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newsmin.co.kr/news/13371/ 이 글에 대한 반론(?)임을 밝힘.)
위 글에서 소위 국내의 '문화주의자' 중 한 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심광현의 이론을 한번 설명해보겠음. 그의 이름은 그렇게 크게 알려져있지도 않고 몇몇 구좌파 인사들이 비판하는 면도 있지만 그 사유의 참신성과 포괄성에서는 본받을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소개함. 여담으로 노무현 정부 때는 문화부 차관 인사청탁 논란(?)과 이명박 정부에서는 해직 소동이 벌어지는 등 다이나믹한 과거사를 갖고 있는 양반.
참고로 이 양반은 본래 미학 전공인데 논문이나 책을 읽어보면 동-서양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제반 학문들을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양반이라 충분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읽기가 조낸 까다로움.
심광현은 2010년대에 들어서 조반니 아리기의 세계체계론과 자연과학의 카오스 이론을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함. (위 글에서 심광현을 문화주의자라고 비판한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림.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문화운동에 훨씬 치중을 두는 모습이었음.)
세계는 가면 갈수록 카오스로 치닫고 있다는 게 그의 기본적인 전제. 허나 카오스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이렇게 체계 전체가 요동칠 때 오히려 개체들의 작은 행위 하나가 체계 전체를 뒤흔들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 즉 현재와 같이 체계가 요동치는 상황에서는 미시적인 부분이 거시적인 전체와 대등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됨.
그리고 조반니 아리기의 주장을 보자면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순환 공식을 (M-C) 실물팽창 국면과 (C-M') 금융팽창 국면으로 나누고, 이 두 국면이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서로 다른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교대 반복해왔다고 함. 심광현은 이러한 인류 역사의 '리듬'을 분석해야한다고 하는데, 이를 간략하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1. 실물팽창기는 말 그대로 자본이 마구 투자되는 시기. 이윤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새로운 산업에 지속적으로 투자되고 고용이 증가함. 20세기에서 실물팽창기는 2차 대전 직후 1945년에서 1973년 사이에 해당.
2. 헌데 임금상승 요구와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물팽창은 영영 지속되지 못하고 결국 공황에 직면하게 됨. 1973년에서 1979년 사이의 공황기, 즉 신자유주의로의 이행기가 이에 해당.
3. 이를 계기로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으로 변신하고 '돈이 돈을 낳는' 세상이 펼쳐짐.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황금기가 이에 해당.
4. 이로 인해 내부 양극화가 심화되고 세계적 헤게모니가 약화되며 결국 금융팽창기도 공황에 직면함. 이 금융팽창기의 공황을 계기로 타국으로의 헤게모니 이행이 시작됨. 2008년 시작된 서구의 금융위기부터 현재까지가 이에 해당.
이렇게 반복되는 격변에는 항상 대규모 전쟁이 수반되며 자본주의의 공간적 중심과 헤게모니가 이동했는데, 이제는 자본주의가 포화상태에 놓여 더 이상 팽창할 외부가 없어 내부의 식민화(노동유연화 등)가 일상화되고 있고, 자본주의 헤게모니 방향이 처음으로 서양에서 동양(중국 등 동아시아)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오늘날은 상호확증파괴의 위협 때문에 전면전을 벌여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일 수가 없음.
그런데 이후 세계사적 규모의 이행기를 전후로 정치적-경제적 체계에서만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체계에서도 혁명적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을 주목해야 함. 따라서 심광현은 자본주의의 국면들과 그 국면에서 촉발된 사유를 네 가지로 나눔.
-이행기의 혁명적 사유: 금융팽창 국면이 공황을 맞게 되면서 새로운 체계로 이행하는 혁명적 사고실험이 활발해짐.
-상승기의 체계적 사유: 혁명적 사유가 시스템에 정착하며 사회시스템의 체계화를 이루는 데 필요한 체계적 사유가 지배적이게 됨.
-정점기의 혁명적 사유: 실물팽창이 공황을 맞이하며 다시금 지배 체계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체계로의 이행을 위한 혁명적 사유가 다시 활발해짐.
-하강기의 해체적 사유: 금융팽창이 공황을 맞이하며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어 상승기에 구축했던 체계적 사유가 붕괴되고 덩달아 혁명적 사유마저도 퇴조하며 사회 전반에 걸쳐 해체적, 회의주의적 사유가 팽배하게 됨.
