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적 맑스주의에 대한 평가: 대중노선을 중심으로



1-1. 우리에게 맑스주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에게 맑스주의는 대중운동과의 융합을 위한 `이론`일 수밖에 없으며 그 융합 속에서 혁명적 실천으로 전화하기 위한 `이론`이다. 따라서 그것은 과학이라는 공식적인 체계로도 혹은 진리라는 일괴암적 무오류의 환상으로부터 결별하고 오로지 공산주의적 정치의 인지가능성과 대중의 사상으로서의 전화가능성으로 정식화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중노선의 문제가 대두된다.

그렇다면 맑스주의에 있어 대중노선이란 무엇인가? 맑스주의 역사에서 대중노선이라는 개념은 전통적으로는 당-조직론이라는 범주에서 도출되는데, 즉 당과 대중조직과의 관계, 결합메커니즘을 실천적으로 해명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맑스주의 운동의 역사에 각인시킨다. 특히 혁명기-이행기에 있어서 마오의 대중노선 개념6)은 레닌과 그 이후의(소위 스탈린적 편향) 당-조직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대중의 이데올로기를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대상이다. 궁극적으로 대중노선이란 대중들의 혁명적 주체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다름아닌 바, 역사적 맑스주의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는 `착취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해후`의 관점에서 `대중-정치`라는 실천적인 답을 내릴 수 있다. 이는 역사적 자본주의에 내재한 `사회적 적대`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인간의 `억압할 수 없는 최소`에 대한 침해에 맞선 대중들의 봉기(저항)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 나아가 `연대`에 기반한 상호역능의 증진, 그리고 최소한의 보편성에 기대어 이를 스스로 개조해, 타자와의 교통과정을 통한 `해방`의 정치인 것이다. 즉 맑스주의에 있어, 대중을 주체로 구성해내는 과정 그 자체가 대중운동이라는 관점을 명확히 정립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대중-정치`임을, 따라서 특정한 시기의 대중노선은 정치노선임과 동시에 조직노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 즉 `대중을 역사의 주체`로 구성하기 위한 `철학`과 `이론`으로서 맑스주의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이하의 텀에서 스탈린적 편향과 그리고 이러한 스탈린적 편향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하였지만 그 한계를 온당히 넘어서지 못하고 오히려 맑스-레닌주의의 핵심을 빗겨나간 주체사상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수행하고자 한다.







1-2. 역사적 맑스주의 속에서 대중노선의 지위: 과학적 사회주의와 대중운동의 융합

1>맑스의 사회적 관계의 토픽; 이론적 반인간주의의 관점에서

칸트, 훔볼트, 포이어바흐 등에게 있어 인간의 본질이란, 하나의 관념 또는 추상으로 인간 내에 `내재해 있는` 것이며, 이것을 중심으로 개별적 인간들을 종별적 혹은 개별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즉 이론적 인간주의는 인간의 `본질`이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맑스는 "나의 분석적 방법론은 인간으로부터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주어진 사회적 시기로부터 출발한다"고 함으로써 이론적 인간주의와는 다른 철학적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고전적인 질문에 대해 본질주의적인 방식으로 빠져들지 않고 인간이 아닌 "경제적으로 주어진 사회적 시기"로부터 출발하여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이론적 인간주의가 취하는 이론적 의도가 "욕구와 노동과 욕망의 주체, 도덕적/정치적 행위의 주체로서의 자유로운 인간주체와 인간 본질"에 대해 말함으로써 사회와 역사를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알뛰세르, [아미엥에서의 주장]) 맑스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점으로서 (플라톤이 이상국가/철인국가를 주창한 이래)기존의 철학들이 자신을 과학과 분리시키고 하나의 체계로 정립하면서 다시 하나의 과학, 즉 과학 위에 군림하는 또 하나의 과학으로 전이되어 왔으며, 한편으로는 모든 사회적 실천들을 자신들의 종속적인 요소로 파악하면서 이들에게 특수한 지향을 부과하는 진리로 작동하였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알뛰세르는 이러한 전통적인 철학의 실천을 배격하면서 `비철학`으로의 철학의 생산이라는 역설적인 테제를 맑스로부터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비철학으로의 철학`의 함의는 ①철학사의 영역에서 `철학`, 즉 세계를 통일하여 자기 아래 포섭하려는 체계를 만들어왔던 철학에 대한 지배적인 사고를 무너뜨리고 "과학(역사유물론) 안에서 프로레타리아트 정치를 대변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 속에서 과학을 대변할 수 있는 철학의 실천을 집행해야" 한다는 것, ②"체계가 아닌 경향으로 존재하는 (대중의)유물론적 요소를 강조하고 항상 동요하는 대중의 자생적 철학에서 유물론적 요소를 발견하고 강화시키는 것", 즉 `이론에서의 계급투쟁`, ③철학은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관련된 효과(즉 구체적 상황에서 정세적 정치적 진리효과)를 묻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점(알뛰세르, [유물론적 변증법에 대하여] 참조) 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맑스가 정식화하였던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다`라는 테제를 통개인성의 철학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테제는 인식의 목표로서 포이어바흐가 설정하였던 인간의 본질을 우선적으로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7) 개인성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맑스는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맑스는 대중들의 혁명이 대중에 의한 거대한 사회변혁과정이며 혁명에의 대중의 참여야말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임을 명백히 함으로써 대중노선 수립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나아가 이러한 맑스의 사회적 관계 개념의 독창성은 노동관계를 분석함에 있어서 잉여가치의 착취에 대한 분석을 통해 노동관계 내에 화해 불가능한 적대가 존재함을, 즉 사회적 관계의 개념 속에 사회적 적대를 도입하고 인간집단들에게 비대칭적으로 권력의 기술과 수단이 분배되고 있음을 분석하는 데에 있다. 더 나아가 그는 국가와 시민사회(혹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는 동일한 사회적 관계, 즉 자본주의적 노동관계의 두 가지 실존형태일 뿐임을, 따라서 정치와 경제는 단락된 것임을 해명한다.

