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햄버거 패닉
"이 변태 자식이이이이이이이이이!"
다음 날,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코헤이는 루미를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코헤이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오랜만에 루미의 강렬한 펀치를 얻어맞았다.
"자, 잠깐!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
다짜고짜 "네 교복을 줘"라고 말한 것이 치명적이었는지, 코헤이의 설득은 거기서 일단 중단되었다.
아직 분이 안 풀린 듯한 루미를 간신히 진정시키며, 코헤이는 필사적으로 마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보야, 이유부터 말하란 말이야. 난 또 뭐 부르세라 같은 건 줄 알았잖아."
*부르세라:부르마와 세일러복을 합쳐부르는 말로, 여학생의 옷에 대한 성적 패티시를 일컫는 속어
"유감럽게도 나한텐 그런 페티시는 없어."
루미의 표정이 온화하게 변한다.
"그런 이유라면 이해되네. 실은 여기 교복 이미 가지고 있었던 거 맞아. 원래 입던 교복이 더 어울리고 귀여워서 어쩌다보니 새 거는 안 입고 그냥 두게 되더라고."
"그럼 그건 지금 필요 없겠네."
"그건 그렇고, 학생이 한 명 늘면 당연히 눈치채지 않을까."
코헤이는 자신 넘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수염 성격에 학생 수를 일일이 기억할 리가 없지."
"뭐랄까, 대단한 담임이네."
루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코헤이는 주저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어쨌든 넌 소녀잖아. 그런 아줌마들이나 입을 법한 촌스러운 교복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범죄를 저지르는 기분이 들 거라고."
"그, 그래......그럴지도."
그래도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한 루미를 무시하고 코헤이는 말을 이었다.
"그럼 교복은 점심 시간에 가져다 줘."
"에엣, 오늘 말이야?"
"6교시에 시이나가 올 거거든."
루미는 한숨을 쉬었다.
"아 그래 알았어. 일단 빌려줄 뿐이니까 절대 더럽히지 말라고 말해줘."
"맡겨 둬."
물론 시이나라서 더러워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굳이 지금 루미에게 그것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
"자, 가져왔어."
막 점심을 다 먹은 코헤이에게, 아무래도 집으로 달려갔다 온 듯한 루미가 종이 봉투를 건네주었다.
눈에 띄지 않게 책상 안에 슬그머니 넣어두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 갖고 있다가 들키면 그야말로 변태 취급을 당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인기투표에서 미즈카에게 아쉽게 1위 자리는 내줬어도 역시 인기가 높은 루미의 교복이라면, 되팔았을 때 꽤 비싼 값에 팔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아볼까. 누가 얼마나 비싼 값에 살 지 궁금하기도 하고.'
잠시 그런 유혹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정말로 팔아치웠다간 루미에게 재기 불능이 될 때까지 맞는 것은 물론, 학교에 오는 걸 기대하고 있던 마유도 분명 크게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형편없는 놀이에 기어코 열을 올리는 것이 코헤이의 성격이다.
뭔가에 홀린 듯 경매라도 열어버리지 않도록, 여느 때처럼 우유를 곁들인 도시락을 먹고 있는 미즈카에게 봉투를 들고 갔다.
"나가모리, 여기."
"응, 알았어."
자연스럽게 받아주었다.
이럴 때 서로를 잘 아는 소꿉친구는 편해서 좋다.
이제는 약속된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
5교시가 끝나고 쉬는시간이 되었다.
코헤이와 미즈카가 마유와 만나기로 약속한 중정엔 그녀가 지루하다는 듯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의외로 오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다렸어?"
"응."
코헤이가 시계를 보니 약속한 시간과 딱 맞았다. 마유가 더 일찍 왔던 모양이다.
미즈카가 활짝 웃으며 마유에게 종이봉투 안을 보여준다.
"봐, 여기 교복이야."
마유가 환호성을 질렀다. 교복은 아마 소매도 넣지 않았을 테니 거의 새거라고 해도 무방했다.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손에 넣은 거야. 감사하도록."
"응."
"그럼 얼른 갈아입을까?"
미즈카가 마유를 데리고 나무 그늘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옷을 갈아입는 데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다.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듯했다. 대체 저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잠시 후, 대성공이라는 듯 기분이 좋아보이는 미즈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나와봐, 마유."
