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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량강도의 `감자농사혁명`과 강원도의 토지정리사업

김정일 총비서는 1998년 10월 1일 량강도 대홍단군을 현지지도하였다. 그는 대홍단군 종합농장, 농업과학원 감자연구소, 대홍단 2호 발전소, 5호 발전소를 찾아갔다. 『로동신문』의 표현을 빌리면, 대홍단군 종합농장은 "지난날 버림 받았던 불모의 땅이 옥토로 전변되였고, 오늘은 <공산주의 사회의 본보기 농장>으로 전변되여가고 있다"는 농장이다. 대홍단군은 "1만정보의 새 땅을 찾아내고, 3천5백여리에 달하는 방풍림을 조성하였으며 농장의 종합적 기계화를 실현하는 데서 커다란 전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1998년 10월 1일 "대홍단군에 가서 감자농사실태를 알아보고 대단히 흥분하였고, 새로운 결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며, "대홍단군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격찬하였다. 『로동신문』은 대홍단군의 모범을 창조하는데 앞장섬으로써 `로력영웅`의 칭호를 받은 군당위원회 책임비서의 이야기를 보도한 바 있는데, 이 이야기는 `대홍단 책임비서`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인민상`을 받기도 했다. 김정일 총비서가 돌아본 소홍단수의 대홍단 2호 발전소와 서두수강의 대홍단 5호 발전소는 "집에서 부양을 받고 있던 가정부인들이 돌격대를 무어가지고 10년 세월 개미가 뼈다귀를 갉아먹듯이" 공사를 진행하여 마침내 1986년에 완공한 `자력갱생의 창조물`이며 `중소형발전소의 선구자`격인 발전소들이다.
대홍단 현지지도는 감자농사에 집중되었다. 대홍단군은 원래 `감자농사의 명산지`라고 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내가 오늘 대홍단군 종합농장에 온 것은 감자농사정형을 알아보고 감자농사에서 전환을 일으키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감자농사에 대한 김정일 총비서의 관심과 열정은 각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간부들을 외국에 보내어 감자농사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게 하였고, 대홍단군에 농업과학연구원 감자연구소를 창설하였다. 그는 1998년 3월에 갓 세워진 이 연구소에 "수십종의 우량한 감자종자, 무균조작대, 고압멸균기, 생물현미경, 세균려과기 그리고 감자조직배양시험연구에 필요한 시험관, 지어는 솜"에 이르기까지 수백점의 감자 종자조직 배양설비와 영농자재를 보내주었다. 이러한 특별배려에 힘입은 이 연구소는 감자원종의 유지·보관방법을 개발하였고 새로운 감자품종을 육성해내었다. 김정일 총비서는 "우리가 감자농사에서 일대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이런 사업에 한 10년 전에만 달라붙었더라도 우리 인민이 지금처럼 식량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감자농사를 위해 얼마나 관심과 열정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감자농사 뿐아니라 농업전반에 대해 커다란 관심과 열정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택에서 몸소 농작물을 시험재배하고, 새로 나온 농업기술자료들을 빠짐없이 읽고 있으며, 자신이 읽은 자료들을 해당 부문에 수시로 보내준다고 한다. 이처럼 김정일 총비서는 평소에 농업에 관한 정보와 자료를 읽으면서 농작물을 시험재배해오고 있는 경험이 있었으므로, 이번에 대홍단군 현지지도에서도 감자농사와 돼지기르기를 순환체계로 연계하는 방안, 감자수확의 기계화와 감자농사의 종합적 기계화 방안, 감자의 저장·수송·가공 방안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지도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북(조선)에서는 "감자를 정보당 60톤만 내도 쌀을 15톤 생산하는 것으로 된다"고 하면서 "감자를 많이 심으면 식량문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량강도와 자강도를 비롯한 산간지대의 협동농장들에서는 "화학비료사정이 매우 긴장"한 조건에서 돼지배설물을 물에 희석시킨 `물거름`으로 지력을 높여 감자농사에 이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감자밭 1정보에 농사를 짓자면 16마리 정도의 돼지를 길러 해마다 약 70t의 물거름을 생산하면 된다고 한다. "감자농사를 잘하면 식량문제도 풀 수 있고 고기문제도 풀 수 있다"는 김정일 총비서의 가르침은 감자농사와 돼지기르기를 연관시켜 돼지기르기에서 감자농사에 요구되는 유기질 비료를 생산하여 감자를 증산하고 감자를 사료로 하여 돼지기르기를 잘하여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일종의 순환생산체계를 세우는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대홍단군 종합농장 현지지도에서 돼지우리를 현대적으로 짓고 겨울철에 우리의 온도를 보장하는 문제, 흐름식으로 고기를 생산하는 문제 등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대홍단군 당위원회 책임비서는 돼지고기 생산목표가 1만t이라고 밝혔다.
