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스탈린주의의 일종으로서 주체사상-그 난점과 공백, 한계
맑스주의의 일반화의 관점에서

홍익대학교 동아리연합회장 이꽃맘
0/ 주체사상 토론회에 임하는 자세와 관점
냉전 구도의 해소 이후 세계 유일 패권으로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의 흐름은 남-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전반의 상황을 과잉결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대북전략은 기본적으로 99년에 발표된 `페리보고서`에 준하고 있다. 이는 흔히 `포괄적이고 통합된 이중접근전략`이라고 표현되는데, 압축적으로 말하자면 협상이라는 경로와 군사력의 증강이라는 경로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이다. 즉 협상이라는 첫 번째 경로를 통해서 북한이 핵-미사일 등을 완전히 포기할 경우 북한에 가하고 있는 각종 압력들을 `상호주의적`으로 감축할 수 있다는 것을 표방하면서, 두 번째로 협상의 진행경과와는 무관하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봉쇄하기 위해 미국과 그 동아시아 동맹국들이 군사적인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강구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지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무기를 가득 실은 비행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키듯` 북한을 대해야 한다는 소위 `연착륙론`을 펼치기 시작했다.1) 이러한 상호주의적 대북접근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들을 해소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조치들과 맞바꾸고,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을 국제사회(즉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편입시키는 것을 유도함으로써 북한의 위협을 궁극적으로 제거해나간다는 구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투자처를 찾아 전세계를 배회하는 초민족화된 초국적 독점체들의 `신흥시장(emerging market)` 창출 전략과 맞물리며 사실상 금융세계화의 하위파트너로서 제3세계 국가들을 포섭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프리카 등의 경우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체제로부터의 배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경험한 제3세계 국가들은 세계체제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종속적 편입을 시도하고 있는데, 중국의 WTO가입 시도, `신노선`으로 상징되는 최근 북한의 세계자본주의체제로의 연착륙 시도 등2)은 그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즉 전반적으로 동북아시아에서의 지위 확보를 도모하는 각국의 전략들이, 미국의 [페리프로세스]를 중심으로 한 일정한 타협점들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군사력에 대한 일정한 승인과 일본의 재무장 등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세력 균형점의 이동에 따른 소극적인 평화국면의 구축과 이에 기반하여 초국적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제국주의적 질서에 대한 종속체제가 새롭게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구래의 제국주의적 모순들이 변형되어 재생산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역학관계 하에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강력한 안보주의/국가발전주의를 통해 남한 내에서 대중정치의 활성화를 가로막았던 것이 기존 남한 지배계급의 방식이었음에 반해, 작년 615 공동선언을 기점으로 일정 북한에 대한 민족적 파트너쉽을 확보하는 가운데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의 최소한의 개혁을 통한 합리화와 한반도 통일의 전망과 동북아 구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지역주의를 공격하는 정치적 차별화를 강화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동북아로 민족의 웅비를 위한 경제위기의 고통분담`이라는 온갖 국수주의적 구호를 동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북-반공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보수주의 세력과의 갈등을 적절하게 조절해 내면서 정치적 타협들을 이루어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형태의 재생산 방식의 변화는 어쨌거나 반공-반북이데올로기의 약화로 인한 정치의 활성화라기 보다는,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전망의 압도적 우위 속에서 정치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민족형태의 재생산 방식에 있어서 한국사회의 특수한 형태였던 분단체제의 구축과 이에 입각한 남한 사회의 정치지형은 인민의 보편적 정치에 대한 권리, 평화에 대한 권리를 억압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불만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자주적 통일을 통한 민족국가의 완성- 그 속에서의 자주나 민주와 같은 보편적 권리의 완성- 이라는 방식의 전략을 제시했던 것이 민족민주운동이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변화되는 남북관계 속에서 남북한 경제통합을 시작으로 하는 민족국가의 완성이 오히려 제국주의와 한국사회에서의 지배계급의 주도권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자칫 남북관계를 둘러싼 쟁점들의 민중운동 진영의 전반적인 대응력의 저하로 이어지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남한 사회에서의 정치지형을 `과소결정` 할 수 있다.3) 이러한 현재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따른 민족국가의 위기4)와 보편성의 해체라는 지금의 상황은 가상적 민족-공동체로서 `남북통일`을 완성하고자 하는 주변부의 민족-국가의 구축 전망 자체를 극히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통일` 자체를 촉진시키기 위한 투쟁은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세계적 수준에서의 질서재편과 맞물리며 결국 현실 정치 일정상의 문제로 거론되고 있음을 보았을 때, 현시기 남한 변혁운동과는 무관함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관건적인 사항으로서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불확실성으로부터의 `이탈`(delinking)의 경로와 방식은 무엇인가의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핵심은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가 강제하는 세계체제의 불확실성에 의한 종속과, 이 종속의 한반도적 특수태로서 분단모순을 동시에 지양하기 위해서는 독점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 재편에 대한 반대 투쟁의 활성화와 점증하고 있는 신제국주의적 무질서와 폭력에 대응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와 같은 분단 상황 속에서 남한 민족민주 운동진영의 저항적 민족주의나 민족자주와 민족통일 등과 같은 대중의 보편적 요구의 `정당함`이 `가능한 것`이기 위해서는 현시기 이를 가로막고 있는 신자유주의 및 이의 핵심주체로서 김대중 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투쟁 전선으로 결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페리프로세스와 햇볕정책의 모순이 증대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이들(페리프로세스와 햇볕정책)의 상대적 진보성을 강조하는 입장에 서는 한,5)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는 더욱 요원한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상의 관점에서 필자는 작년 615남북 공동선언 이후 민족민주 운동진영에서 제출하고 있는 `수구반통일 세력 대 개혁통일세력` 간의 전선설치를 위한 제반의 시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을 즈음한 북한 바로 알기 사업 등은 그 일면적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자칫 현재의 정치전선을 교착시킬 우려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이러한 운동진영 내의 동요와 혼란에 적절히 개입해내는 것, 특히나 금기시된 영역이었던 주체사상에 대한 공론화라기보다는 기간 남한 운동 진영 내에서 `주류` 철학으로 공인되고 있는 주체사상에 대한 올바른 논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점에서 참가의 의의는 상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는 본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과연 주체사상이 철학적으로 진지하게 검토할만한 대상인가, 특히 그것이 맑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계승, 재구성하여 `인민의 변혁적 사상`으로 확립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필자의 의문은 이미 80년대부터 형성되어왔던 `주체사상`을 둘러싼 남한 변혁운동 진영 내의 논쟁이 대부분 `올바르지 못한` 관점에서 진행되어 왔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을 요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에 접하게 되었다. 부연하면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이 자칫하면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한국사회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그리고 국가부르주아들에 의해 강제된- 반공발전 이데올로기를 대중적으로 추수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좋지 못한` 정치적 진리효과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잠시 하나의 글을 인용해본다.

