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라이프니츠의 극단적인 이성주의와 로크와 흄의 극단적인 경험주의를 모두 종합해야 인식이 발생한다고 봤고, 여기서 독일 관념론의 위대한 출발점이 시작된다. (자기 의식; cogito) 

자기 의식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데, 모든 자기 인식은 ‘나는 생각한다’ 아래로 포섭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통각 개념이 나오며, 칸트는 데카르트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자기 의식안에서 확인돼야 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하는 명제를 자기 의식으로 확증하고 있지 않다.

즉 다시 말하면, 데카르트의 Cogito를 Ich denke로 바꾼다. 
Ich denke는 자기 의식을 말하며, 데카르트는 Cogito를 말할 때 자기의식으로 확증하지 않았다.) 


칸트는 이미 자기 의식 경험안에 선험적 종합이 언제나 
들어 있다고 했지만, 경험주의자들은 오성과 감성이
 ‘경험속에’ 포함된 것으로 봤다. 

칸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두가지의 범주는
인과율과 실재다.
지속적 실체 개념과 모든 것은 원인이 있다라는 
인과율을 흄은 모두 부정했었다. 
이것을 인정하면, 이성을 인정하게 되고, 이성이 초월적으로 세계 안에서 원인과 결과를 도출하는 과학적 방법을 인정하면, 감각적 인상을 지배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흄의 회의론을 공격하기 위해 인과율과 실체와 속성을 매우 길게 범주표에서 설명했고, 이것이 칸트의 인식론이며, 
주관적 연역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인과적이고 실체적인 것은 인간 머리속만 아닌,자연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 자연 세계에는 이미 모든 사물들이 인과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실체화와 속성을 가지며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오성의 범주와 인식 대상인 이 세계의 이런 범주의 움직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칸트는 답을 찾고 있었다.

모든 인식은 객관적 타당성을 지녔고, 대상 세계 자체와 인간의 머리 속이 논리적 범주에 따라 구조화
되어 있다면, 세계라는 외부 대상과 오성 모두 
수학화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객관적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인간의 머리속에 든 오성의 범주표로부터 이 세계의 현상으로 나아간다. 이것을 객관적 연역이라고 한다. 

이 객관과 주관의 인식을 통해 선험적 종합을 통하여 
경험이 발생할 때, 객관적 타당성을 가질 수 밖에 
없고 두 연역이 일치될 수 밖에 없다. 
감성론(시간,공간)과 오성론(범주)의 객관적 
연역이 합쳐져서 자기 의식이라고 하고 나의 경험과 
‘나는 생각한다’ 아래로 포섭된다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의 
분석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