북(조선)은 1950년대 말 `천리마운동`을 하면서 종래의 잡곡생산체계를 수확고가 훨씬 높은 옥수수생산체계로 바꾸었는데, 1990년대 말에 `제2의 천리마 대진군`을 시작하면서 옥수수보다 단위 수확량이 10배나 많은 감자생산체계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저들은 "감자농사를 잘 지을 데 대한 당의 방침은 우리 인민들의 식의주문제를 우리식으로 해결하여 남부럽지 않은 윤택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할 수 있는 정당하고 현명한 방침"이라고 보고 있다. 김정일 총비서는 "앞으로 감자는 부식물로 하지 말고 주식물로 하여야 하며, 그러자면 식생활양식을 바꾸고 감자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받아들이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으며, 『로동신문』은 감자 재배법, 감자의 영양가, 감자 가공법과 저장법에 관한 정보를 기사로 실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북(조선)은 현재 근 60개의 감자 품종이 육종되어 `국가농작물품종`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1998년 10월 9일에는 대홍단군 근로자들과 량강도 근로자의 `궐기모임`이 각각 진행되었다. 대홍단군 종합농장에서는 모든 분장에 `감자 전문화 작업반`을 배치하여 각 작업반이 1백정보의 감자 경지면적을 책임지게 되고, 모든 작업반들은 추위에 잘 견디는 다수확 품종을 위한 2백평방m 규모의 조직배양온실을 건설하게 된다고 한다. 올해 량강도에서는 지난해에 비해 감자밭 면적이 2천정보가 늘어났다. 김정일 총비서는 대홍단군의 감자농사를 위해 제대군인들을 보내주기로 조치했으며, 현지에서는 그들을 위해 3백50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하고 있다.
북(조선) 농업성 발표에 따르면, 1999년에는 지난해 보다 감자밭 면적이 4만3천여정보가 더 늘어났으며, 이를 2002년까지 체계적으로 늘이는 계획을 세웠으며, 자강도, 량강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같은 산간지대는 물론 평지대에서도 논벼 앞그루로 감자를 심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미 함경남도, 평안북도에서는 1997년과 1998년에 논벼 앞그루로 감자를 심어 "자랑할만한 수확"을 내었다고 한다. 농업성은 대홍단군의 감자농사기술을 일반화하기 위하여 각 도 농촌경리위원회 책임자들이 대홍단군에 찾아가 감자농사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기술강습을 통하여 널리 보급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 밖에도 거름 생산, 다수확품종 육종개발 및 확보, 감자농사의 기계화 추진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지금 미 국무부가 산하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를 앞세워 미국 공법 480조에 의거한 정부예산 3천만달러를 지원하면서 이러한 북(조선)의 감자농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
량강도를 모범지역으로 삼아 진행되고 있는 `감자농사혁명`과 더불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또다른 중요사업으로 손꼽히는 것은 토지정리사업이다. 『로동신문』에 따르면, 1998년 5월 어느날 동부전선의 군부대 시찰길에 나섰던 김정일 총비서는 이른 새벽 강원도 산골 창도군 대백리의 농촌길을 가다가 차를 멈추게 하고 "산골짜기 여기저기 널려있는 다락논과 뙈기밭들을 가리키면서 강원도의 토지를 정리해야 하겠다고 하며 즉시에 관계부문 일군들의 협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강원도의 토지정리를 본보기로 하여 전국의 토지정리사업을 전당적, 전국가적 사업으로, 나라의 부강번영을 위한 만년대계의 대자연개조사업으로 내밀데 대한 강령적인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그 직후 김정일 총비서의 "긴급조치"로 "강원도 토지정리 전투장으로 인민군 군인들이 달려가고 대기계화 군단을 앞세운 전국의 근로자들이 물밀 듯 모여들었다"고 한다. 강원도 토지정리 사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김정일 총비서는 1998년 5월 강원도 토지정리사업을 발기하고,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로 12월 1일, 1999년 2월 10일, 3월 11일에 토지정리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였다. 『로동신문』은 강원도 토지정리사업을 시작한지 4개월만에 2만여정보의 논밭을 규격포전, 기계화 포전으로 정리한 1단계 목표를 기한 전에 달성했음을 보도하였으며, 1천7백60여정보의 논밭면적이 늘어났다. 1999년 4월 2일에는 내각 위원회, 성, 중앙기관 간부들이 토지정리를 마친 강원도의 협동농장들을 참관하였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김정일 총비서는 `전환기`에 량강도에서 `감자농사혁명`을, 그리고 강원도에서는 토지정리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지금 북(조선)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는 "감자농사를 잘하는 것도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 정도로 감사농사를 중시하고 있다. 이것은 감자농사가 식량난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임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로동신문』은 김정일 총비서가 "감자농사에서 일대 전환을 일으켜 가까운 년간에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조선)은 "감자농사혁명이 승리하면 나라의 식량문제가 풀리고 강성대국의 경제적 담보가 마련된다. 그것은 먼 래일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김정일 총비서는 "토지정리를 농업생산을 늘이기 위한 중요한 방도의 하나"로 보고 "강성대국 건설에서 토지정리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1998년에 북(조선)의 농업생산량은 3백88만t(정부 통계)에 이르렀고, 지난해에 대비하여 11%가 늘어났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긴급한 식량지원이 요구되는 나라가 러시아, 중국, 아프가니스탄, 쿠바, 인도네시아, 이라크를 비롯하여 38개 나라라고 하면서, 그 가운데 물론 북(조선)도 포함시켰지만, 올해 북(조선)은 1백70만t에 이르는 외부의 식량지원에다가, 이모작, 감자농사, 토지정리사업이 진척되면서 농업생산량이 늘어나 식량난을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