그러나 실제로 그간의 남한사회 주체사상 `논쟁`은 이같은 나의 잠재적 문제설정의 발전보다는 주사 내지  `친주사` 대 `비주사` 내지 `반주사`의 정치노선상의 대립에 압도되었는데 이는 동시에 남한사회의 `반공`=`반북한`적인 대중적 이데올로기를 일정하게 추수한 것이기도 했다. 여기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는 민족해방론과 민중민주론을 이른바 `민족민주운동권의 인민주의적(sic) 이데올로기` 내지 `학생운동권의 프티부르주아적(sic) 이데올로기` 쯤으로 치부하면서 스스로 `반주사`-`반스탈린주의`를 표방해왔던 어느 `일반민주주의`적 정파(이른바 `민중민주 우파`)와 현실사회주의 진영의 붕괴 속에서 조성된 남북관계의 긴장을 남한 정부의 `통일정책`에 빌붙어 우회하고자 하는 `친주사`내지 민족해방론내의 청산주의적 분파(이른바 `민족해방론 우파`)의 수렴경향 속에서 특징적으로 확인되는 것인데---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중진자본주의론의 대칭적 자본주의관에 내재해있던 이같은 조짐은 합법주의적 개량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현정세 속에서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이같은 민족해방 대 민중민주의 대립의 자의적인 상대화론 내지 퇴행적인 폐기론은 예의 대중이데올로기가 통념적으로 강제하는 `반주사`내지 `탈주사`라는 활동가 이데올로기의 효과 속에서 내가 말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전화의 관점에서의 주체사상 비판의 발전을 봉쇄하는 효과를 가질 뿐이다.
-윤소영,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의 위기`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이론} 8호


이상의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90년대 초반 맑스주의의 위기는 각종 기회주의와 개량주의의 득세 속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맑스주의의 전화의 의의를 삭감하는 방향으로 일정하게 귀결된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NL과 PD를 넘어선 새로운 학생운동`이라는 수사가 심심치 않게(그러나 대단히 불철저한 방식으로) 등장하고 따라서 스스로를 표상시켜내기 위한 또 하나의 자명한 이데올로기로서 일정하게 `반주사` 및 `반스탈린주의`를 표방한 것이 사실이었다. 가령 주체사상(김일성주의)에 대한 대중적 비판(예컨대 반김일성주의를 선거 시기 슬로건으로 제출한다든지)의 효과는 그것이 당초 목적하였던 바와는 `무관`하게(무관하다고 믿고 싶다) 국가 부르주아들에 의해 강제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였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하며(혹은 그러한 진리효과를 창출하였다는 점에서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하며), 냉전 구도의 해소 이후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고립, 봉쇄되었던 북한 사회를 바라봄에 있어 `강성대국이 아닌 가난하고 굶주리는 북한사회`를 강조하는 입장에 서면서 `북한동포돕기 운동` 등으로 우회, 결국은 지배계급의 통일정책에 흡수, 무화되어버리고 말았던 것 등이 좋은 예라 하겠다. 이는 결국 북한 사회주의의 전략적 지위에 대한 부정 및 이에 일정정도 연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남한의 민족민주 운동 진영에 대한 외재적인 비판만으로 국한되어(작년 전학협에서 제출한 `김대중-김정일 반대` 슬로건이 대표적이다) 자연스레 민족민주운동의 `정당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지적하는 것이 아닌 `부당성`만을 강조하는 편향으로 결과하였던 것이다.


이에 본인은 이상의 편향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주체사상을 외재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화된 스탈린주의의 변종으로서 주체사상을 파악하는 한편, 이것을 맑스주의의 전화(일반화)라고 하는 관점에서 논쟁하려 한다. 그리고 주체사상이 의도하였던 그 기획의 불가능성을 논증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 주체사상이 남한 학생운동의 주류 철학으로 자리잡았던 현실, 그리고 그것이 남한 학생운동에 투영된 구체적 쟁점을 가지고 비판할 것이다(한편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이 주되게 `수령론`의 가부장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그 효과이자, 일각이지 핵심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토론회의 주제 중 하나로 제시되어 있는 `북한 사회에 주체사상이 끼친 영향`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우선 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변혁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별 유효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일단은 주요하게 다루지 않았음을 양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