"뮤우웃."
평소보다 더 깔끔해 보이는 이유는 그냥 새 교복을 입었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마유는 기쁜 듯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역시 좀 큰가?"
몸집이 작은 마유에 비해 루미는 늘씬하고 키가 크다. 분명 옷 길이에 10센티미터 정도 차이가 날 것이다. 손은 소매에서 절반만 빠져나와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 잘 어울려, 마유."
미즈카는 싱긋하고 아이처럼 웃었다.
"그럼 둘은 교실 앞에서 기다려. 난 책상과 의자를 구해 올게."
코헤이는 그곳에서 일단 두 사람과 헤어지고 빈 교실로 향했다. 구석에 있는 책상과 의자 세트를 들고 교실로 돌아간다. 복도 쪽에서 미즈카와 마유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이나, 지금 네 자리를 만들어 줄게."
교실 안으로 책상을 옮겨, 자신의 자리 옆까지 가져다 놓았다.
슬그머니 스미이에게 말을 걸었다.
"책상 좀 뒤로 빼봐라."
"......얌마. 내 자리는 이미 맨 뒤인데 여기서 뒤로 더 어떻게 빼란 거야."
"하면 다 돼. 한계에 도전하는 게 인생 아니겠냐."
스미이의 말을 무시하고 그의 책상을 벽으로 밀어내고는 마유의 책상을 그 사이에 끼워넣었다.
"시이나, 여기가 네 자리다."
"호에~"
알아듣긴 한 건지 묘한 소리를 내었다.
벽에 바짝 처박혀 넋이 나가있는 스미이에게 미즈카가 사과했다.
"미안해, 스미이 군."
"애초에 얘는 누구야. 너희 둘의 자식이냐?"
"아하하, 그런 일은 없어."
"헛소리 말고 인사나 해."
코헤이는 스미이의 농담을 단번에 잘라버리고 그의 책상을 벽 쪽으로 바짝 더 밀어붙였다.
"끄으읏, 그만......진짜 죽는다......어......음, 난 스이미 마모루. 아가씨는 이름이 뭐야?"
"시이나, 마유."
"그렇군, 잘 부탁해."
"응."
그렇게 떠들고 있으니 루미도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얘가 네가 말한 애야? 생각보다 귀여운 아이잖아아아아아아악!"
루미가 갑자기 큰 소리를 질렀다.
어느샌가 루미 곁으로 다가간 마유가 루미의 양갈래 머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마유는 묘하게 즐거워보였다. 평소처럼 뮤우 뮤우 거리며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다.
"아팟, 아프다니깐!"
"마유, 그러면 안 돼."
마유는 아쉬운 기색을 보이며 루미의 머리카락을 놓아주었다. 루미는 부르르 몸을 떨며 살벌한 말을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 나나세도 자기소개 해."
"나는 나나세 루미......잇갸아아아악!"
"뮤우~!"
방심한 틈을 타 마유는 또다시 루미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루미의 트윈 테일은 페럿의 꼬리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 뱀인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물건도 '뮤우'라고 불러댔으니, 저 정도면 닮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즈카가 허둥대며 루미에게 다가간다.
"미안해, 나나세 양. 혹시 울어?"
어느덧 반에 있던 모두가 마유 주변에 모여 있었다. 당연히 모두 구경하러 온 것이다.
어리둥절해하는 마유를 에워싸고는 루미에게 그랬던 것처럼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루미 때는 남학생들 뿐이었지만, 이번엔 어리고 몽글몽글한 여자아이이기 때문인지 귀여운 걸 좋아하는 여학생들도 즐거워하며 몰려들었다.
"바보들아, 적당히 해. 시이나도 이런 거에 일일이 대답할 필요 없어. 천천히 적응해 나가라고. 일단 이제 곧 수업 시작하거든. 힘내라."
*
수업은 시작부터 앞길이 험난했다.
억지로 자리를 만든 탓에 마침 루미와 코헤이의 대각선 옆자리에 앉게 된 마유는, 두 사람을 쳐다볼 때마다 뮤우 뮤우 소리를 내며 계속 시끄럽게 굴었다.
