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진정갤에 쓴 글인데 진정갤에만 보여주기 아까워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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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에 대한 첫 인상은 이 책이 혐오와 조롱으로 점철되어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적개심을 책에 공공연히 드러내며 이들을 격하하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개요에서 그는 트랜스젠더란 20세기 중반에 생겨난 인위적인 개념이며 트랜스젠더들이 자신들을 성역화하며 “실제 여성”이 겪는 고통의 역사를 덮으려 할 뿐 아니라 그들의 파트너에게 고통을 준다(!)고 주장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책이 페미니즘 도서로 팔리고 있는 현 상황이 신기하다.

이 책이 곳곳에서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저열한 어휘들을 굳이 일일이 언급하지 않겠다. 굳이 맛보기로 예를 들면 트랜스여성이 여장 취미를 가진 고약한 남성일 뿐이라고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 (“‘성전환’ 수술을 요구하는 남자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바로 남자 몸으로는 남자를 사랑할 수 없다고 느끼는 동성애자 남자, 그리고 이성애 성향이 강하지만 본인의 여장 취미에 정점을 찍기 위해 ‘성전환’을 꾀하는 남자다.”) 등이 있다.

저자는 첫 장에서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이론을 빌려와 트랜스젠더라는 개념도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동성애자가 “주어진 조건으로 고통받는 자들로 개념화”되면서 해도 괜찮은 행동(이성애)과 용납할 수 없는 행동(동성애)을 구분할 수 있게 되며, “동성애자라는 멸시받고 처벌받는 특수한 역할을 만듦으로써 사회 대다수를 순결하게 유지할 수 있다.” (메리 매킨토시의 The Homosexual Role) 그는 이에 착안하여 트랜스젠더 담론 역시 트랜스젠더를 성 역할에 순응하는 자들로부터 분리하여 개념화하면서, 성 역할에 순응하는 것을 올바른 젠더 행동으로, 이에 반하는 것을 용납될 수 없는 젠더 행동으로 규정하여 성별 위계를 공고히 하는데 이용된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그는 트랜스여성이 여성의 성 역할을 모방하는 모습이 도리어 성 역할을 고착화시키며, 이러한 성 역할 자체가 없어져야만 여성 해방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 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는 의학의 발달로 성전환 수술이 가능케 된 의료계와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여기는 동성애자들, 그리고 남성들의 일반적인 취미인(!) 여장 문화에 빠진 남성들의 결탁(!)으로 생겨난 정치적인 개념이라 말하는 우를 범한다. 이 주장이 얼마나 많은 오해를 갖고있는지는 차치하고, 문제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느낄 감정을 곡해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트랜스젠더가 된다는 것은 (책에서 길게 설명하는) 성별을 바꾸는 것에서 오는 성적 쾌감 같은 것이 아니다.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의 신체가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는데서 오는 불쾌감, 자신의 정체성이 사회에서 차별받는다는 사실을 끌어안고 살아야만 한다. 트랜스젠더가 유전적으로 발현되는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온 시대에, 한낱 “여고생쟝이 되고싶어하는” 정도의 이야기와 트랜스젠더를 등치시키는 것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몰이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저자의 주장을 전제한 상태에서, 저자는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페미니즘에, 그리고 패미니즘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지 설명한다. 이들에게는 트랜스여성의 존재 자체가 여성 해방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다만 저자가 트랜스여성이 겪은 성추행 경험을 희화화하며 2차 가해하는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실었다는 점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트랜스젠더가 처음 가시화되었을 때 여성운동계가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반대했다는 설명은 (놀라울 일도 아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놀라웠다. 저자는 이후 퀴어 이론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저술하며 퀴어 이론의 목표가 2세대 페미니즘이 상정하던 목표보다 덜 급진적이라고 비판한다. 나는 그런 해석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설령 그렇다해도 급진적이기 위해 여성의 순수성을 지키고, 연대의 대상을 좁히고, 피억압 민중을 갈라놓는 것이 투쟁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의문이 있다. 이들은 레즈비언이 아닌 모든 성소수자가 겪는 억압을 도외시하니 크게 의미가 없는 질문이지만 말이다.

이 책의 주요 공격 대상이 트랜스여성인 반면 트랜스남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짧게 다루는데, 트랜스남성이 대부분 레즈비언 공동체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며, 레즈비언들의 펨-부치 관습이 성 역할을 강화시킨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트랜스남성들이 성 카스트(저자는 성 계급이라는 표현이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허황된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성 카스트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의 지배적 카스트인 남성으로 올라가 “가부장제가 떼어주는 개평”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변절자라는 것인데, 저자는 트랜스남성들 개인이 이렇게 일부 이득을 얻을 수는 있지만 페미니즘에는 장기적으로 해가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트랜스남성들에게 여성해방의 대의와 개인의 건강을 위해 여성으로 살아갈 것을 권하는 챕터인데, 글쎄 그런 개평이 저자와 같은 트랜스혐오자들의 시선을 참고 견딜수 있는 수준으로 큰지는 의심스럽다.