(5) 맺음말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마감하고 맞이한 1998년 1월 1일 김정일 총비서는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일군들을 불러 오랜 시간에 걸쳐 올해를 강성대국 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로 빛내이기 위한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그가 새해 첫날 강성대국 건설과 관련하여 말한 요점은 아마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강성대국이란 사회주의 강성대국입니다. 우리의 강성대국은 자력갱생의 강성대국입니다. 우리가 지금 일시적으로 난관을 겪고 있지만 멀지 않아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몇해동안 간고한 투쟁을 벌려 부강조국 건설의 튼튼한 도약대를 마련한 조건에서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것은 가까운 앞날에 실현할 수 있는 일이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은 『로동신문』 1998년 1월 4일자 정론 「사회주의 승리자의 기개를 떨치자」에서 처음으로 나왔으며, `주체의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은 『로동신문』 1998년 2월 3일자 사설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강행군 앞으로!」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최근 『로동신문』에 자주 나오고 있는 강성대국 건설의 담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대목을 옮겨적으면 이렇다.

오늘 우리가 강성대국을 건설한다는 것은 결코 빈소리가 아니며 료원한 리상도 아니다. 그것은 가까운 앞날에 수행하여야 할 당면한 투쟁목표이며 능히 실현가능한 현실적인 문제이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사상과 정치, 군사분야에서는 이미 강성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정치사상전선과 군사전선을 계속 강화하면서 경제전선에 화력을 집중하여 전환을 일으키면 가까운 앞날에 얼마든지 우리나라를 강성대국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 경제건설에서 일정한 난관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감자농사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나라의 농업구조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며 나라의 자연부원을 대대적으로 개발하고 기간공업부문과 경공업부문에서 생산을 정상화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면 우리나라를 능히 경제강국으로 만들 수 있다.

북(조선)의 주장에 따르면, "주체의 강성대국 건설은 가장 신성하고도 위대한 애국애족위업"이며, "우리 당이 내세운 주체의 강성대국 건설위업은 주체사상을 전면적으로 구현하여 우리나라의 국력을 정치와 군사, 경제와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최강의 경지에 올려세우기 위한 거창한 애국애족의 위업"이라고 한다. 이 `위업`은 김정일 총비서가 "선대 국가수반 앞에, 조국과 민족 앞에 다진 애국충정맹약이며 조선을 이끌어 21세기를 찬란히 빛내이려는 담대한 설계도"라고 한다. 요컨대 김정일 총비서의 "주체적인 강성대국 건설방식"은 "사상의 강국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여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튼튼히 세우고 그 위력으로 경제건설의 눈부신 비약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1998년 8월 31일에 있었던 `광명성 1호`의 발사는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의 첫 포성"이었다고 묘사한다. 이로써 "강성대국 건설의 포성은 이미 울렸다"는 것이다. 북(조선)은 "오늘 우리에게는 강성대국을 자체의 힘으로 일떠세울 수 있는 모든 토대가 충분히 마련되여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북(조선)이 말하는 `토대`란 구체적으로 "우리 당의 옳바른 정치, 우리 인민의 일심단결된 위력과 높은 문화기술수준, 우리 경제의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풍부한 자원, 이것이 우리나라가 끝없이 륭성번영할 수 있는 기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북(조선)이 선택한 길은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길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투쟁으로 헤쳐가야 하는 험난한 행군길이다. 그까닭은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은 <힘>의 전략을 휘두르는 제국주의자들과의 치열한 계급투쟁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그렇다.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제국주의의 포위 속에서 단독으로 사회주의를 지켜나가자니 시련도 많고 곤난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억천만번 죽더라도 모든 시련과 곤난을 뚫고 사회주의를 지켜나간다, 누가 최후에 웃는가 보자, 이런 신념, 이런 배짱을 가지고 싸우면 당해낼자가 없습니다.