'정말로 이대로 문제 없이 수업을 할 수 있으려나......'
코헤이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누가봐도 마유는 코헤이네보다 나이가 어려 보인다.
즉, 수업 내용은 상급생 수준이기에 마유로서는 따라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몹시 지루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마유는 지금도 상당히 따분해 보이고, 놀아달라며 보채고 있다.
루미가 뮤우 뮤우거리는 마유에게 짜증이 나서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얘, 조금 조용히끼야아아아아악!"
따분해하던 마유가 좋아하는 루미의 머리카락을 가만 놔둘 리 없었다.
코헤이가 입을 열려고 할 때, 이미 루미는 반쯤 울면서 책상에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 소동으로 중단되었던 수업이 재개되고 난 후, 코헤이는 마유에게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소동의 중심에 있던 마유는 어느새 행복한 표정으로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
밤.
자신의 방 침대에 누운 코헤이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마유의 일은 코헤이에게 꽤나 큰 정신적 피로를 안겨주고 있는 듯했다.
과거의 자신처럼 상처 입은 마유를 돕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돕는다는 행위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 일에조차 진지해지지 않으려 하는 면이 있는 코헤이가 이상하게 진지해지는 것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미즈카가 곁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닫고 틀어박혀 있던 코헤이를 바깥 세상으로 초대해 주려던 미즈카.
미즈카와 함께 마유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충족감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분은 나쁘지 않지만, 피곤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코헤이는 한 번 하품을 하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 ● ●
행복한 일상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즐거운 것들만을 계속해서 주우며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영원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계속 이어질 거라고 믿고 있던 것이 부서진 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울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속삭였다.
"영원은 있어."
그 말은
"여기에 있어."
내 마음이
"정말?"
영원이 있는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나에게 그것은, 그저 옛날의 행복했던 일상이 돌아온다는 의미에 불과했다.
깨닫고 보니, 나는 영원이 있는 장소에 서 있었다.
그것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 ● ●
"아무래도 네가 깨우면, 조건반사로 더 늘어져서 자고 싶어지단 말이야."
다음 날 아침 역시 기분 좋게 화창했다.
늘 그렇듯 미즈카가 깨워주는 와중에도 코헤이는 뻔뻔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깨워주면 금방 일어날 거 같은데."
"어떤 방식?"
미즈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말은 꺼내 봤지만, 사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으니 적당히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내뱉어보았다.
"글쎄, 키스해서 깨워준다거나."
"어차피 그렇게 해도 분명 계속 푹 자고 있을 거면서."
"바로 일어나겠지."
"왜?"
"두근거릴 테니까."
아무렇게 대답을 하고 나서야 멍청한 말을 내뱉은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미즈카는 코헤이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허둥지둥 당황하고 있었다.
"나 같은 애한테 키스 받는 건데 기뻐?"
"남자는 다 그런 법이야."
어색한 기분에 코헤이는 대충 이야기를 매듭지으려 했지만 미즈카는 아직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다.
"그렇구나, 나한테 키스 받는 게 기쁜 거구나......코헤이."
미즈카는 엄청나게 부끄러운 대사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코헤이는 얼떨결에 미즈카에게서 옷과 가방을 빼앗아 계단으로 도망쳐 버렸다.
*
조금 낯간지러우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그대로 남은 채로 두 사람은 등교했다.
교실에는 루미가 있었다.
왜인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 트윈 테일을 양손으로 잡고 있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지키는 중이야. 보면 모르겠어?"
무엇으로부터냐고 물을 틈도 없이, 교실 문을 드르륵 열어젖히며 마유가 뛰어 들어왔다.
"뮤우~!"
그렇게 말하더니 느닷없이 자신의 트윈 테일를 쥐고 있던 루미의 양손을 꽉 움켜잡고는 그대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하, 하고 납득한다.
"너 말야, 머리카락 안에 뭔가 숨겨두는 건 어때? 선인장이라든가, 폭탄 같은 거."
"세상 어느 여자가 그런 걸 머리카락에 넣고 다닌다는 거야. 최악이거든."
"그럼 포기해. 시이나가 네 머리카락을 안 잡아당기게 될 거라곤 생각되지 않으니깐. 페럿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코헤이는 가챠없이 단언했다.
