 노동의 교란을 방어하기 위한 '노동의 보호'를 위한 행위이기 떄문이다.
즉 대립적으로 보이는 성과 죽음을 집단이 금기시키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대립적'인 관계 아닌 불가분의 관계이기 떄문이다. 죽음은 곧 '공포'다. 인간에게 죽음은 '끝'이기에 공포를 상징했다. 허나 죽음은 그와 동시에 탄생을 불러일으킨다. '새로운 생명'은 '죽음의 부패'에서 오기 떄문이다. 그는 죽음에서 오는 구토를 이겨내야 생명의 분출을 기다리며 살수 있다.라는 말을 하며 죽음과 탄생을 엮었고 이를 에로티즘으로써 설명했다.
에로티즘의 순간 그 자체인 오르가즘을 ‘작은 죽음’이라 칭하는 것은 생명의 절정인 에로티즘을 통해 인간이 죽음을 내적 경험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죽음은 에로티즘에 다름 아닌 것이기 떄문이다.
바타유 철학의 완성점. '몸의 연속성'
조르주 바타유 - 에로티즘 (책이다.)
이러한 과잉 에너지와 소비, 효율적인 소비의 방법, 죽음과 탄생의 엮음, 그리고 이들을 엮을 에로티즘. 여기서 바타유는 자신의 사상을 완전히 완성시켰다. 연속성. 그 것이 바타유 철학의 완성이다.
인간은 '몸'을 가진다. 이를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몸'이라는 물리적 신체를 가지지 못하는 인간은 없다.
그리고 그 '물리적인 신체'인 몸은 결코 인간이 극복할 수 없다. 이러한 극복할 수 없는 경계로써 인간은 불안전하고 불연속성을 지니게된다. '불연속성'은 필시 다른 이들과 하나가 되어 '연속성'을 가지는 '완전체'가 되고싶어한다. 우리가 남과 몸을 섞을려고 하는 행위가 바로 그런 것이다. 하지만 '몸'이라는 '경계'는 이러한 섞음으로써의 연속성을 거부하고 막는다. '연속성'은 이러한 '몸의 경계'가 사라지는 '죽음'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윗 말에서 나오듯 역설적이다. '에로티즘'은 죽음을 품는다. 에로티즘은 죽음을 품으면서도 '몸'이라는 신체를 이용한 '행위'에서 나온다. 그럼 에로티즘은 잘못된 것인가? 그가 그렇게 애기한 에로티즘의 철학은 무너질까?
아니다. 바타유는 여기서 에로티즘을 '폭력'으로 규정했다. 에로티즘은 일종의 폭력으로써 '노동'에 대립하는 폭력적 대립체다. 그는 에로티즘을 '육체를 통해 에로티즘을 느끼려는 이들의 몸을 상대로 하는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즉 에로티즘은 에로티즘을 느끼는 이들의 몸을 살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즉 그러기에 절정을 통해서 '작은 죽음'을 겪는 것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 키스
결국 이러한 '성행위'의 기본 원리는 뭘까? 이 것은 '이성을 지닌 일상의 대상이 평소에 유지하던 폐쇄적(즉 몸에 입는 옷등)존재의 구조를 부셔버리는 데에 있다. 나체의 금기를 위반하고 남성의 몸이 여성의 몸 속으로 갈떄 즉 '폐쇄적'인 존재가 부셔질 떄,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황홀감을 느낀다. 바타유는 여기서 불연속적 존재인 인간이 평생의 연속성을 갈망하는 데에서 죽음이 아닌 '모종의 연속성'을 구현하는 시간이 바로 이 '생식의 시간'이라고 봤다.
바타유의 '작은 죽음'은 여기서 나온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새로운 불연속성의 존재를 탄생시킨다. 생식은 두 개체의 소멸(즉 황홀감을 느끼면서 이성등이 사라지며 죽음을 겪는) 즉 죽음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는 연속성의 과정'이다.
바타유는 여기서 희생제의(즉 인신공양)을 내세운다. 고대의 에로티즘인 이 희생제의는 종교라는 영역이 살해의 금기를 위반한 행위다. 공포없이는 신성이 설립될 수 없다고 봤으며 '신성'은 종종 희생제의에서 자양을 얻고 피의 축제, 광기의 축제, 살해의 축제, 공포와 폭력의 축제로써 나왔다. 희생제의에서 '격렬한 죽음'을 맞는 '불연속성을 가진 존재'는 죽음으로써 파괴되고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는 그렇게 남들에게 공유할 수 없던 '에로티즘'을 '공유'할수 있게 해준다. 즉 '연속성'을 공유하게 해준다.
