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의 적장자 연산군
세자시강원에서 학문을 배웠으나
기록에는 소시에 공부를 싫어하였다고 한다.
연산군은 즉위 후에도 경연에 나가기를 거부했고 능상을 싫어했다고 한다.
능상을 싫어해서 일어났던 사건이 그 유명한
김종직의 조의제문으로 인해 일어난 부관참시가 그것이다.
"무오사화 이후 사관이 쓸 수 있었던것은 왕이 지시한 어명 뿐이었다"
<중종실록 2년 6월>
연산군의 광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갑자사화로 이어진다.
윤씨를 폐비시킨 일에 가담한 자들을 모두 숙청해버린 것이다.
전국의 기생을 모아 흥청을 뽑았고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겠다 싶어 흥청망청이라는 말도 생겨난다
창덕궁 후원에 서총대라는 대규모 연회장을 건설하는데 모든 국고를 탕진한다.
내시였던 김처선은 이처럼 문란한 왕을 본적이 없다고 목숨을 걸고 간언을 했으나
연산군이 직접 쏜 화살에 쓰러져 죽게된다.
말머리 왜 안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