루미가 뭐라 말을 하려던 순간, 수염이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왔다.
*
점심시간.
학생들은 저마다 학생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거나, 교실에서 도시락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유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시이나, 밥 안 먹어?"
"돈만 있어."
"그럼 학식이군."
"칵씩?"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단어인 듯 하다. 마유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학식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코헤이는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학교에는 학식이란 게 있어. 학생 식당의 줄임말이지. 도시락이 없는 녀석은 거기서 음식을 주문해 먹거나, 옆에 있는 매점에서 빵을 사 먹어. 어느 쪽이든 시이나 네가 좋아하는 쪽을 선택해서 돈을 내고 먹으면 돼."
"응."
어쩐지 걱정을 하게 만드는 마유가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학식은 신발장 쪽으로 가는 복도에서, 반대 방향으로 쭉 가면 돼. 음식 냄새가 날 테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잠시 마유를 따라가 볼까 생각했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래선 안 됐다.
친절하게 보살펴 주는 건 미즈카 한 명이면 충분하다. 마유를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만이 그녀의 마음을 여는 방법은 아닐 터였다.
"자, 갔다 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마유가 혼자서도 제대로 잘 해나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그 첫 발을 내딛게 해주는 것이다.
혼자서 끼니를 때울 수 있도록 노력하게 해야 한다.
마유는 여전히 코헤이 옆을 떠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혼자서 모르는 장소에 가는 것이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다.
"배 안 고픈 거야?"
"배고파......"
"배고픈 상태론 오후 수업을 들을 수 없겠지?"
"응."
"어라? 무슨 일 있어?"
신경 쓰였는지, 미즈카가 상황을 보러 다가왔다.
"시이나 혼자 학식 갔다 오게 하려고."
마유는 미즈카에게 의지하듯 뮤우 뮤우거리며 다가갔다. 그 애처로운 표정을 보고 미즈카가 나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역시 안 되겠어. 내가 같이 가줄게."
"안 돼. 그래선 학교에 온 의미가 없잖아. 시이나도 나가모리에게 울며 매달리지 말고, 제대로 혼자 가."
마침내 결심한 것인지 마유는 혼자 달려 나갔다.
코헤이는 그 모습을 신경 쓰며 바라보고 있던 루미에게 말을 건넨다.
이미 코헤이와의 실랑이에서 본색이 드러난 탓인지, 오늘은 그녀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남자들이 한 명도 없었다.
"나나세, 점심 먹자."
코헤이는 자신의 책상을 억지로 루미의 책상에 붙인다.
미즈카도 작은 도시락통을 들고 루미에게 왔다. 코헤이는 자기 책상에서 미리 산 빵을 꺼냈다.
시끌벅적하게 점심을 먹는 와중에, 일찍 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들어온 남학생이 코헤이에게 다가왔다.
"오리하라, 매점에서 그, 이름이 뭐였지, 아무튼 네가 데려온 애가 울고 있더라. 돈이라도 안 가져 온 건가?"
미즈카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가자!"
미즈카가 코헤이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매점으로 달려가 보니, 그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 너머에서 마유임을 바로 알 수 있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매점의 빵 판매대 쪽이다.
인파를 헤치고 마유 쪽으로 다가갔다.
빵이 진열된 선반 앞에서 빵을 산더미처럼 쏟아버린 듯한 마유가 엉엉 울고 있었다.
미즈카가 그 빵을 주워 주었고 코헤이도 함께 거들었다. 그때 코헤이는 그것들이 전부 햄버거라는 것을 확인했다.
"무슨 일이야?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흑흑 흐느끼며 마유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햄버거......"
"마유, 햄버거가 먹고 싶었구나."
"하지만, 부족해......"
마유의 눈에 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햄버거의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
자신과 미즈카가 주운 것을 모아보니 딱 12개가 되었다.
"너, 12개나 먹으려 한 거야?"
"잔뜩 먹고 싶어."
"잔뜩 먹고 싶었다 해도 12개는 너무 많잖아."
미즈카가 부드럽게 설득한다.
"자, 마유. 제대로 계산해 보자. 햄버거 한 개에 160엔이지? 마유는 얼마 가지고 있어?"
