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결론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주체사상이 민족주의화된 공산주의 운동으로서 북한 사회주의가 지닐 수밖에 없는 특수성 및 스탈린적 편향에 대한 적절하지 못한 평가를 통해(즉 맑스가 이미 지양했던 이론적 인간주의의 요소를 재도입) 형성, 확립되어 왔다는 점에서 맑스주의의 일반화-즉 대중의 보편적 해방 이데올로기로 전화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수령론으로 특징지워지는 개인숭배의 요소는 물론이거니와, 민족주의의 문제도 공히 짚어져야 할 주체사상의 난점들이다. 특별히, 주체사상에서 강조되고 있는 인민의 자주성과 창조성의 경우, 스탈린적 편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당과 국가의 관료화에 대한 지양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혁명적 위험"을 불사한 마오의 기획에 훨씬 못미치는 것이기도 하다. 오히려 `의식성` 범주에 의한 자주성, 창조성의 질곡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옳을 듯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이데올로기로 전화 가능한 맑스주의의 일반화의 기획을 작동시켜야 한다. `주체의 환상`에서 벗어나 오로지 대중운동과 융합가능한,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의 대중-정치의 기획은 시도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은 현재 자본의 위기, 문명의 위기 속에서 금융적 팽창을 통해 스스로의 위기를 지연시키고 위기비용을 모조리 인민들에게 전가하려는 신자유주의와 타락한 국가권력의 참을 수 없는 배제-즉 `자본의 노동에 대한 실질적 포섭의 강화`와 `신제국주의적 군사-전쟁의 폭력의 점증` 및 `역사적 자본주의-역사적 가부장제 하에서 경향적으로 강화되는 `빈곤의 여성화` 등에 맞서 현 시기 `노동권-평화권-여성권` 등을 핵심 축으로 하는 보편적인 갈등 포착 및 쟁점의 구성을 통해 근대 계급투쟁의 표상을 전위, 새로운 공산주의 정치를 재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주의(및 반공발전주의)-민족주의를 넘어서는 반근대 정치의 기획이 필요한데, 포스트-민족적 국제주의, 대중 스스로의 봉기에 대한 무제한적 옹호 및 대중의 집단적 역능의 강화, 계급운동과 대중운동의 변증법을 통한 대중저항주체의 형성 등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혁명적 보편주의의 발견 등이 그것일 것이다.



주)1) 90년대 들어와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은 급변하게 되는데, 냉전의 종식으로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특수성이 해소됨에 따라 미국은 기존의 `역개방정책`을 철회하고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을 강제하고 있다. 즉 냉전적 봉쇄정책에서 탈냉전적 포용정책으로의 변화인데, `정경분리` 원칙에 따른 북한의 국제경제기구 가입 및 남-미-일 합작자본의 대북 진출로 북한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유도하려는 시도가 이 정책의 핵심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포괄 협상안을 거부할 경우를 상정하여, `전쟁억지 및 신속투입 능력`을 위해 주한 미군을 유지하고 남한의 군사력을 현대화한다는 기존의 입장이 고수된다. 북한의 경제위기로 인한 체제 위기, 중국의 개방화 가속화 상황까지를 염두하며, 북한 - 중국의 관계를 세계 경제 속에서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미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편을 추동하기 위한 기본적인 `힘`은 군사력에서 나온다. 이것은 미국의 세계 패권을 가능케하는 상징적인 힘이며 북한과 중국이라는 상징적인 적이 존재하는 가운데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국가들에게 질서재편을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에서 남한과 미국의 공조체제가 성립되는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이러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으며, 일본 역시 남북한 경제통합의 참가/자위대의 재무장 등을 중심으로 일정한 역할을 부여 받는 선에서 한-미-일 공조체제가 긴밀하게 형성되게 된다.

2) 북한의 남북관계에 대한 대응은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기본적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강성대국을 사상과 정치의 강국, 군사 강국, 경제강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의 영도 하에 이루어지는 주체의 사회주의, 미사일 개발로 상징화되는 군사 강국은 기존에 확인할 수 있는 바였다. 문제는 남북관계의 변화 이후에 보여지고 있는 `경제 강국`의 의미이다. 98년 이후 금강산 관광 사업을 비롯한 경제개방지구 확대, 투자보장법 체결 및 경의선 철도 연결,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중국 노선에 대한 발언은 경제 강국의 의미가 개방 노선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물론 북한 지배계층의 권력 지반이 당과 대중의 사상적 단결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전면적인 개방화의 길을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북한 지배계층이 90년 사회주의 몰락, 동아시아의 변화, 중국의 변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지배체제를 재구축하기 위해 분명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한반도 전략은 대미 전략 선상에서 진행된다. 90-92년 사이의 북한의 전략이 1970년 이래의 평화공존론에 기초한 `방어적 공세` 였다고 한다면, 92년 이후 에너지 위기, 식량위기와 발발하면서 상황이 크게 변화하게 된다. 처음에는 미국은 핵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면서 경제위기를 계기로 러시아-동유럽 식 개혁을 강제할 것으로 믿었지만,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중국의 식량지원 등으로 미국의 강경전략은 실패하게 된다. 이후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전략은 탈냉전적 포용정책으로 바뀌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북한은 체제의 안정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가운데, 경제위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전략을 추진하게 된다.