뒤샹 - 세탁부의 앞치마
희생제의는 엄연히 '금기'를 위반하는 시간이다. 인간은 폭력을 금기로 설정하고 동물적인 본능을 거부함으로써 동물로써의 '인간'을 거부한다. 하지만 희생제의는 그러한 '금기'를 부숨으로써 또다시 인간이였던 자신을 부정한다. 결국 인간은 다시금 '동물성'으로 회귀한다. 하지만 이 동물성은 '본능적 특성의 동물성'이 아니다. '금기를 통해서 신성화되어 만들어진 동물성'이다. 위반은 곧 이 신성화된 동물성으로의 회귀고 이떄의 신성은 권능과 죄의식이 주는 에로티즘이 되는 것이다.
어둠의 영역에서 빛을 봐라
에두아르 미네의 풀밭 위의 식사
그렇기에 그는 이 '폭력이라는 쾌감'(인신공양은 한 이를 죽임에서 오는 폭력의 쾌락을 성행위는 두 개체의 오르가슴을 통한 작은 죽음이라는 폭력에서 오는 쾌감을)을 통해서 인신공양과 성행위는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라고 주장했다.
즉 존재의 연속성을 위한 갈망과 폭력 금기의 위반의 본성은 성과 죽음과 종교를 하나로 묶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이는 모든 인간의 '에로티즘'이 될 것이다. 즉 한계 없는 위반이 받아들여지는, 금기의 영역, 저주의 영역인 어둠을 통해서만 빛을 볼 수 있으며 그렇기에 '인간'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동물과 멀리 떨어저있는지라고 말했다.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더렵히기 위한 요소'였다. 아름다움을 위한 요소는 곧 아름다움을 위해서가 아닌 그 것을 더럽힌 후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아름다움'은 곧 '에로티즘을 더럽히기 위해서'있는 요소다. 그러나 '추함'은 더럽혀질 수 없다.
'금기'와 같은 의미의 인간성은 결국 '에로티즘'이란 것에 위배된다'. '아름다움'이라는 '인간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에로티즘'은 더럽혀진다. 바티유의 사상의 마지막은 이러한 '역설'로써 끝이난다.
에로티즘은 인간을 구분짓는 요소라고 말했던 그지만 다시 이러한 인간을 동물성으로써 회귀시키는 것에 에로티즘의 비밀이 있다고 말이다.
저주받은 작가의 성스러운 유산들
조르주 바타유의 저서 '눈 이야기'. 처음에는 그야말로 오줌, 교회에서 성행위, 심지어 네크로필리아까지 다룬 '외설 소설'로써 평가받았지만 바타유 개인의 철학의 대한 발견과 더불어 그의 책또한 여러가지 철학, 감정적인 이야기들이 발견되었고 평가가 달라지게 되었다.
구분을 통해서 경계를 흐뜨러트리는 위반을 범함으로써 금기를 드러내는 그의 사상 에로티즘은 역설을 포함한 이중적인 구조다. 그의 사상은 '후기 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에 정말 엄청난 영향을 남겼다. 금기와 위반, 연속성과 불연속성, 그리고 철학자체의 모순을 이용함. '인간성'의 대한 고찰,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 지의 대한 고찰등 말이다.
바타유는 마네의 그림을 평가하며 예술에 새로운 철학적 관념을 불었고 '현대미술의 대부'로 불리는 이들 특히 '뒤샹'에게 정말 크나큰 영향을 남겼다. 비단 예술뿐만이 아니라 정신분석학으로 '자크 라캉'에게까지도 그 영향을 남겼고 이브 알랭 부아와 크라우스와 같은 이들에게까지 그의 영향은 현대예술, 정신분석에 까지 끊임없이 퍼저나갔다.
[1]Acéphale. 목없는 이.
[2]실제로 이들은 자신들이 전부다 희생양이 되기로 했는데 정작 집행자가 없었다고 한다. 주변에 보상까지 할태니 집행자를 해달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해줬다고..
아 바타유 책 언제 사봐야하는데
정신나갈거같아
미칠정도로 천재네 - dc App
미처야 가능한 예술
비현실국 선포하는 정부에 낄만한 인재긴 하노
모가지 짤라야한다면서 왜 모가지 짜를 사람부터 안 구하는데
구할려했는데 아무도 지원은 안했드라 돈준다고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