마유는 손바닥에 올려진 500엔 동전을 미즈카에게 보여줬다.
"그럼 세 개밖에 살 수 없겠어. 게다가 주스도 마시고 싶지?"
"주스 마실래."
"그럼 주스를 살 돈도 남겨두어야겠네. 그럼 두 개야."
"햄버거, 더 먹고 싶어."
"그러면 주스는 안 마시면 돼?"
"마실래."
"어느 쪽이야."
이 상태로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질의응답이 계속될 것 같았다.
게다가 정말로 배가 고픈 거라면 참는 건 괴로운 일이다. 코헤이도 식욕이 왕성하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잘 이해한다.
"빌려줄 테니까 나중에 꼭 갚아. 그래도 12개는 너무 많아. 몇 개나 먹고 싶은 거야?"
"10개......"
"절대 다 못 먹어. 줄여. 아니면 더 싼 걸로 고르든가. 앞으로도 식비가 계속 들 텐데 어쩌려고."
"햄버거가 좋아."
"나도 좀 보탤까?"
"내 걸로 충분해. 하지만 여섯 개로 끝내. 그 이상은 분명히 못 먹을 테니까."
"여섯 개......응."
못내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유는 햄버거 여섯 개를 집어 들었다. 코헤이는 마유의 돈으로 살 수 없는 남은 네 개의 햄버거 값을 대신 내기로 했다.
햄버거 몇 개는 분명히 남을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는 코헤이의 속도 모른 채, 마유는 품에서 넘칠 듯한 햄버거를 안고 당장이라도 콧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기세로 교실로 돌아갔다.
"우왓, 뭐야 이거!"
갑자기 자기 책상에 햄버거가 툭툭 산더미처럼 쌓이자 루미는 당황했다.
"시이나의 점심이야."
"그나저나, 잘도 그렇게 똑같은 것만 먹고 싶은가 보네."
코헤이가 그럴듯하게 한마디 던지자, 마유는 기쁜 듯 햄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하지만, 예상 했던대로 마유가 다 먹은 것은 두 개 뿐이고, 세 번째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바로 항복하고 말았다.
"이제 배불러......"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교복 소매로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는 모습을 본 루미가 소리를 질렀다.
"이 녀석, 소스가 묻잖아!"
"역시 그렇게 많이 못 먹었잖아."
지금 마유는 작은 어린아이와 같다.
눈으로 보고 이 정도는 거뜬히 먹을 수 있다고 믿어버리고, 실제로 자신의 위장 용량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부분도 차근차근 가르쳐 줘야 겠다고 코헤이는 생각했다.
결국 점심 쉬는 시간은 점심만 먹고 끝났다.
*
5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뮤우......화장실."
"스스로 찾아가봐. 학교엔 널린 게 화장실이니, 가다 보면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거야."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시이나가 교실을 나간다.
"어라, 마유는 어디 갔어?
걱정스러운 듯 미즈카가 다가왔다. 점심시간 때 일도 있으니, 걱정돼서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화장실."
"장소는 알려줬어?"
"아니. 어차피 화장실은 학교에 많이 있잖아. 복도에서 왼쪽으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든 화장실은 있다고."
"괜찮을까......"
그럼에도 미즈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점점 코헤이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있지, 코헤이."
"뒤쫓아 가볼까."
복도로 나가서 마유의 뒷모습을 찾는다.
두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는 마유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제대로 찾아갔네."
"당연하지. 똑바로 걸어가서 다른 교실에 들어가거나 창문으로 뛰어내리지 않는 한, 제대로 화장실에 도착한다고."
하지만 마유가 머뭇거리는 사이, 다른 여학생이 슥 하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유는 따라 들어가지 않고, 왠지 그대로 지나쳐서 계단을 내려갔다.
"저 녀석, 자기 집 화장실이랑 헷갈려하고 있어."
다음에 멈춰선 곳은 바로 생활지도실이었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다.
생활지도 교사가 설마 학생 전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리는 없겠지만, 가짜 학생인 마유가 들락날락 해도 좋을 장소는 아니다.
코헤이와 미즈카가 초조해하고 있는 사이, 별다른 일 없이 마유가 나왔다. 화장실이 아니었으니 다시 나온 것 같다.