3) 그것은 현상적으로는 주요하게 남한에서 민족주의 운동을 주축으로 발전해온 대중정치를 교착시키고 주변화시키면서 기간 명목상으로 유지해온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민족적 공동체`, 즉 국가의 위상의 전면적 재조정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남과 북의 헤게모니 경쟁에서의 남한의 완전한 승리로 정향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지배적 민족주의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며 `민족민주운동`이 피흘리며 문제제기 해온 한국사회에서의 민주주의는 쇠퇴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의 쇠퇴를 국가의 억압적 지배가 강화되고 있다고만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이데올로기적 지배와 억압적 지배의 강화는 동시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즉 억압적 지배와 이데올로기적 지배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의 쇠퇴는 국가부르주아에 의한 인민의 산출방식의 전체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방식이 즉각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즉 한국사회에서 `피지배자`의 민족주의의 쇠퇴가 계급투쟁의 약화를 동반하여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탈종속을 자주적 민족국가의 건설 혹은 사회-민족국가의 건설로 사고했던)제3세계, 특히 그것을 주도했던 반주변부 계급투쟁 혹은 계급정치에서의 세계사적 수준에서의 현상은 아닌가? 그것은 근대적 반체제 정치가 민족문제와 계급문제가 융합되면서 비로소 등장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따라서 계급투쟁은 항상 독자적으로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역사적으로 계급투쟁은 항상 다른 사회적 갈등과 접합되어 급진적으로 정치화되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피지배적` 민족주의의 쇠퇴가 계급정치의 민감성을 복원시킬 것이라는 사고는 비현실적인 관념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현재 국지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운동의 등장이 `민족주의 운동`의 형성 과정 속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대체할 것이라는 판단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한국사회에서의 민족주의 운동의 위기는 오히려 기타의 사회적 갈등을 둘러싼 급진정치 자체를 위기에 몰아넣을 가능성을 충분히 안고 있는 것이다.



4) 필자가 바라보는 신자유주의와 민족국가의 전화의 문제의식은 중심-반주변-주변의 위계화된 세계체제 하에서 민족국가의 위치변동의 문제(발전주의 이데올로기로 표상하는)와 함께 국가권력의 전화의 문제, 민족형태의 재생산의 변형의 문제 등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관점에 선다면 우리는 OECD가입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남한의 발전주의(선진국으로의 진입, 혹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환상이 97년 외환위기를 통해 좌절된 것을 `반주변의 도전과 몰락` 혹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불가능성`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신자유주의 비판의 문제를 포스트-민족적인 국제주의의 문제로(예컨대 에코-페미니즘과의 접합) 수렴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겠다. 둘째, 국가권력의 전화의 문제를 사고함으로써, 우리는 남한 정권의 변화 과정을 파쇼(억압)-문민(동의: 헤게모니) = 민주/반민주-진보/보수(혹은 개혁/수구)의 구도로 파악하는 관점에서 비켜설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보대련-신자유주의 연합의 형성과정에 이르는 국가권력의 전화 과정을 계투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이에 따라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개혁적인 것으로 사고하거나 혹은 현재의 김대중 정권 등장의 의미를 수구-개혁의 선상에서 분석하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민족형태의 재생산의 문제를 사고함으로써, 현재의 금융세계화가 사회통합 없는 화폐통합이라는 점을 유비할 수 있음과 동시에, 구래의 진영론에 입각한 민족자립경제-자주민주정부 수립의 한계를 승인받고 새로운 국제연대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5) 물론 현재 부시 행정부에 의해 대북관계가 경색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 공화당의 대북강경노선에 의해 기존의 페리프로세스와 햇볕정책 자체가 위협당하는 것(즉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보수-진보의 틀로 공화당-민주당, 혹은 한나라당-민주당을 바라보는 것)이라기보다는 페리프로세스와 햇볕정책(흔히 포용정책이라 지칭되는) 자체가 이미 `불순한` 의도에서 제기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6) 중국 혁명과정에서 대중노선은 혁명의 전략의 문제와 긴밀히 결합하며 하기에 마오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혁명전략 및 이행기 전략을 대중노선의 견지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혁명기에 있어서는 당과 대중의 결합 메커니즘으로서, 이행기에 있어서는 당의 국가기구화를 막아내고 그 방어망으로서 자본주의로의 역행이 아닌 공산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정치의 실현으로서 대중노선은 위치한다.



