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04424ad2c06782ab47e5a67ee91766dc28ef1edd1acc4c1bf13d0c05cd2d0214cfe4193a540f44d01b29ea14fa6


닦고, 조이고, 기름치기.

자동차 정비소 같은 곳에 걸려 있을 것 같은 문구지만 그게 아니다.


"~~~"


콧노래를 부르며 기타 바디를 열심히 닦고, 새로 바꾼 현을 잡고 있는 튜너를 조이고, 지판에 기름을 치는 아즈사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이만치 적당한 단어가 없으리라.


라이브를 앞두고 악기를 전면 정비하는 건 기타리스트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평소 연습하느라 늘어나고 금속피로가 쌓인 현은 연주 중 언제 튜닝이 풀리고 끊어질지 모른다. 만약의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라이브 전에 기타 현을 바꿔야 하는 것이고, 바꾸는 김에 겸사겸사 눈에 밟히는 바디도 닦고 지판에 기름도 치고 이것저것 손을 봐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라이브는 그녀에게 조금 더 특별한 것이었다.


'선배들과의 마지막 라이브!'


자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신입생 없이 달려?온 경음부였기에 그녀를 제외한 4명의 선배들은 모두 머지않아 졸업 예정이었다. 지난 학원제 라이브가 정말 마지막인줄만 알았는데. 그 때는 진짜 볼만했긴 했다. 눈물콧물 다 빼며 평소답지 않게 울던 선배들의 모습이라니. 언제 또 보겠는가.

그렇게 울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한 모습으로 교실까지 찾아와서는 '교실에서 라이브 같이 할래?' 하고 물어보던 선배들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3학년 마지막 등교일 아침에 선배들의, 3학년 2반 교실에서 함께 라이브를 하기로 되어 있다. 학생 밴드맨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교실 라이브라는 낭만, 심지어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던 선배들과의 라이브를 한 번 더 할 수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 생각을 안해도 심장은 뛰지만 - 아즈사였다.


'힘내라, 나!'


누구보다 강하게 뜨거운 전의를 활활 불태우며 결의에 가득 찬 조그만 주먹을 쥐어보이는 아즈사였다.


----


'굉장했었지...'


아직도 떨림이 조금 가시지 않은 손을 지그시 바라보며 아즈사는 몇 시간 전의 추억을 떠올렸다.

정말, 굉장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어째서 교실 라이브가 낭만의 결정체냐고? 직접 겪어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건 그냥 낭만이 아니다. 정말 끝장나는 낭만 액기스 그 자체다.

평소같으면 라이브 같은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절 방음되지 않는 교실에서 라이브를 한다는 건 진짜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어렵다. 당연히 라이브 따위를 염두에 둔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음향도 본격적으로 준비된 음악실이나 합주실, 작업실 같은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파워풀한 드러머의 페달질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책상 위에서 곡예하듯 기타 연주를 해본 것도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러면서도 너무 좋아서, 마지막엔 선배들과 같이 방방 뛰며 연주를 마무리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내년에 내가 졸업할 때도 해볼 수 있을까. 꼭 한번 해보자. 꼭.


그렇게 하려면 힘을 내야 했다. 내년에 경음부에 남는 것이 확정된 건 현재 시점에서는 아즈사 자신뿐이였기에. 내년에도 낭만의 교실 라이브를 감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3명 이상의 부원들을 모아 경음부를 유지시켜야만 했다. 어차피 선배들과 함께한 경음부를 자기 손으로 폐부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조금 더 힘을 내보자고 다짐하는 아즈사였다.


'유이 선배의 그건 대체 뭐였을까?'


마지막 곡으로 연주하던 U&I, '웃지 말고 부디 들어줘' 라는 부분에서 별안간 자기에게 몸을 돌리고 노래하던 선배를 잠깐 생각한다. 뭔가 계속 수상한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유이 선배가 언제는 알만한 사람이던가 싶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수상했다.


에라, 모르겠다!