그러나 맑스는 이러한 독보적인 이론작업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관계의 형태가 부단히 전화하는 것임을 사고하는 데에는 불철저했다. 계급투쟁과 계급을 정의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이론으로서의 동시에 역사에 대한 정치적 전략의 접합으로서의 맑스주의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면, 이러한 불철저함은 매우 치명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맑스의 사회적 관계-사회적 적대의 현재적 의의를 무엇으로 설정할 수 있는가? 그것은 역사적 자본주의에 내재한 화해불가능한 적대로서 노동관계에 근거한 계급투쟁의 중요성 및 사회계급들의 정체성의 부단한 전화 및 계급투쟁들의 형태들의 부단한 전화를 사고 가능하게 함으로써, 근대 계급투쟁의 표상을 전위하고 나아가 대중정치와 계급정치의 변증법, 즉 대중의 혁명적 주체화 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라고 볼 수 있다.



2>레닌의 의식성-자생성 테제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적 조류에 반대하면서 제국주의 시대의 혁명론을 성립시킨다. 레닌은 "제국주의 전쟁의 혁명적 내전으로의 전화"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새로운 차원을 규정하고 맑스의 혁명주의를 계승한다.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의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정치가 아니며 오히려 그것을 지배계급이 규정한 틀 속에 억압한다고 보았고, 따라서 당시 경제주의자들이 제2인터내셔널을 따라 러시아 실정에 맞지 않는 조직노선을 내걸고서 대중을 핑계로 혁명운동의 급속한 흐름을 목적의식적으로 지도하지 않는 것(레닌의 표현을 빌자면 대중의 자생성에 굴종하는 것)에 대해 강력한 사상투쟁을 전개하면서 대중과 지도의 결합 메커니즘에 대해 밝힌다.
소위 `의식성-자생성` 테제로 압축되는 레닌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로자 룩셈부르크와의 논쟁을 통해 쟁점을 남기고 있는데, 전위의 진정한 목적이 대중에 대한 올바른 지도를 통한 혁명의 승리에 있다는 중요한 사실보다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 중 의식성에 대한 일면적 강조로서 `외부주입테제`(사실 이는 카우츠키의 작품이다)에 대한 논쟁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러나 레닌의 문제의식은 결코 대중들에 대한 블랑키주의적 음모나 노동계급만에 국한된 혁명운동이 아니라 전체 피지배계급의 견지에서 동맹을 사고하였던 `다수자혁명`의 관점이었음이 올바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즉, 레닌은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역사적으로 주어진 임무로서 피지배계급대중들이 스스로의 역능을 생활영역에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혁명운동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는 의식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물론, 의식적 지도력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급대중의 운동경향과의 끊임없는 긴장관계 속에서 획득되는 것임을 러시아 혁명이라는 구체적인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전제정치, 억압, 폭력, 악폐 등의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 그것이 어느 계급에게 악영향을 끼치는가에 상관없이 반응하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 나아가 바로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대응하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 노동계급의 의식은 진정한 정치의식일 수 없다. 또한 노동자들이 다양한 계급들의 지적, 윤리적, 정신적 생활의 모든 현상들에서 그 계급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법을 구체적인, 특히 시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건들과 사실들로부터 배우지 않는다면, 근로대중의 의식은 진정한 계급의식일 수 없다. 노동계급의 의식와 주의력, 관찰력을 전적으로 또는 주로 노동계급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다.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중


