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풍후의 근초고 라마동 역사 연구
고대 조선반도 나라들은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고싶어서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 대방군에게 조공 바치고 선진문물을 하사받았다
현토 낙랑 대방은 오늘날로 치면 알리 테무 다...
요동 현토 낙랑이 고구려에게 먹히고
대방이 고구려 백제 양쪽에게 먹히자
요동 현토 낙랑 대방의 기술자들과 지식인들과 호족들 중 만주 서쪽 요서 지방으로 도망간 자들이 많았다
그 땅엔 모용선비와 부여의 혼혈 종자들이 살고있었고 이들을 고고학적으론
'라마동 집단'이라 부른다
이들은 우수한 승마용 마구 제작,금은 장신구,엄청 세밀한 드래곤 금동제 장식 버클 허리띠 제작 기술을 독점했다
그 라마동 집단 중 어느 버림 받은 부여씨 왕자가 선비족 부여족 해적들을 데리고 배 타고 바다 건너 한강 유역에 상륙해서 마한의 작은 부족국 '백제'를 먹고
마한의 몰락해가는 진씨 가문을 도와
고이 계통 마한 왕을 부셔 먹고
백제 왕이 된다
그가 바로 '여구'이고 성씨는 '여'씨(부여씨의 줄임말) 이름은 '구'로
그는 마한의 전설적인 족장 '초고'를
계승해서 자신을 '근초고'라 한다....
그 후 근초고는 20년간 제위 중 뭘 했는지 공백인데
정치는 진씨 가문에게 맡기고
아마도 바다 건너 왜국 땅으로 건너가서
그 곳의 토산물들과 부족들을 직접 조사하고
다닌거 같다
그의 일본열도 대모험은 '야마토 타케루 대서사시'로 변질된다
그는 동아시아 버전 길가메쉬 페르세우스 였다....
근초고 공백기 20년 동안
한반도 남부의 마한 침미다례 소국들과
변한 구야국 중심 임나가라 연맹과
경상북도의 진한 신라 연합은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인다
낙랑,대방이 사라지고 무역로 루트를 두고
세틀러 하다가 서로 히틀러가 되어가고있었다...,
즉 교역의 주도권을 놓고 벌인 싸움
그 전쟁을 '포상팔국 합전'이라 부른다.
이 서기 4세기는 요서,만주,한반도,일본열도에 엄청난 세력 재편이 이루어지는 광풍의 시기였다.
당시 중국은 위 촉 오를 통일한 사마중달 가문이 난징에 쳐박혀서 찐따 동진이 된 상태였고
중국 북부 지구는 기마민족 폭주족들이
막 부릉부릉 폭동과 겁탈 섹X 대학살을
하고있었다....
이 시기를 '다섯 기마 폭주테러리스트족이 16개 나라를 세운 시대'라 부른다....,
근초고는 이 대혼란의 시기에
난징 정권으로부터 한반도 막부의 쇼군 겸 낙랑 총독으로
책봉받아 중국인 지식인,중국인 기술자들을
마구마구 받아들여서
낙후된 미개국 마한 백제 문명을
세련된 제국으로 발전시키고자했다
즉 '유교 도교 문명화'....(근대화 느낌)
중국인 지식인들은 요동 현토 낙랑 대방 출신인데 그들은 오랑캐 야만족을 경멸하고
중국을 숭배했다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중국 난징 사마씨 찐따 황제의 '쇼군(장군) 책봉'이 필요했다.
책봉 받으면 근초고는 중국인 지식인들을 사마 , 장사 , 참군 이런 막부 요직들에
임명한다. 중국 본토 지역 태수 직들에 임명하고 그 중국 본토 지역들의 호족들이나 마한계 부여계 낙랑조선계 동포들과
긴밀히 연락해 무역을 한다....
그렇게해서 요서 라마동 땅(=창려 극성 일대),산동, 난징, 절강성 ,복건성 ,규슈 ,대만, 필리핀 등으로 적극적 해외 진출을 함.
고구려 왕 사유(고국원왕)는 이런 근초고의
계획을 밟으려고 했는지
서기 369년 전격남침하다가
빠르게 개털려서 목이 따여서
창대에 목이 걸려서 대롱대롱 당함.
※막부 : 쇼군의 독자적 행정통치기구
(근초고 후손인 왜왕이 임나가라 땅에 설치한 임나일본부도 식민지가 아니라 막부의 개념으로 봐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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