짧은 생각을 접고 그녀는 집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했다. 그런 영문모를 생각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


꿀꺽. 물 한 모금을 머금으며 아즈사는 이마에 흐른 땀을 닦는다. 그녀의 손에는 거의 반평생을 함께해온 - 그래봤자 10년 내외지만 - 머스탱 기타가 함께.

너무나도 낯익은 집의 작업실에서 아즈사는 조금, 평소와는 다른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년엔 내가 보여줄 테니까!'


내년에 신입 부원들을 마구 끌어들이려면 끝장나는 신입생 환영 라이브는 필수다. 누가 들어올지 모르지만 유이를 제외한 경음부 선배들처럼 경력자가 줄줄이 들어온다는 행운이 다시 일어날 걸 기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혼자 라이브할 일도 생각해야 했다. 연주곡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역시 조금 더 쉽게쉽게 신입생들을 매료시키려면 보컬이 필요했다. 기껏 이렇게 연습해도 배은망덕한 후배로부터 들을 말은 '기타 '는' 잘 치시네요!'일 예정이었지만 지금의 그녀가 그걸 알 리는 없다.


아무튼 평소에는 조금 부끄럽기도 해서 선배들에겐 딱히 보여주지 않은 그녀의 노래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교실 라이브로 너무 신나버렸으니. 마침 여흥도 좀 가셔 보고자 방과 후 티타임의 전 곡을 집에서 쭉 달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기타와 보컬을 같이 해보니 확실히 유이 선배가 대단하긴 했구나. 새삼스러운 생각과 함께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유이는 분명 악기를 경음부 입부 후 처음 배운 초심자인데도 이상하게 습득이 빨랐다. 지금도 미스터리다. 아는 음악 이론은 지금까지도 영 별로 없는데. 시키면 연주든 노래든 끝장나게 해낸다. 음악에서도 일상에서도 유이는 아즈사의 상식이란 존재를 통째로 때려부수는 선배였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인간 관계를 좁혀오는 속도도 유이는 지나치게 빨랐다.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다.


자기도 모르는 미소를 얼굴에 띄우며, 아즈사는 마지막 노래를 준비했다. 


역시, HTT의 마지막 곡은 이거다. 가볍게, 가장 익숙한 인트로부터 시작해 본다. 정말, 제목처럼 떠올리기만 해도 푹신☆푹신해지는 노래다. 인트로가 끝나고, 아즈사의 작은 입술이 열리기 시작한다.


"너를 보고 있으면 언제나 하트 두근☆두근 흔들리는 마음은 마시멜로처럼 푹신☆푹신"


언젠가, 무기 선배와 단둘이 음악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을 기억한다. 항상 기품 있는 모습으로 모두를 보며 웃고 있는 무기 선배는 그렇기 때문에 은근히 쉽게 다가가지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리츠 선배나 유이 선배처럼 흙발로 마구 짓밟고 들어오는 느낌도 아니다. 그 전까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본 적도 딱히 없지만, 그렇다고 엄청 가깝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선배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엉뚱하고 평범한 선배였음을 깨달은 날이었다. 


몰래 케이크 까먹다 볼에 묻은 크림을 닦아줬을 때, 꽤나 푹신푹신했었지..


"언제나 열심인 네 옆모습 계속 보고 있어도 눈치 못채네"

"꿈 속이라면 우리 둘의 거리 좁힐 수 있을텐데"


거리 하니까. 은근 걱정됐던 일이 있었다. 맥도날드에서 우이, 쥰과 함께 간식을 까먹으며 리츠 선배의 호박씨를 살짝 깠던 적이 있었다. 뭐랬더라. 적당히 대충대충 하는 사람이라 딱히 말할 게 없다고 했었던가? 다행히 리츠 선배가 그런 것도 대충대충 넘겨주는 선배여서 망정이였지 아니였으면 꽤나 큰 실수였다. 그리고, 사실 더 지내다 보니 그게 전부는 아니였음도 알게 되었다.