결론적으로 다수자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자발성과 혁명적 열정, 정치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결의 등이 주요함과 동시에 이러한 자발성과 열정, 결의 등이 보다 계획적이고 보다 의식적인 지도 하에 혁명운동에 기여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마오의 대중노선

맑스의 인식론적 기초를 바탕으로 하고 레닌의 혁명적 경험과 조직론을 뼈대로 한 대중노선의 전반적 내용은 중국혁명 과정에서 마오를 주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좌익모험주의의 지도 하에 수 차례의 도시봉기가 실패로 돌아갔던 중국혁명의 전개과정은 이후 고위 `농촌으로부터 도시 포위전략`이라는 마오의 전략노선을 중심으로 중국실정에 맞는 창조적 노선이 구현되고 아울러 지구적인 장기 항일 유격투쟁의 과정에서 대중과의 연계가 강조됨으로써 대중노선에 대해 가장 풍부한 이론, 실천적 성과를 낳게 되었다. 이로써 마오의 대중노선은 대중의 지도에 대해 최초로 체계화되고 집대성된 이론적 성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대중 속에서 나와 대중 속으로` 다시 침투하는 중국공산당의 활동방법에서 드러나듯 마오는 대중의 중요성과 대중의 혁명적 역량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면서 대중활동방법과 관련하여 유의할 사항을 제시하였다. 그 주요내용은 ①중국혁명에서의 대중참여의 불가결성, ②대중의 혁명적 자발성과 역량에 대한 큰 신뢰, ③당원에 대한 대중과의 밀접한 결합의 요구로 요약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행기 마오의 부단혁명론과 계속혁명론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즉 마오의 사회주의관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그 맥락에서 문화혁명의 위치가 주어진다. 마오의 사상을 특징짓는 사회주의관은 유토피아적 요소들의 탈유토피아적 요소에 대해서이다. 그는 탈유토피아적 요소로서 무한한 모순개념-조화 개념에 반대하여 역사의 절대적 법칙으로 간주되는 사회적 갈등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에 대한 논의전개를 하고 있다. 하기에 마오는 사회주의(이행기)시기의 새로운 계급의 형성을 경계하면서 인민내부에 존재하는 적대-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대규모 대중운동을 시기별로 테제화시켜 벌여나간다. 여기서 `새로운 계급의 형성`이란 사회주의 시기에도 폐절되지 않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유해가 잔존하여 사회적 구성과정(사회학적 범주)에서 인민 내부의 모순이 형성되고, 또다시 인민 내부에서 착취관계-계급적대 형성의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마오는 새로운 계급(지배계급)으로서 당내부의 관료계층과 생산수단을 점유하고 있는 집단, 지식인집단 등을 지적하였으며, 이러한 모순관계를 폐절시키기 위해 이러한 지배집단을 대중의 통제 하에 종속시킬 것, 대중에 의한 실질적 사회화 및 이를 통한 대중권력 형성을 목적하였다.





