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풍후 하룻밤에 읽는 후삼고쿠 지다이 말기 력사
때는 후삼국시대.
호족연합 바지사장 왕건은 풍수지리 도사,불교 승려,당나라 숭배 유학 2030 , 4050 장군들 이들에게 열심히 아부 떨고
아낌없이 국비 지원 해주어 왕권을 강화시켰고
마지막 '책봉'이란 단추..
중국 대륙이 분열되어있던 5대10국 시기에
중국 북부 지역 강자 '후당'
이 후당에 조공하고 드디어 책봉을 받아내어
당나라의 계승자 후당이 인정한 유일한 한반도의 공인 정권으로
인정받는 것에 성공한다
후삼국 시대 말기, 서기 933년
고려 태조왕건은 중국 후당으로부터 현토군 총독 겸
삼한을 대의로 다스리는 총군사령관으로 책봉 받는다
그 때가 서기 933년 그러니까 후삼국 시대가
끝나기 3년 전이다
1년 전인 서기 932년엔 왕건이 후백제의 지방 통제와
군현 설치에 불만 품은 '매곡' 성의 다이묘 본읍장군 '공직'의
귀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해서
후백제의 북방 방어선 연산군현 성-매곡 성-삼년산성의
방어 체계가 무너졌다
연산군현 성이 왕건에게 함락되고
삼년산성도 왕건에게 무릎 꿇었다
견훤의 포악함,신라 경주 정권의 무능, 거기에 후당의 책봉
이렇게
삼각김밥이 완성되어
견훤 신라 왕건 왔다리 갔다리 하던
호족들의 마음은 왕건에게로 더욱 더 쏠린다.
결국 얼마 후 왕건이 삼한을 통일했다
고려측 기록은 후백제 멸망 원인을 후백제 태자 신검의 폐륜으로
적고 있으나
후백제의 국제적 왕따 외교적 고립
견훤의 무리한 지방 군현화와 호족 통제로 인한
호족의 불만
강경 파와 대화로 해결 파의 대립이 결국 후백제 태자 신검의 폐륜으로
이어진게 아닐까
아마도 왕건이 후당,오월과 강력한 친교를 맺어
외교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후백제를 신라를 괴롭히고 학살하는 테러리스트 전쟁범죄
정권으로 낙인 찍어
후백제가 후당,오월과 무역 하는 것에 큰 지장을 주어서
경제난을 몰고온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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