하지만 마유가 상태가 이상했다.
보폭이 좁아지더니 발걸음이 빨라지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불안한 표정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그대로 종종걸음으로 신발장 쪽을 향해 달려갔다.
"마유, 어디로 가려는 거지?"
마유는 신발도 갈아 신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하나의 추측이 코헤이의 머릿속에 떠올랐고, 코헤이는 흠칫 놀랐다.
"저 녀석, 밖에서 할 생각이다! 저거 안 막으면 위험해! 뛰어, 나가모리!"
두 사람도 실내화를 신은 채로 마유를 쫓았다.
마유가 나온 곳은 인적이 드문 중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시기상 원래라면 없을덴데 지금은 배구를 하며 노는 여학생들이 중정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론 숨어서 용변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코헤이와 미즈카가 필사적으로 마유를 따라잡았을 때, 그녀는 이미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미안해, 마유. 자, 화장실은 이쪽이야, 알겠지."
미즈카가 마유의 어깨를 감싸 안고 교사로 데려간다.
배구를 하던 여학생들은 동작을 멈추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
그날 밤, 미즈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야, 나가모리."
『마유의 일인데.』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역시, 무리인 걸까.』
"학교 생활 말이지."
"응."
미즈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게 되어 버려서......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게 돼.』
목소리가 촉촉해졌다. 전화기로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눈물을 억누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즈카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는 무조건 손을 내밀고 마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드러운 소녀의 상냥함이지, 사자 새끼를 깊은 골짜기에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엄격한 상냥함은 아니다.
응석을 받아주면 끝없이 받아주고 만다.
자신의 아이를 꼭 껴안아주는 어머니처럼.
무조건 받아들여 주는 친절함은 미즈카의 정말 좋은 점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은 마유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바로 코헤이가 엄격한 역할을 맡아야만 한다.
"저기, 나가모리......지금 시이나는 자기 힘으로 해보려는 의지가 있어. 그래서 이런저런 일이 있어도 학교에 오고 있는 거야. 우리는 시이나의 친구로서 끝까지 지켜봐 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잘 생각해 봐. 싫증이라도 난다면 시이나는 학교에 안 나오게 될 뿐이야. 결국 예전과 다를 게 없게 돼. 아직 시이나에겐 그게 전부인 거라고."
『그렇네. 마유,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그렇게는 만들고 싶지 않아.』
"그리고 말이지, 시이나와 너무 자주 같이 돌아가지 마. 앞으로는 스스로 친구를 만들 수 있게 해줘야 하니깐."
『응......맞는 말이야. 고마워, 코헤이. 그럼 잘 자.』
"어, 그래. 너도 잘 자."
코헤이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뭔가 나, 평소와 다르게 엄청 진지하네.'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피로는 최대치에 달했다. 내일도 마유 관련된 소동이 많이 생겨 여러모로 힘들어질테니 빠르게 잠들어 버리자.
그렇게 생각한 코헤이는 금방 잠들었다.
● ● ●
금방이라도 저물어 가려 하는 석양이었다.
너무나도 슬픈 광경을, 나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슬픈 광경 속에, 나는 있어야만 하는 걸까.』
『나한테는 그저 아름답게만 보일 뿐인데,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슬픈 광경인 건가봐.』
아무도 없는, 밤이 다가오기 직전의 바다. 밀려오고 되돌아가는 파도 소리는 들려오지만, 역시 밤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네 안에 있는 광경인 것은 분명해. 』
『내 마음을 풍경으로 바꾸어 보았을 때의 모습인 걸까......』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너무 슬프지 않아?』
이런 장소이기에 더욱, 나는 원했을 것이다.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는, 고립된 장소. 아무것도 없는 이 장소에서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무척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과 맞바꾼 대가로 닫혀버린 것일까.
아니면, 오직 너와 함께 폐쇄되기 위해서, 이 세계는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어디까지고 가버리면 되는 것이다.
내 마음의 깊은 곳으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나나세 머리를 잡아당기는 마유
원작에서도 존재하는 나나세 교복 경매 이벤트. 선택에 따라 경매 붙일 수도 있다. 진짜로는 못 팔았지만
번역 매번 잘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