1-3. 마오의 대중노선의 의의

1>스탈린주의로부터의 단절 1: 탈유토피아적 사회주의관이행기 대중운동의 성격

마오의 사회주의관은 중국의 전통적 유토피아들과 실현된 자유의 왕국으로서 공산주의라는 맑스주의적 유토피아의 유산들에 대한 극복으로서 탈유토피아적 사회주의관으로부터 그 인식이 출발한다. 과도기로서 사회주의는 자체 내에 비사회주의적 우클라우드(경제체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국유화부문에 해당하는 사회주의 우클라우드 역시 법적인 의미에서의 소유에 불과하기 때문에, 생산수단의 점유 문제가 남아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우클라우드 내부에서도 자본주의적 관계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라는 형태로 지속될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이어져오는 도시와 농촌의 분리는 농산품과 공산품 사이의 불균등교환의 형태로 노동자와 농민의 차이8)를 유지시킨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자본주의에서와 똑같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이 작동하고 있고 이러한 관계는 부르주아의 출현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러한 부르주아들은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국유화된 부문, 또는 집단화된 부문에서의 경영적 역할을 수행하는 고위직에 있기 때문에, 이들에 의해 관료주의가 당내에 발생할 수 있고, 앞서 제기한 노동과정에서의 분업체계로부터 심화발전되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재생산을 유지하는 것과 자신의 이해를 일치시키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은 결코 관료주의에 대한 당내 정풍이라는 공산당 자체에 의한 자정운동의 형태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하기에 이것은 경제적 토대와 상부구조 동시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는 작업장 내에서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통한 생산관계의 개조를 목표로 하는 투쟁이며, 이를 위해서 관료에게 귀속된 권력을 노동자들의 수중으로 장악하는 투쟁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당에 의해서 주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운동을 통한 전면적인 근로인민의 참여를 전제하는 것이었고, 사회주의 내에 존재하는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과의 전면적인 계급투쟁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2>스탈린주의로부터의 단절 2: 당의 국가기구화에 대한 경계-이행기 대중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

생산관계의 공산주의적 개조를 목표로 한 계급투쟁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국가와 당의 지령이나 행정체계에 의해서 이룩될 수 없는 것이었고, 자본주의적 관계를 개조시키지 않으면서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에 의해서는 이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주의적 지향의 프롤레타리아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력하게 실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소멸을 준비해 가는 것, 국가기구화된 당을 국가로부터 분리시켜서 대중의 확고한 전위로 대중운동을 지도하게 하는 것, 대중이 정치와 권력의 주체로서 당과 국가의 관료화를 방지하고 사회주의를 굳게 견지하도록 계급투쟁-대중운동을 진행하는 것이 이행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마오의 이러한 계급투쟁에 관한 계속혁명론적 관점은 당의 역할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서보다는 사회주의 하에서의 대중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당의 국가기구화에 의해 억압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음에 주목한 마오는 1950년대에 걸쳐 민주주의의 중요성과 과도한 국가 지배에 대한 저항을 강조함으로써 당과 대중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유지하고 당의 관료주의를 막고, 대중 스스로의 운동을 일으키려 하였다. 이에 문화혁명과정은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가입하여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공격하는 이데올로기 전선에서의 계급투쟁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역할은 결코 당 자체에 의해서는 행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대중은 어떤 변화를 필요로 하지만, 주관적 측면에서 그들은 그 필요성을 항상적으로 자각하지 못하며, 인식하고는 있지만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없을 때, 당의 역할은 그러한 필요를 인식하고 실행하도록 대중을 장려하는 것이지, 그 필요를 당의 명령에 의해 수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에서는 대중자신이 자기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이는 대중에게 자유스러운 자기표현을 허용하여 정치투쟁을 전개-장려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명령주의는 투쟁의 대상으로 설정되었고, 대중들 사이에 솔직한 견해의 표현과 논쟁이 투쟁을 전개하는 중요한 형태로 권장되었다.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에서 모순은 한편으로는 국가와 당 및 대중, 당과 대중, 프롤레타리아와 비프롤레타리아 대중과 반동세력과 같은 대립적 형태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관계들 속에서 발전된다. 이런 모순관계들의 실제적 분출이 문화혁명을 통해서 나타났고 그 과정에서 대중활동에 기반을 둔 대중권력 기구의 창설 문제와 사회주의 하에서 대중에 의한 실제적 권력의 장악 문제가 나타났다.9)



3>`혁명적 위험의 별명`10)으로서 문화혁명의 의의
결론적으로 마오와 문화혁명은 사회주의 속에서의 정치의 문제를 지식인의 사회적 지위에 대항 질문과 위로부터(대중민주주의, 당의 독점에 대한 비판) 그리고 동시에 아래로부터(노동관계의 전화)를 연결시켜내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볼 수 있다. 즉 마오주의는 그 계승자들에 의해 맑스주의 이론과 정치적 실천의 새로운 접합을 규정하면서 계급분할과 현재 세계의 발전된 "중심부와 저발전된 주변부로의 양극화의 교착화의 문제들", 정치적 조직의 문제들 및 국가주의와 혁명의 관계에 대하 문제들, 주되게는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라는 차별적 사회범주들을 그들간의 적대를 축소시켜내는 방식으로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을 지양하였다는 점에서 기존 정치학의 혁신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11)

