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왜 규정력과 반성적 판단력으로 나누었을까?
판단은 이미 순수이성비판에서 오성과 관련된 개념이다. (범주를 통하여) 그 이유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하는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규정을 한다라는 것, 볼프의 
규정이라는 개념은 나중에 독일철학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된다. 

규정이라는 것은 결정, 확정, 확립이라는 개념이다. 
그러니까 규정이라는 판단력은 순수이성에서 이야기한 개념의 범주표를 통하여 대상을 적용시키는 판단력이다. 반성적 판단력이란 칸트가 의도하는 판단력 비판의 주제이며, 우리가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주제로 취향적 판단, 취미 판단이다. 
즉 미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으로 나뉜다. 반성하는 판단력은 규정하는 판단과 다르다.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대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론이성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것과 다르다.) 

예를 들면, 나무를 바라볼 때  이 나무는 상상력과 
직관, 도식을 통하여 묶게 된다. (시간과 머리속 범주표를 연결시킨다.) 그런데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식으로 감각직관과 오성 범주의 적용을 통하여 대상이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칸트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판단은 규정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으로 나뉘는데, 이 반성적 판단은 다시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1. 미적 판단력 
2. 목적론적 판단력 

목적론적 판단력은 판단력비판의 후반부를 장식한다. 이것은 자연의 전체에 대한 객관적 증명과 자연 신학으로서 순수한 
실천이성의 도덕법칙과 자연의 아름다운 미학적 경험을 연결시킨다. 
그러니까 미적 판단력과 목적론적 판단력은 둘 다 반성론적 판단력이다. 칸트에 의하면 판단력은 개별을 보편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편은 규칙, 원리, 법칙이다. 개별은 개별 대상을 말한다. 어떤 것을 아름답다라고 말할 때 개별대상을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 이미 보편이 주어져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규정하는 판단력이다.

그런데 반성하는 판단력은 규정하는 판단력과 다르게 보편이 없다. 개념이 개별을 확정할 수 있는 보편원리와 원칙과 법칙,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찾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반성하는 판단력이며, 미학적 판단력이다. 바로 칸트가 지금 하려고 하는 세번째 비판서인 판단력비판을 가리켜서 이 두개의 개념을 나눈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체계속에서 합목적성을 찾으며, 어떤 거룩한 질서를 보고 느낀다.
이것은 칸트가 하나님이 살아있다와 같은 폭력적인 
신앙관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신을 요청하는 것이며, 칸트는 겸손한 신앙이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가르침을 준 철학자이다. 

그러니까 반성하는 판단력은 바로 미리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태양계 주변에서 빛이 굴절되는 것을 목격했을 때 그것은 뉴턴의 시대를 살았다고 한다면, 도무지 열역학의 증명이 불가능 했을 때이며, 빛의 굴절을 설명해 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반성하는 판단력에 들어간다. 상대성 이론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시대의 세계와 존재같은 어떤 혁명적 개념이 아직 없을 때 하이데거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과 같이 보편의 원리와 개념이 
원칙과 규칙이 부재해 있는 상태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관조할 때 이런 개념은 미리 준비한 보편을 적용는 것을 규정하는 판단력이라고 했으며, 이 보편이 없어서 찾아야 하는 것을 반성하는 판단력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계를 보고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보편을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과 같이 그런 상황이라고 칸트는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칸트는 이런 판단력비판의 이론을 세우기 위해서 이 개념이나 보편을 관계가 없다고 했다가도 관계가 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개별은 있는데 개별을 적용시킬 보편을 찾아서 틀에 맞출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보편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그것을 두가지로 나누었는데 그게 바로 미적 판단력과 목적론적 판단력이다. 이 두가지가 판단력을 구성하는 전반부와 후반부이다. (반성적 판단력에서 나누어진 두가지) 

미적 판단이란 주관적 경험이다. 이 주관적 경험이 
어떻게 보편타당한 원리로서 선험적이고 종합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취미판단으로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취미판단이 바로 미학적 판단의 주요 골자이다. 두번째 중반부는 바로 숭고미다. 마지막으로는 목적론이다. 
미적 판단은 다시 4가지로 구성된다. 

1. 질에 따른 구분 
2. 양에 따른 구분 
3. 관계에 따른 구분 
4. 양태에 따른 구분

1. 질에 따른 구분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그 유명한 
사심없음의 미학이다. 

2. 양에 따른 구분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주관적 보편성이다. 

3. 관계에 따른 취미판단은 美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관계안에서 목적을 구성할 수 있는가? 그 목적은 인간이 부여한 것이다. 칸트의 철학은 순수이성비판부터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까지 전부 다 인간의 주관이 중요하다. 따라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다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봤을 때 아름답다라고 하면, 이성을 가진 다른 사람 역시도 아름답다라고 동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동의를 요청한다.) -> 이것이 미적 판단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서 보편을 이야기하고 공통감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번째 관계를 설명하면서 
관계에 따른 그러한 취미판단을 이야기 하면서 마침내 목적, 
모든 사물에는 이러한 목적이 있고, 그것은 특히 
다른 사물 한개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물과의 관계안에서 나중에 목적론적 판단으로 가면서 신이 창조한 자연세계의 전체 질서, 거룩한 질서를 이야기하며 확장된다. 

4. 4번째에서는 양태를 다루면서 공통감각, 주관적 필연성을 이야기 한다. 인간은 미(美)라고 하는 것이
주관적 경험이지만 이 주관적 경험이 모든 사람이 
어떤 대상을 봤을 때 전부 다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것으로 봤다. 

거기에는 바로 우리가 갖고있는 공통의 감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에서 해체된다. 그 이후 숭고미로 넘어가며 수학적 숭고미와 역학적 숭고미가 있다. 역학적 숭고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드러나는 웅대함을 다룬다. (에드먼드 버크의 영향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