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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공로자는 제대로 사용되었는가?

일본해군 대잠전투의 핵심 '95식 폭뢰'


일본해군의 약점이었던 대잠전투능력. 그 근간인 95식 폭뢰의 위력은 충분했다. 하지만 미군 잠수함을 막지 못했던건 왜일까.


일본해군 폭뢰의 역사는 다이쇼 8년(1919년) 영국에서 구입한 'D형 폭뢰'에서 시작한다. 이후 D형 폭뢰를 기반으로 국산화한 88식 폭뢰가 쇼와 5년(1930년)에,

91식 1형 폭뢰가 쇼와 9년(1934년)에, 93형 폭뢰(같은 해)가 순차적으로 채용되었다.

95식 폭뢰는 이러한 영국식 폭뢰 계보를 기반으로 발전한 폭뢰 중 하나였다.


95식 폭뢰는 쇼와 10년(1935년) 3월 함본기밀 제6250호 통첩으로 '가칭95식폭뢰'로써 개발이 시작되었고 쇼와 12년(1937년) 내령병 제31호로 제식채용되었다.

이 폭뢰는 기존 폭뢰에 비해 개선된 면이 부족했지만 약 100kg의 88식 폭약을 장전,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수 십 미터 정도의 유효위해범위를 가지는 등 위력은 충분했다.

또한 작약으로 채용된 88식 폭약은 기존에 사용되었던 시모세 화약下瀬火薬에 비해 안정성이 높아 더욱 안전해졌다.

한편 기폭, 전폭 계열 보조작약은 시모세 화약이 약 350g 사용되어 취급을 주의해야했다.


95식 폭뢰의 신관에는 95식 폭뢰신관(오리피스 시한식 신관)이 채용되었다.

오리피스 시한식 신관은 내부 오일이 작은 구멍(오리피스)을 통과하는 속도를 이용해 작동 시간을 제어하는 구조였다.

이 방식은 폭뢰 침강속도를 기준으로 일정 시간 후 기폭시킬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원하는 심도에서 작열시킬 수 있었다.

한편 심도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차가 생기기 쉬웠고 실제 운용 시 적 잠수함의 심도를 추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여러 개의 심도를 설정해 투하하도록 했다.


95식 폭뢰의 조정심도는 약 30m와 60m의 2단계가 있었는데 기존 91식 1형 폭뢰(25m와 50m)보다 깊이 설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전에선 잠수함의 운용잠항심도 증가와 이를 초과한 잠항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충분하지는 못했다.

또한 폭뢰의 침강속도는 1.9m/s 정도로 느렸는데, 이는 국적불문 원통형 폭뢰의 특징으로 목표심도 도달에 시간이 걸려 즉각적인 대잠공격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95식 폭뢰의 운용은 주로 함미에 설치된 폭뢰투하궤도를 이용해 항행 중 순차적으로 투하했다.

또한 일부 함정에서는 81식-94식 폭뢰투사기로 대표되는 Y포 폭뢰투사기가 장비되어 함선의 좌우로 뿌려졌다.

이를 병용해 폭뢰를 광범위한 위치에 분산투하해 적 잠수함에 대해 면제압 공격을 할 수 있었다.


95식 폭뢰는 일본해군의 표준적 대잠병기로써 넓게 사용돼 효과를 발휘했다.

약 100kg의 작약은 적 잠수함에 대해 근접 시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있었고 여러 개를 투하하는 면제압 전술과 합쳐서 전과를 기대할 수 있는 병기였다.

하지만 일본해군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잠수함에 의한 통상파괴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런 결과가 되어버린건 절대 폭뢰의 성능부족이 원인이 아니었다.

제2차세계대전 전에는 수중탐신의-수중청음기를 장비하면 잠수함 탐지가 쉬웠고, 움직임이 둔한 잠수함에 대해 직상공격을 하여 간단하게 격침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대서양 전투에서 독일 잠수함의 위협에 직면한 미영 해군은 이러한 인식을 고쳐 색적-공격용 소나 개량 및 보다 깊은 심도에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폭뢰와 신형대잠병기 개발을 진행시켰다.


한편 일본해군에서는 이러한 전훈이 충분히 전술에 반영되지 못했고, 태평양전쟁 개전 후에도 기존의 대잠전술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 결과 미군 잠수함의 정숙성(조용하게 움직이는 것) 향상과 운용잠항심도 증가에 대해 유효타를 날리는 것이 힘들었고,

수중탐신의-청음기의 성능 한계와 운용요원의 숙련도 부족도 더해져 탐지 자체가 힘들어진 상황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일본해군은 수중탐신의-청음기 증설이나 폭뢰투하궤도-투사기 증설로 투사량 증가를 꾀했지만 대잠전 전반에 체계적인 개선은 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충분한 전과를 올리는게 힘들었다.


95식 폭뢰는 당시 충분한 위력과 신뢰성을 갖춘 병기였으나 그 실효성은 탐지장비-전술-운용체제를 포함한 대잠전 능력 전체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고,

일본해군은 이들의 정비가 충분치 못해 대잠 전투에서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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