대중정치라는 것은 대중을 사회통제의 주체로 올곧게 세워내는 과정으로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부할`이라는 심원한 적대는 이행기에 역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자기모순 과정을 밟아 왔으며,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본질적인 조직형태로서 (전위)당 형태는 온전히 대중의 정치를 실현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지점에서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의 근본적인 지양은 맑스주의 사상이 대중의 운동으로 전화, 융합하기 위한 핵심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모순에 대한 인식을 현실 사회주의 운동과정에서 획득했던 마오는 문화혁명을 통해 진정한 대중정치의 실현을 의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위로부터는 대중 위에 군림하려는 지식인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타격으로부터, 그리고 아래로부터는 대중들 사이의 솔직한 견해의 표현과 논쟁이 투쟁을 전개하는 중요한 형태로 제기됨으로써, 그리고 지식인과 대중들 사시의 상호 정치적 교통을 가능케하기 위해, 노동과정 및 대중운동 속에서 결합시켜냄으로써, 앎의 일반화와 그들 사이의 정치적 교통을 통한 관계의 전화를 지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인 대중권력 기관으로서 꼬뮨의 형태를 상정하였다. 그러나 전위당과 꼬뮨의 조직형태는 상호간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적대를 드러내는 가운데 문화혁명은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이라는 실질적 사회화를 가능하게 하는 적대를 폐절시키지 못하고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




1-4. 마오의 대중노선의 발전적 계승:

알뛰세르의 `맑스주의의 전화`를 중심으로마오의 대중노선의 구성요소들, 특히 경제, 정치, 철학의 모든 면에서 대중의 자주성의 옹호라는 관점은 사회주의 혁명 이후의 `혁명`으로서 문화혁명이 `상부구조(제도, 의식, 법, 이데올로기, 당, 국가)`에 한정되어 드러나는 결과를 일정정도 낳게 되었다. 즉 일정한 이론적 인간주의로의 경도는 정치-이데올로기 투쟁에 대한 일면적 강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오의 이행기 이론의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살리는 동시에, 각각의 용어에 대한 엄밀한 개념화 및 마오 이론 전체의 재편성-지반변경 작업을 통해 새로운 이론틀을 구축한 것은 주지하다시피 알뛰세르(및 발리바르)였다. 알뛰세르는 스탈린 사후에 등장한 이른바 프랑스 공산당 내의 `이론적 인간주의`(청년 맑스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제출한)에 반대하고 인간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지점에서 발생한 이데올로기적인 제문제들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청년맑스와 노년맑스 사이의 `인식론적 단절`을 주장, "맑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라는 슬로건 하에 `이론적 반인간주의`노선을 제출하는 한편 마오의 대중노선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스탈린적 편향에 대한 `좌익적 비판`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알뛰세르의 문제의식은 맑스주의에 부재한 한계개념으로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고(스피노자) 및 맑스주의의 전화와 일반화라는 관점에서 근대와 반근대를 가로지르는 혁명적 사상으로서 공산주의 정치의 재개념화로 이어지게 된다. 알뛰세르(및 발리바르)에 따르면 노동영역에서의 경제적 소외 극복을 위한 계급투쟁과 교통영역에서의 정치적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지식과 환경, 성과 인종(민족)을 둘러싼 약분 불가능한 갈등들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투쟁들은 하나가 다른 하나로 환원될 수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다차원적인 투쟁조직간의 연대, 반근대적인 진보적 연대와 교통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회적 모순들의 비동시대적 복합성, 해방을 위한 정치의 차별적 시간성을 갖는 복수의 쟁점들을 계급적대와 다양한 차이들의 접합, 약분 불가능한 갈등들에 의한 계급투쟁의 과잉결정으로 사고함으로써 계급투쟁의 근대적 표상을 전화하고 동시에 노동과정 속에서의 계급적대의 문제설정으로서 맑스주의 이론의 유효성의 조건들을 승인하는 것으로 전화되어야 한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