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서 몇 군데 대사가 바뀐 부분이 있는데 원문을 오독했다고 생각드는 부분이 좀 있다.

원작자 스즈모토가 참여를 안 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도 문제는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인 유메미가 천국을 둘로 나누지 말아 달라고 소원 비는 부분.

원문은 분명 손님(쿠즈야)에게 부탁하는 대사인데 단어 하나로 신에게 비는 대사로 바뀌었다.

얼핏 보면 이게 더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확실히 실수했다고 본다.


애니 제작진은 아마 쿠즈야에게 말한 유메미의 소원을 메모리카드를 전해달라는 걸로 생각하고, 그 뒤에 천국 이야기한 건 별개라고 이해한 거 같은데..

이건 대사 맥락을 오독한 것이 아닐지 싶다.






먼저 이 소원은 투영관에서 언급된 적 있다.

이때는 게임과 애니 공통으로 분명히 '로봇의 신'에게 하는 부탁이었다.

여기서 로봇들의 천국에 있는 것이 로봇의 신이라는 쿠즈야의 말을 중요지식으로 등록해 둔 것에 주목해 두자.




쿠즈야가 말한 선의의 거짓말에 유메미는 새 직장이 천국 같다고 말한다.

유메미는 앞서 투영관에서 로봇의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고장이나 배터리 방전이 없는 로봇만을 위한 천국이다.

하지만 쿠즈야가 말한 새 직장은 이런 천국과는 조금 다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애니에선 시종일관 밝은 태도라 부각이 잘 안 되는데 이 시점 유메미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자기 부정을 했을 뿐 한참 전부터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게임 속 처절한 유메미의 보이스를 들으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그렇기에 세상이 망가졌다는 것을 인정한 유메미는 쿠즈야가 말한 새 직장이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유메미가 이를 '천국' 같다고 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한 말일 것이다. 천국의 일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어서 유메미는 쿠즈야에게 소원을 말하기 시작한다.



유메미에게는 천국이 필요 없다. 그저 인간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여기서 메모리카드를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새 직장은 '로봇들의 천국'이나 쿠즈야가 말한 '벽 너머의 천국'이 아닌, 망가진 세상일지라도 인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어느 곳이든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하다면, 정말로 천국으로 불러야만 한다면.



유메미는 로봇들의 천국이 아닌, 쿠즈야가 말한 인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천국을 원한다.


천국으로 자신을 데리려 온 쿠즈야가 바로 유메미에게 있어 곧 로봇의 신이 된다. 앞서 중요지식에 기록해 둔 데로 로봇의 천국에 있는 것이 바로 로봇의 신이니까.

그렇기에 앞서 로봇의 신에게 빌고자 했던 소원을 다른 누구도 아닌 쿠즈야에게 한 것이다.


쿠즈야의 대답인 俺が届けてやる(내가 전해 줄게)에도 첫 번째 부탁에 대응되는 새 직장에 메모리카드를 전해준다는 뜻 외에도, 언제까지고 인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천국에 보내주겠다는 두 번째 부탁에 대한 대답까지 함축되어 있다. (届ける에는 보내어 주다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니까 두 번째 부탁의 대상을 자의적으로 신으로 바꾸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어찌되었건 신에게 부탁하는 것은 맞지만, 애니만으로 유메미가 말한 신이 곧 쿠즈야라는 걸 유추하기는 어렵다.






유메미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유메미는 아마 망가진 세상에서 다시 인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곧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유메미에게 있어서 이것이 가장 큰 슬픔이다.


하지만 로봇의 신은 이대로 다시 기동하지 못하더라도(죽더라도) 인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천국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눈물이 흐를 것처럼 슬픈 와중에도 정말 기쁘고,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애니에서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는 유메미의 마지막 말을 새 직장이 어떤 곳일지 궁금해하는 말로 대체한 것 역시 아쉽다.

작품 내내 방사능 비로써 망가진 세상을 상징하는 부정적 소재로 쓰이던 비를, 유메미가 그토록 바라던 눈물에 대응되면서 승화시키는 상징적인 대사이기 때문이다.

유메미를 데리러 온 로봇의 신인 쿠즈야도 비가 오는 날 유메미를 찾아온 손님이다. 이런 말을 마지막에 쿠즈야에게 남긴 게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어쨌건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그래도 기회가 있으면 한 번 게임도 같이 해보는 것도 좋겠다.

할 때마다 짧은 분량에 농축된 스즈모토의 세밀함에 감탄하게 되는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