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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지 말아 주세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눈에 고인 눈물은 어느새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홀로 남겨져 버린다는 사실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외면해 왔던 이별의 순간 앞에서, 나는 결국 무너져버렸다.

“죄송해요… 울지 않으려 했는데…!”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유이 선배가 다가왔다.

“아즈냥, 이거 받아.”

유이 선배가 사진 한 장을 내게 건네주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려 보이지만, 지금과 다르지 않은 1학년 때의 선배들 모습이었다.

언제나 부실에서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항상 웃는 표정으로 함께 연주하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집으로 향하는 길.

다른 선배들은 이미 돌아가 있었고, 어느새 나와 유이 선배 둘만 남았다.

“그러고 보니 가사는 언제 쓰신 거예요? 부실에서 쓰는 건 못 봤는데.”

내 질문에 유이 선배는 웃음을 지었다.

“그게 말이지~. 사실 런던으로 졸업 여행 갔을 때 생각해 낸 거야.
그 뒤로 다 같이 아즈냥 몰래 만나서 만들었지!”

“에… 그럼, 그 이상한 말이 쓰여 있던 노트가…?”

꾸물꾸물한 글씨로 ‘아즈냥 LOVE’라고 쓰여 있던 노트.
그리고 그 옆에서 엎어져 자던 유이 선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뭐라고 쓰여 있는지 본 거야?”

“네 뭐… 유이 선배가 자고 있을 때 살짝 봤어요.”

유이 선배는 부끄러운 듯 목도리에 고개를 파묻더니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아즈냥 너무해~”

라고 말하곤 나를 끌어안았다.

이젠 유이 선배의 포옹도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유이 선배의 품에 머리를 살짝 기대었다.

“아즈냥 좋아~ 헤헤.”

‘좋아해’라는 말도 포옹과 함께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말.
동시에… 무엇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말.

유이 선배의 ‘좋아해’라는 말은 그저 친구 사이,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에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느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유이 선배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아쉽네, 아즈냥… 이제 헤어질 시간이야.”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갈림길에 와 있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유이 선배와 함께 하교하는 것도.

나는 애써 웃으며 인사했다.

“네, 그렇네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유이 선배.”

언제나처럼 유이 선배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응, 아즈냥도! 그럼, 내일 보자~”

유이 선배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는지 흔들던 손을 멈췄다.

“내일은… 아즈냥을 볼 수 없겠네…”

“네…”

정적.
골목길에는 찬 바람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느새 유이 선배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울음을 참으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말을 꺼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부원도 모아서 활동 열심히 할 거고…!
유이 선배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될게요!”

내 말에 유이 선배는 나를 바라보더니,

“으흑… 아즈냥!!”

라고 소리치며 거의 덮치듯 끌어안았다.

“졸업은 끝이 아니니까! 앞으로도 계속 다 같이 만나서 차도 마시고… 연주도 하고…!”

유이 선배는 내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먹였다.

나는 팔을 겨우 빼내어 선배를 안았다.

“알고 있어요. 유이 선배 말대로… 앞으로도 친구니까요.”

유이 선배는 고개를 들었다.
코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1년 전 축제 공연 무대에서 울먹이던 유이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언제나 변함없는 유이 선배구나.’

그 생각에 안도하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유이 선배는 그제야 부끄러움이 밀려온 듯 한 발짝 물러났다.
코를 크게 훌쩍이고는 다시 헤실거리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헤헤… 앞으로도 자주 연락할게! 아즈냥도 꼭 연락해야 해?”

“물론이죠, 유이 선배.”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유이 선배도 골목길로 걸어가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그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유이 선배가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을 때,
나도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발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유이 선배를 바라보았다.

멀어져 가는 유이 선배의 뒷모습.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불안함이 목을 죄었다.

어째서일까, 이대로 다신 유이 선배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젠 선배와 함께 이 길을 걸을 수 없다.
이젠 선배와 함께 부실에서 차를 마실 수도, 연주를 할 수도 없다.

머릿속이 불안한 생각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싫다.

다시 한번 유이 선배의 ‘내일 보자!’라는 말을 듣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유이 선배와 함께하고 싶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유이 선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신발 끈이 풀려있다는 것도 모른채.

그리고 차가운 도로 위로, 굉장한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아즈냥, 괜찮아…?”

“네, 괜찮아요… 그보다 괜찮을까요? 이렇게 갑자기 선배 집에 가도…”

유이 선배의 부축을 받으며 어느새 선배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무슨 소리야 아즈냥, 무릎에서 피 나고 있다고! 자, 어서!”

유이 선배는 내 손을 잡고 집 안으로 향했다.

“어서 와 언ㄴ… 아즈사쨩!?”

마중을 나온 우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만하다.
언니의 졸업식 날, 피 흘리는 동급생을 부축해 들어오는 모습이라니.

“우이! 약상자 어디 있어?!”

“어… 언니 방 침대 밑에!”

우이는 정신을 차리며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가자, 아즈냥!”

말할 틈도 없이 나는 유이 선배에게 이끌려 계단을 올랐다.

문패에는 동글동글한 글씨로
‘유이네 방♥’ 이라고 쓰여 있었다.

생각해 보니 몇 번 집에 온 적은 있지만,
선배의 방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민폐라는 걸 알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묘한 상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신 차려 아즈사... 이런 중요한 날에 민폐를 끼친 걸로 모자라서 이상한 상상이나 하고.’