한편으로 저자는 “트랜스젠더를 하는 것”이 당사자 자신의 건강과 그들의 여성 파트너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에 대해 서술하는데, 마치 반동성애 세력이 “동성애를 하는 것”이 어떻게 나쁜지 선동하는 것과 비슷하게 들려 조금 불편했다.  성전환 수술과 호르몬 요법의 위험성에 대한 부분은 반동성애 세력의 항문성교 관련 선동과 비슷하게 들렸고, 트랜스여성의 여성 가족들의 수기를 통해 이들이 겪는 고통을 조명하는 부분은 동성애자들 조차도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숨기고 위장결혼 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 처럼 보인다. (사실 애초에 트랜스젠더를 ‘선택’, ‘모험’, ‘성적인 유희’ 등으로 보는 입장에서 써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다만 레즈비언이면서 트랜스젠더인 척 수술을 받았다가 후회하게 된 여성의 사례는 오히려 트랜스젠더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듯 보여 흥미로웠다. 때문에 트랜스젠더 아동에 관한 이야기를 저술한 6장은, 마찬가지로 트랜스혐오를 선동하는 이야기일 것이 분명해서 읽지 않았다.

일곱번째 장에서 다루는 젠더 관련 국제법에 대한 비판은 여덟번째 장에서 설명 될 “여성” 공간과 트랜스젠더의 관계로 이어진다. 저자는 젠더권 입법이 1. 여성만의 공간이 존재할 수 없게 만들며, 2. 젠더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젠더 고정관념에 대한 부분은 이후에 설명하도록 하고, 저자는 이 챕터의 절반을 할애해 젠더 관련 입법이 끼치는 해악이라고 주장하는, “여성”만의 공간을 트랜스여성(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트랜스젠더를 하는 남성들)이 “침범”하면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이 부분에서 여성전용 공간에 남성이 들어와 범죄를 저지를 수 도 있다는 공포심에 호소하기 위해 이 모든 혐오를 빌드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트랜스여성 또한 주류 남성 권력으로부터 배제 당하고 여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그들이 마치 여성공간에 침입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를 하는” 것 처럼 왜곡하는 저자의 주장에는 참담한 심정이 든다.

이후 저자는 그 다음 장에서 남성과 분리된 여성 전용 공간의 필요를 역설한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그나마 읽을만한 부분인데, 그는 여성 전용 공간이 여성을 정치적으로 모일 수 있게 해주며, 남성의 감시와 학대로부터 여성이 벗어날 수 있게 해주며, 여성들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말하자면 저자가 이야기 한 대로 시스 여성과 트랜스 여성이 겪은 경험을 다를 수 밖에 없고, 아무리 트랜스 여성이 소수자라 한들 여성으로 길러진 사람이 어릴때부터 겪어온 차별에 깊이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더욱더 고민하고 극복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역시나 이 문제에서도 트랜스여성을 여성이라는 범주에서 배제하는 시선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그 이상의 논의로 나아가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페미니즘이 “젠더를 박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데 이 젠더라는 개념을 저자가 자의적으로 오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저자는 젠더라는 단어의 의미를 남성과 여성간의 성별 권력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에 한정해서 쓰는데, 이렇게 정의된 젠더라는 단어를 젠더 정체성, 트랜스젠더와 같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 용법에도 사용하여 이들이 마치 성 역할과 성별 권력을 옹호하는 개념인 것 처럼 왜곡한다. 또한 저자는 책을 통틀어 계속 생물학적 여성에 힘을 주어 말하는데, 트랜스젠더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양반이 생물학적 성별도 사실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생물학적 성별을 우리는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개개인의 유전자를 들여다 볼 것인가? 사실 XY 유전자 조차도 성별을 완벽하게 결정짓지 못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온 바가 있다. 그렇다면 성기를 통해 성별을 구분짓는 성기환원주의로 돌아갈 것인가? 에르퀼린 바르뱅처럼 여성으로 길러져 자신을 여성으로 자각하다가 신체구조상 남성으로 뒤늦게 판정받은(그는 간성이었다) 사람의 경우는 여성으로 볼 것인가? 남성으로 볼 것인가?

물론 저자의 말 처럼 성 역할 고정관념과 성별 권력을 폐지하고 어떤 성별이든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중요한 목표이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목표를 비교적 손쉽게 달성하기 위해 일부 소수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비논리적인 주장을 펼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성 해방은 중요하지만, 그를 위해서 소수자들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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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할만한 글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의 해당 책 비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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