분명 꽤나 대충대충 사는 모습을 자주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지내다 보니 생각보다 꽤나 열심인 모습도 많이 보인 선배였다. 가사 전반에 능숙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들으면 안다. 그 드럼은 정말 대충대충 사는 사람이 칠 수 있는 실력이 아니다. 몸에 밴 그 박자감은 포커나 훌라 쳐서 따는 것이 아니다.


"아아- 신이시여 부탁드려요 우리 둘만의 Dream Time을 주세요☆"

"마음에 드는 토끼 인형을 품에 안고 오늘도 좋은 밤♪"


미오 선배는 확실히, 그 부끄럼쟁이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가사를 쓰는 데 재주가 있다. 문예부에 들어가려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책 한권 들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미오 선배의 모습을 잠깐 떠올렸었다. 머릿속 상상에서도 그 모습은 퍽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어. 지금이 더 좋아. 하고 부끄러운 생각을 해본다.


나중에 들었지만, 리츠 선배가 강하게 권유해주지 않았다면 진짜로 미오 선배도 문예부에 있었을 것이고, 무기 선배는 합창부에, 유이 선배는.... 아마 니트처럼 방바닥 생체 청소기 역할이라도 하며 뒹굴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였다. 사람 하나를 온전히 구해낸 리츠 선배의 업적에 경례.


온갖 추억팔이를 하며 부르던 노래도, 슬슬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즐거운 노래도 머지않아 끝난다. 그리고, 즐거운 일상도, 곧.

잠시 손에 여유를 둔 채, 은은하게 노래해 본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자연스레 말할 수 있다면"

"뭔가 바뀌는 걸까? 그런 느낌은 들지만"


그런 건 없다. 아무리 말을 해도 바뀌지 않는 것 또한 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것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게 제일 어려운 거야. 얘기를 어떻게 걸면 좋을까?" 


그 날이 점점 다가오며, 좋든 싫든 고민할 수밖에 없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날이 오면, 진짜로, 와 버리면, 어떻게,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까. 잘, 웃으며 보내드려야 할 텐데.


"그보다 순서 고민하는 시점에서 전혀 자연스럽지 않잖아! 아아- 이제 됐어! 잠이나 자자, 잠이나 자자, 잠이나 자!!"


그런 고민, 아무리 해도 답이 나올 리 없다. 밤만 되면, 몇 시간이고 그런 생각이나 하다가, 이러다 내일 지각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돼야, 다 때려치우고 잠이나 자자고 머리 끝까지 이불 뒤집어쓰고 누운 게 도대체 며칠이던가 이제 세기도 귀찮다. 그렇게 해봤자 바로 잠이 들지 못하는 것도 알지만,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신이시여 부탁드려요. 단 한번뿐인..."


아즈사의 손이 멈췄다. 입도, 벌린 채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잠시 마비라도 온 것처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은 채 오직 미처 가시지 못한 연주 노이즈만이 실내를 거슬리게 채우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곧, 아즈사의 양 무릎이 땅에 닿는다. 그녀는 맥없이 바닥에 엎어졌다.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이제, 오늘의 그 라이브로 단 한번뿐인 선배들과의 미라클 타임도 정말로 끝난 것이다.


물론 아직 선배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조금이라도 남아있지만... 정말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못난 나 때문에 선배들의 마지막 학창 생활을 슬프게 만들어버리는 게 아닐까. 어떻게든 노력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가면 갈수록, 자신이 없다.


이러면 안 된다. 의연하게. 상식적인 일이라면 상식적으로,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는 선배들을 잘 보내드려야 하는데. 그게 바로 나다운 것인데.


컴백 아즈사!


왜.


뚝. 뚝. 진작부터 그렁그렁 차 있던, 더 이상 역부족이었던 눈물이 기어이 아즈사의 눈 밖으로 넘쳐흐른다.


방음 확실한, 모든 게 갖춰진 연습실에서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토해내듯이 울기 시작했다.


몇 분이고, 몇 분이고,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