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년 민족사에서 오늘날 70여년을 이어오는 분단사는 우리 민족에게 미증유의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는 중차대한 사회적 의제로서 의례 심오하고 포괄적인 학문적 조명과 성찰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 남북한을 막론하고 이 민족사적 의제를 다루는데서 사회학적 접근방법에만 집착하고, 민족의 역사문화와 전통에 바탕한 인문학적 접근방법은 거의나 소외되고 있다. 분단과 통일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한민족일진대, 민족을 배제한 민족공동체의 복원이나 재통일은 결코 성사 불가능하며, 민족론(민족과 민족주의에 관한 이론)을 무시한 통일담론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다행히 근간에 와서 이러한 문제점을 감지한 일부 연구자들은 뒤늦게나마 통일담론을 민족론과 접목시켜 개진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그들 대부분은 서구의 진부한 민족론, 특히 민족주의론에 훈육된 나머지 참 민족주의에 대한 무지와 오해, 왜곡 속에 통일담론과 민족론의 이론실천적 접목에 대해서는 불신하거나 회의적이다. 오히려 그들에 의해 민족주의는 ‘야누스의 얼굴’로, ‘패러독스로 가득’한 ‘비인간적인 허위의식’으로 매도됨으로써 통일담론에는 민족론이 발붙일 입지가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작금 유행되고 있는 통일담론은 일관된 향도적 지침이며 방향타인 철학이 결여된 한낱 방담(放談)의 수준에 그치기가 일쑤다. 세계적 희유의 분단사를 다루는 담론에 철학이 없다는 것은 학문의 후진성을 말하기에 앞서 자못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필자는 ‘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이란 제하에 나름대로 통일담론의 접근방법으로 사회학적 접근방법과 인문학적 접근방법을, 통일담론의 체제와 틀로 국가중심패러다임과 민족중심패러다임의 유가적 배합을 동시에 제시하면서, 이 모든 방법과 체제의 공통분모가 되는 것은 민족주의라는 지론을 개진하였다. 그러면서 민족주의의 3대 근본속성인 연대의식과 민족수호 의지 및 발전지향성을 통일담론의 3대 철학적 기조로 자리매김해 본다.
이 대목에서 특기할 것은 통일담론의 3대 철학적 기조는 필자의 협애한 두뇌에서 억지로 짜낸 개념이 아니라, 그 동안 남북 간에 진행된 숱한 통일담론 결과로 맺어진 일련의 협약서 가운데서 남북 정상 간에 합의되어 발표한 6건의 주요한 공동성명이나 선언 및 합의서 내용에서 그 고갱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내용에 통일담론의 ‘철학적 기조’라든가 논리적 입론(立論)이란 명시(明示)는 없지만, 세세히 따져보면 바로 그 ‘철학적 기조’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이것은 이러한 ‘철학적 기조’가 많든 적든, 영성적(零星的)이든,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간에 일찍부터 남북 간 통일담론에서 논급되어 왔음을 시사한다. 다만, 민족주의와 그 속성에 생소한 ‘연구자’들이 그것을 미처 제대로 포착해 이론화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이것이야말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의 통일담론은 이러한 철학적 기조를 거울로 삼아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통일담론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담론이 어떤 패러다임에 의해 운영되는가가 담론 자체뿐만 아니라, 통일의 진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민족 2체제’라는 한반도 분단사의 특수성으로 인해 통일담론은 국가중심패러다임과 민족중심패러다임의 2중 패러다임에 의해 운영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국가중심패러다임을 국가 대 국가의 ‘흡수론’으로 오해하고 민족중심패러다임과의 인위적인 대립과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통일담론을 방해하고 평화적 통일의 실현을 무산시키는 폐단을 더 이상 범하지 말며, 이 2중 패러다임을 유기적으로 잘 배합해 통일담론의 운영에 효용(效用)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남북 간에는 많은 통일담론이 오갔으며 여러 가지 통일 정책과 방안들이 제시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한반도는 세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상쇄될 수 없는 수치스러운 민족사다. 원인은 단 하나, 합의통일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냉전시대에 분단으로 운명을 같이했던 몇몇 나라들은 전쟁이 아니면 일방적 흡수의 형식으로라도 나름의 통일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분단으로 인한 민족상잔까지 겪어낸 한반도는 더 이상 전쟁이나 흡수의 형식으로는 바람직한 통일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남북한 통일주체들의 한결같은 의지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요청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지와 요청에 부응되는 통일의 형식은 진지한 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을 통한 합의에 의한 통일, 즉 합의통일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러한 합의통일을 가로막는 걸림돌 몇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 당면하여 극복해야 할 걸림돌로는 정치적 체제통합에서의 연합과 연방 문제와 더불어 의식구조에서의 통일 미래에 대한 회의론이다. 그리하여 졸고에서 체제통합문제로서의 연합과 연방에 관한 개념과 원리 및 상호관계의 해명을 시도하였으며, 회의론 불식(拂拭)으로서의 통일편익론을 피력하였다.
통일의 궁극적 목적은 정치적 체제통합을 기제로 한 민족공동체의 복원과 부흥이다. 따라서 이 모든 문제의 해명과 제시에는 민족의 연대의식과 민족수호의지 및 발전지향성의 속성을 기조로 한 민족주의 철학이 온축되어 있음을 새삼스러이 강조하는 바이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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