김정일 총비서는 김일성 주석이 "개척한 혁명의 길이 아무리 험난하다 하더라도 그 길로만 가야"하며, "그 길에 지뢰밭이 있어도 우리는 그 길로 가야한다"고 자신의 결심을 밝힌 바있다. 『로동신문』에 따르면, "누가 최후에 웃는가 보자,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는 말은 김정일 총비서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북(조선)의 인민은 "몇해째 계속된 <고난의 행군>을 통하여 단련된 인민이며 그 어떤 시련도 맞받아나가는데 체질화된 강의한 인민"이라고 한다. 이처럼 북(조선)은 최고지도자의 결심이 확고하고 단련되고 강의한 인민이 있으므로 `강성대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이것은 북(조선)이 `체제생존전략`에 의존하면서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 있다고 보는 서방세계의 대북인식과는 거의 정반대의 내용이다.
여기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물음은 북(조선)이 과연 `제2의 천리마 대진군`을 성공으로 이끌어 과연 `강성대국`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북(조선)의 `강성대국` 담론은 과연 실현될 것인가? 이 물음과 관련하여 단정적으로 답변하기는 아직 힘들다. 그렇지만 역사적 실례를 살펴보면 이러한 비교와 유추해석이 가능하다. 중국 강서성의 서금 소비에트는 1933년 10월부터 한 해동안 중국 국민당 군대의 포위와 봉쇄를 견디어야 했던 것에 비해, 북(조선)은 1953년 7월 정전부터 1994년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기까지 무려 40년동안이나 지속되고 있는 `제국주의 련합세력`의 포위와 봉쇄를 견디어야 했으며, 그러한 상태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기간의 연장과 강도의 수준에 따라 북(조선)은 그만큼 더 단련된 강인한 저항력을 축적해오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중국 홍군의 대장정은 1934년 10월부터 이듬해 10월 연안에 이르기까지 1년동안 진행되었던 것에 비해, 북(조선)의 `고난의 행군`은 1994년부터 1997년까지 4년이나 계속되었다. 이러한 `고난의 행군`은 1950년대 말에도 겪었던 바있다. 오늘 연구자들은 중국공산당의 `대장정`이 말할 수 없는 희생을 치루어야 했던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었지만 결코 패배의 행군이 아니라 철의 의지로 단련되는 과정이었으며, 결국 중국 역사를 바꾼 `혁명 승리`를 이룩한 계기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뒷날의 연구자들은 북(조선)은 중국공산당이 `대장정`에서 그러했듯이 `고난의 행군`으로 난관과 위기를 돌파하고 `강성대국`을 건설하게 되었다고 평가하게 될 것인가?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워싱턴-도쿄-서울의 당국자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의 북(조선)을 가리켜 얼마 가지 않아서 곧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고, 포위공세에 버티지 못하고 자기들의 요구대로 개혁과 개방의 길로 끌려나오리라고 장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예측은 빗나갔고 그 장담은 무색해졌다. 북(조선)은 붕괴하지도, 개혁과 개방의 길로 끌려가지도 않았다. `고난의 행군`은 북(조선)이 `제국주의 련합세력`의 포위와 봉쇄 속에서 자기들의 사상과 체제를 어떻게 지켜냈는가를 보여준 사건이었으며, 동시에 북(조선)의 21세기 미래상을 예시해준 사건이었다. 오늘 북(조선)은 붕괴와 패배도 아니고 개혁과 개방도 아닌 `제3의 길`을 가고 있다. 이 `제3의 길`로 나아가는 길목에 저들은 `제2의 천리마 대진군`이라는 `전설적인 이정표`를 세워놓았다. (1999년 5월 1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