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판단의 관계
정언판단 : 모든 사람은 동물이다. 모든 사람은 식물이 아니다.
가언판단 : 완전한 정의가 있다면, 부정한 악인은 벌을 받는다.
선언판단 : 세계는 맹목적인 우연으로 존재하거나, 내면적
필연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외적 원인으로 존재한다.
정언판단은 주어와 술어의 관계이기 때문에 두 개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언판단은 귀결에 대한 이유의 관계이기 때문에 두 개의 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선택판단은 구분된
인식과 구분된 모든 선언지의 관계이기 때문에 여러개의 판단속에서 고찰될 수 있다.
가언판단의 예를 한번 보자. “완전한 정의가 있다면, 부정한
악인은 벌 받는다.”는 “완전한 정의가 있다.”와 “부정한 악인은 벌 받는다.” 두 개의 명제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단지 가안판단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논리적 귀결 뿐이다.
선언판단은 둘 이상의 명제들 사이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
경우 가언판단처럼 이유나 귀결의 문제가 아니라, 선언판단에
주어진 모든 판단 중 하나의 판단의 분야를 제외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 상호 대립의 관계이다. 이렇게 선언판단은
인식 분야 속의 부분들 사이의 관계를 서로서로 보충하면서
포함하고 있다. “세계는 맹목적인 우연으로 존재하거나,
내면적 필연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외적 원인으로 존재한다.”는
세 개의 명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개의 각 명제는 세계 존재
일반에 대한 모든 인식 분야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합해져서 인식의 모든 분야를 이룰 수 있다.
전 분야의 인식 중에서 하나의 인식을 뺀다는 것은 나머지
다른 분야가 인식을 정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반대로
한 분야의 인식으로 정한다는 것은 다른 분야를 빼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선언판단에서 선언지 사이의
상호관계를 알 수 있다. 이런 상호관계는 인식을 배제히키면서
전체적으로 참된 인식을 규정한다. 이렇게 관계판단들은
범주를 위해서도 필여하다고 칸트는 보았다.
4. 판단의 양상
개연판단 : 내일 비가 올 것이다.
실연판단 : 이 분필은 희다.
필연판단 : 2 더하기 2는 4이다.
칸트는 판단의 양상은 앞의 세가지와는 전혀 다른 특수한 기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판단의 양상은 판단의 내용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단지 사고 일반의 관계에서
연결어의 가치만을 다루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 비가 올 것이다.”는 개연판단은 내일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즉 긍정하든 부정하든 그것은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는 판단이다.
”이 분필은 희다“는 실연판단도 긍정하든 부정하든 현실적인
것으로 참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필연판단은
‘2+2는 반드시 4’라는 필연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판단이다.
판단의 관계 중 가언판단과 선언판단은 모두 개연적이다.
”완전한 정의가 존재한다.“ 고 가정할 수 있는 임의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결론인 “벌을 받는다”는 실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판단은 분명 거짓일 수 있지만, 개연판단으로 본다면
그것은 진리를 인식하는 조건일 수 있다.
선언판단의 예인 “세계는 맹목적인 우연으로 존재하거나,
내면적 필연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외적 원인으로 존재한다.”
로 보아도 개연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다. 즉 이 명제는
단지 누군가가 가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단도 어떤 참된 명제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고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순수이성비판 읽기 (서정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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