7) 이것은 철학의 고전적인 대립-명목론과 실재론-을 동시에 거부하는 것, 즉 유(類) 또는 본질이 개체들의 존재에 선행한다는 입장과, 개체들이 일차적 현실이고 그것에 입각하여 보편들이 추상된다는 입장을 동시에 거부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입장 모두 개인들이 상호 설정하는 다수의 행위적 관계들이 바로 개인들과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것을 정의한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맑스는 사회적 관계들로부터 출발함으로써, 즉 이론적 반인간주의를 취함으로써,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간을 설명하고, 그것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과학적 개념(자본주의 생산관계에 내재한 화해불가능한 모순으로서 노동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임노동-자본 간의 적대)들을 출현시키는데 아를 통해 계급투쟁을 분석하고 그 투쟁을 위치지우는 문제들을 생산한다.
) 마오는 도시노동자에 의해 농민들이 착취당할 수 있는 가능성에 반대하였다. 이러한 의의를 가지는 실제적 대중운동으로서는 문화혁명기인 66-70년 사이에 청년학생, 노동자, 인민 공사의 농민의 이니셔티브의 해방을 목표로 노동의 조직, 관리에의 민주적 참여, 기술적 지식과 사회적 교통수단의 영유, 자연적 필연성으로 위장된 사회적 위계질서의 폐지 등의 형태들을 제기하였으며, 78-82까지는 문화혁명의 전진된 형태로 `민주주의적 현대화를 위한 운동`이 전개되었다.



8) 문화혁명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초로서 파리꼬뮨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꼬뮨은 국가기구의 소멸과 필연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다. 중국 혁명의 역사에서 보이지 않던 꼬뮨의 문제가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을 거치고 문화혁명을 통해서 주목받게 된 사실의 이면에는 사회주의 건설의 진전은 국가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는 것이 존재한다. 문화혁명에서 꼬뮨의 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 국가 기구의 타락 방지와 국가기구의 인민의 통제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문화혁명에서의 대중운동은 그러한 모순을 해결하고 공산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대중권력 기관으로 삼결합에 기반을 둔 혁명위원회를 형성시켰다.



9) "마오, 그리고 그와 함께 혹은 그의 편에서 문화혁명은 사회주의 속에서의 정치의 문제를, 지식인의 사회적 지위의 질문과 위로부터(대중민주주의, 당의 독점에 대한 비판) 그리고 동시에 아래로부터(노동관계의 전화) 연결시킴으로서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했다. 만일 이러한 질문이 현재 중국을 계속 `괴롭히고` 있다면, 혹은 만일 다른 곳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다시 제기되고 있자면, `스탈린주의의 내재적 비판`은 스탈린주의 속에서의 맑스주의의 종언(그것에 대해 항상, 그렇지만 헛되이 사회주의적 인간주의와 이론적 순수성의 아름다운 꿈들을 계속 대립시킬 수 있을 것이다)의 별명이 아니다. `스탈린주의의 내재적 비판`은 `혁명적 위험`의 별명인 것이다."
-발리바르, [마오: 스탈린주의의 내재적 비판?], {맑스주의의 역사}



10) 발리바르, [마오: 스틸린주의의 내재적 비판?], {맑스주의의 역사}


11) 윤소영, [`인권의 정치`를 위한 마르크스주의 전화의 쟁점들], {마르크스주의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 p. 229



12) 스탈린은 (...) "역사발전의 토대는 `생산력들의 발전`에 의해 구성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게다가 스탈린은 (...) 생산력들의 발전을 단순한 생산기술 일반의 발전으로 환원시킨다. 그리고 스탈린은 생산력들 속에서의 생산관계들의 현존을 생각할 수 없게 되어, 일한 생산력들의 발전이 어떻게 계급투쟁에 의해 관통되고 계급투쟁에 의해 특징지워지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동시에 그는 생산력들과 생산관계들 사이에 진화주의적인 기계적 관계만을 확증할 수 있었다. 그는 (...) 생산관계에 대한 생산력들의 우위라는 반맑스주의적 명제를 공공연히 옹호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오류들의 논리에 구속되어 사회주의를 "생산력들과 생산관계들의 완벽한 조응"이 존재하는 진정한 "생산양식"으로 정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정의는 언제나 사회주의를 단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공산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으로 보았던 맑스와 레닌의 문헌 자체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도미니크 르쿠르, [보론1: 스탈린], {맑스주의의 역사}



13) 조르쥬 라비카, [주체사상], {맑스주의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