“역시 전 밖에서 기다릴ㄱ—”

“아즈냥, 빨리! 빨리!”

결국 나는 떠밀리듯 유이 선배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과 달리 방은 매우 깨끗했다.
정리된 책상, 반듯한 이불, 가지런한 책들.

‘이럴 리가 없는데?’

유이 선배에게 미안하지만 이게 솔직한 첫 생각이었다.

유이 선배는 방을 둘러보더니

“어라? 방이 치워져 있네. 우이도 참, 오늘만큼은 괜찮다고 했는데~”

라고 말하고는 침대 밑에서 약상자를 꺼냈다.

역시 우이, 항상 고생이 많구나.

나는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분홍빛 벽지에 걸려있는 커다란 보드, 그곳에 붙여져 있는 여러 사진.

익숙한 교복, 익숙한 얼굴, 익숙한 공간이었다.
3년간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정말 멋진 인테리어였다.

그렇게 넋을 놓고 사진을 바라보는 와중에 유이 선배가 나를 불렀다.

나는 방 한쪽에 기타 가방을 내려두고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즈냥 준비됐어?”

유이 선배는 소독약과 거즈를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이 선배는 소독약에 담근 거즈를 상처에 가져다 댔다.

“읏…”

“아즈냥 괜찮아?”

“괜찮아요. 약간 따가울 뿐이에요.”

“다행이다. 이제 밴드 붙일게.”

약상자를 뒤적이던 유이 선배가 씨익 웃더니
파란색 줄무늬 배경에 고양이가 그려진 밴드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내 상처에 붙여주며 말했다.

“다 됐어, 아즈냥! 큰 상처는 아니니까 흉터도 안 생길 거야.”

“다행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같은 중요한 날에 민폐만 끼치고… 죄송해요.”

“아니야 아즈냥! 불편해하지 마! 앞으로 다치면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오라고?
내가 다 치료해 줄게! 음하하~”

유이 선배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는 약상자를 정리했다.

유이 선배가 약상자를 정리하는 사이,
나는 아까 미처 다 보지 못했던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중학교 시절의 유이 선배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때의 유이 선배… 뭔가 귀엽네.’

“뭐 보고 있어, 아즈냥?”

어느새 유이 선배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앗, 죄송해요. 그냥 눈길이 가서…”

“괜찮아! 마음껏 봐도 돼! 오히려 봐줬으면 해.”

유이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드 앞에 섰다.

사진들을 바라보는 유이 선배의 눈빛은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기뻐 보였다.

“아직도 내가 졸업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어떤 동아리에 들어갈지 고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1학년 학원제 사진을 손끝으로 짚었다.

“3년간 정말 알차게 보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을까…”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있지, 아즈냥.
나… 아즈냥의 선배로서, 경음부원으로서 잘 해낸 걸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유이 선배는… 역시 좀 덜렁이죠.”

“에…”

“연습 뒷전으로 미루고 부실에서 케이크를 먹다던가…”

“그, 그건…!”

“중요한 공연 날 감기에 걸려버린다던가…”

“그땐 미안했어…”

나는 유이 선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요, 경음부 들어온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유이 선배를 만난 것도요.

1학년 때 그 공연을 보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행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즈냥…”

“저, 유이 선배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말이 끝나자마자 유이 선배가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나도 아즈냥을 만나서 정말 기뻐.
정말이지… 아즈냥 졸업할 때까지 학교 다니고 싶었는데…”

‘저도요, 선배…
홀로 남겨지는 건 싫어요.
평생 선배와 함께하고 싶어요.’

머릿속 생각들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못한 채 맴돌았다.

“저… 유이 선배…”

“응, 아즈냥?”

말해야 할까.
나카노 아즈사의 ‘좋아해’의 의미를.

“저 사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이라면 들켜버릴 거야.
그래도… 이대로 추억으로 남는 건 싫어.

나는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보드에 걸린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유이 선배가 싫다고 하면?’

선배의 ‘좋아해’는 단순한 선후배 간 애정 표현일 수도 있다.
만약 고백했다가 거절당한다면…

사진을 떼어버리는 유이 선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앞으로 유이 선배를 전처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건… 죽는 것보다 싫다.

“아즈냥…?”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이제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선배의 품에서 빠져나와 방을 뛰쳐나왔다.

“잠깐, 아즈냥! 내가 바래다줄게!”

“아뇨, 괜찮아요! 부모님이 기다리셔서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는 재빨리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유이 선배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속으로 되뇌며 골목길을 달려 나갔다.

찬바람 때문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추위 때문도, 무릎의 따가움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왜 유이 선배처럼 ‘좋아해’를 말하지 못하는 걸까.

그때 피처폰이 울렸다.

유이 선배였다.

나는 피처폰을 이불 밑에 넣고
전화벨 소리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소리가 사라지자
나는 다시 피처폰을 열어 보았다.

유이 선배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아즈냥! 기타를 우리 집에 두고 갔어~
내일 아침에 가져다줄게. 그럼 내일 보자~’

급하게 나오느라 기타를 두고 온 모양이다.

정말이지, 몇 번이나 유이 선배에게 민폐를 끼친 건지 모르겠다.
내일도 평소처럼 유이 선배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처음으로 팬픽을 써보는 거라 부족한 부분이 많네요. 편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드백도 환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