이를 통해 심광현은 유럽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의 계보를 그림. 몇몇 주요 학자들을 얘기하자면,
-이행기의 혁명적 사유: 칸트, 프로이트, 그람시, 벤야민 등이 이에 해당. 참고로 이 시기에는 위에서 얘기했듯 개체의 작은 행위가 체계 전체를 위협하는, 레닌이나 마오쩌둥 같은 전위 혁명가들의 혁명이 가능해짐.
-상승기의 체계적 사유: 스피노자, 헤겔, 라캉, 르페브르 등. 스피노자는 상업이 발달해있던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데카르트의 이론을 수정/비판/보완하여 근대철학의 포문을 열어젖힘. 참고로 라캉이나 르페브르는 위 글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존나 까였지만 사실 그들의 사유는 마냥 회의주의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음. 라캉 같은 경우는 <라캉의 주쳬>라는 책을 읽어보길. 라캉이 개소리를 많이 하긴 했지만 마냥 주체의 해체만을 주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음.
-정점기(소이행기)의 혁명적 사유: 뉴턴, 다윈, 마르크스 등이 해당. 특히 마르크스는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체계가 하강기로의 이행을 맞기 시작할 때 활동한 인물. 심광현은 참고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초거시적인, 인류 역사의 리듬의 변증법을 포착하려 한 창의적 사고 실험이라고 주장함.
-하강기의 해체적 사유: 니체, 그리고 알튀세르, 들뢰즈, 푸코, 데리다, 바디우, 랑시에르 등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이에 해당.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20세기 서구 제국주의 등 거대담론을 비판하고 해체하고자 함. 회의주의적, 패배주의적 사유의 이면에는 정치-경제적 체계의 영향이 있었던 것.
심광현은 이렇듯 사유의 계보를 그리면서, 역사의 위대한 유산이라 평가받는 철학적, 과학적 사상들이 특정 천재의 개인적 동기와 재능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것이 아니라, 해당 시대가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적합하게 해당 시대의 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법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역사의 아카이브에 수록될 수 있었다고 주장함. 따라서 우리는 지난 역사와 사상들을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탐구하기 위해 반드시 참조해야 할 중요한 레퍼런스로서 재해석해야한다고 함. 그리고 현재는 인류 역사에서 유래없이 자연생태계의 위기, 사회적 양극화의 위기, 주체성의 위기 등 여러 모순과 위기가 인류의 존망을 위협할 정도로 복잡다단해지며 이런 문제는 과거와 같이 철학만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게 됨. 왜냐하면 우리가 현재 대면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생태적 문제들이 자본의 세계화와 맞물린 과학기술의 첨예한 발전과 뒹어켜 상호작용하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 이러한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사유들을 선별 종합 응용해서 대안적인 사회구성체와 삶 그리고 주체성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음.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세상이 복잡다단해졌으니 주체 역시도 환원 불가능한 여러 갈래의 자기들과 타자들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역동적 그물망과도 같은 존재로 생각하기를 요청함. 심광현이 논문에서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자유로이 선별/종합/응용하며 특히 최근에는 인문사회과학과 인지과학의 접합을 통해 인간 주체의 '마음'에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심광현을 비판하는 요지들은 대개 관념론적이다, 문화중심주의적이다, 기술결정론적이다 등이 있음. 헌데 이렇게 물적 토대 즉 정치경제적 시대배경을 중요시하는데 과연 그를 관념론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과학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을 경계하기 위해 오히려 자연과학적 논의를 인문사회과학에서도 받아들여야한다는 주장을 기술결정론적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듬. 참고로 나는 그의 사유가 변혁성을 탈각시켰다는 것에는 일견 동의함. '대안적인 사회구성체'를 공산주의 사회라고 왜 말 못하냐고 엉엉
근데 내가 어떻게 이렇게 심광현을 잘 아냐고? 우리 학교 교수임ㅋㅋㅋㅋㅋ 사상이 감명깊어서 꼭 배워보고 싶었는데 안식년 가시기도 했고 이제 정년이라 영영 수업은 못 들을 듯ㅋㅋ
내 요지는 이 양반 말이 전부 꼭 맞는 말이라는 건 아니고, 이런 생각도 있다는 걸 로붕이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어서... 재밌게 읽어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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