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다가오니 로갤도 정치 이야기로
시간이 갈수록 불타오르는 것 같다.
총선이니, 미래통합당이니, 민주당이니
대진연이니, 정의당이니 뭐니 하며......
갤주님 영화리뷰를 계속할까 생각하다가
오늘이 총선인만큼 정치와 관련된 영화 리뷰를
급하지만 한 번 해볼까 한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말이다.
(갤주님 영화 리뷰 기다리시던 분들한테는 죄송...)
오늘의 주제는 다름 아닌 '칠레' 이야기다.
왜 하필 칠레냐고 물으신다면
선거와 관련하여 사회주의 진영이 이뤄낸
소중한 역사적 선례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다.
갤주님 영화 리뷰에서도 다뤘지만
독일의 사회민주당을 비롯하여
서구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설령 집권을 했을지언정
혁명보다는 사회개혁을 지향했었다.
물론 공산당이나 혁명적 정당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들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한 기를 쓰고 우익이나 미국 등이
방해하기도 한 탓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익과 파쇼에
대항하기 위해 좌익세력의 연합이
이뤄지곤 했었는데 이것을
역사는 '인민전선'이라고 부른다.
선거에서 인민전선이 승리한 경우는
프랑스 제4공화국, 내전 직전의 스페인,
그리고 칠레의 아옌데 정권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다들 성공하지는 못했다.
다만 아옌데 정권의 경우에는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참 오랜만에
사회주의 세력이 승리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그러나 아옌데 정권은 곧 수많은
반발과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우익, 기득권층, 미국의 방해도 있었고
좌익 내부의 갈등 혹은 전술적 실패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피노체트의 쿠데타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아옌데 정권은
포기하기 않고 싸워나갈 수 있었는데
이는 인민전선의 저력은 물론이고
당시 노동자/농민 계급의 단결과
자발적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칠레 선거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뜨거웠던 70년대 초반 칠레의 정국.
영화 '칠레전투'는 3부작 영화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과 당시 민중의
혁명과 투쟁을 잘 다루고 있다.
그럼 긴 서론을 끝내고
바로 영화 리뷰에 들어가자.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칠레의 대통령궁이 폭격에 휩싸인다.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장군이
우익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여러 발의 폭탄이 떨어져
대통령궁 건물에 명중하고
건물은 화염에 휩싸여
무너지는 혁명의 마지막을 장식하듯
무섭게도 타오른다.
그리고 오르는 영화 제목
"칠레전투 제1부
부르주아지의 반란"
영화는 쿠데타 반년 전으로 돌아간다.
때는 1973년 봄.
칠레는 새로운 총선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1970년 대선에서 승리한
인민연합은 총선 승리를 위해 노력했다.
당대 칠레에는 크게 두 개의 세력이
나뉘어서 대립 중이었다.
하나는 기독교민주당 중심의 우익 세력,
다른 하나는 좌익 세력의 연합이었던
인민연합 세력이었다.
영화는 먼저 여야를 지지하며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한다.
카메라맨과 앵커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먼저 인민연합 지지세력.
대부분의 노동자이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부를 지지하고
선거 승리를 자신한다.
인민연합을 지지하는
좌익 청년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우익 세력의 지도자 이름에다가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라고 외치며
한층 선거 분위기를 돋운다.
공산당 심벌을 가슴에 단
한 중년 여자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변한다.
"계속 나아지겠지만 전보다 훨씬 더 맞서 싸워야 해요. |
퇴직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여태까지 이만한 정부는 없었어요."
한 남성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 뒤
시민들이 덕을 많이 봤어요."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칠레의 앞날은 노동자들 손에 달렸어요.
기독교민주당(우익)이야 원래부터
기득권층의 이익이나 지키는 당이죠.
노동자들한테는 관심도 없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인민전선이 이겨야 한다고
아옌데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이들은 '노동자의 정부'이고
'인민의 정부'라고.
인민연합을 지지하면서
밖으로 나온 시민들의 행렬
카메라 시선을 멀리까지 했는데도
수많은 시민들이 나온터라
거리가 꽉 찼다.
이렇게 시민들이 인민연합을 지지했던 이유는
인민연합이 자신들을 이익을 지키는 정당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인민연합이 '자신들의 당'이라 생각했고
아옌데를 '자신들의 대통령'이라고 여겼다.
한편 이번에는 야당 세력이다.
이들도 선거의 승리를 자신한다.
이들의 말인즉슨 이번 선거에서
인민연합은 필패할 것이고
아옌데 정부는 붕괴할 거란다.
이들은 우익 세력인만큼
사회주의 세력인 인민연합과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엄청나다.
한 우익 세력의 여자는
이렇게 화를 낸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해! |
광화문에서 태극기 드는 분들이
생각났다면 기분 탓일 겁니다.
사실 이 총선은 인민연합에게나
우익 세력에게나 매우 중요했다.
먼저 인민연합은 1970년
대선에서 살바도르 아옌데가 당선된 후
처음 해 보는 총선이었다.
그렇기에 이 총선에서
지지를 얻느냐 못 얻느냐는
앞으로의 정책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매우 중요했다.
인민전선을 지지하는 집회.
거기서 만난 한 중년 남성은
"우리가 뽑은 현 정부가 제대로
힘을 행사하도록 의석 대부분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하며
이 선거를 비롯하여
칠레의 전반적 상황을 논한다.
"현실적으로 좀 더 큰 힘이 실려야 |
우익세력에게도 이 총선은
아옌데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의석의 과반수만 넘기면
아옌데를 탄핵할 수 있어서였다.
마침 자신들의 반발과 더불어
미국도 경제적 보이콧을 실시했기에
야당은 내심 선거 승리에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운운하며
칠레를 '재건'해야 한다고 큰소리쳤다.
드디어 3월 4일 오전 8시
총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후 5시부터
표결이 시작되었다.
야당 세력은 처음에 환호성을 질렀다.
초반에 자신들의 득표가 높게 나와서였다.
실제로 일부 언론에서는 성급하게
야당의 승리를 점치기도 했다.
덕분에 이들은 잔치 분위기였다.
야당 지지 세력은 거리로 뛰쳐나와서
"민주주의가 이겼다!"고 광분했다.
시원하다, 최고다, 대통령 탄핵해야 한다,
인민연합은 깡통 찬 거다 등으로
온갖 막말을 다 내뱉었다.
그러나 이들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개표가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상황은 반전되었다.
최종 결과 야당은 패배했고
인민연합은 43.3%의 지지율로
이전 총선보다 오히려 지지율이
상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석도 늘었음은 물론이다.
이에 빡친(...) 야당 지지 세력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지만
그건 그저 어리광에 불과했고
결국 야당도 선거 결과에 승복하면서
총선은 인민전선의 승리로 끝난다.
이것은 분명히 칠레 인민들이
인민연합과 아옌데를 굳게
지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로도
사회주의 정권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야당과 우익 세력은
대의민주주의 장치로는
인민연합과 아옌데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전술은
안팎으로 아옌데 정권을 흔드는 것이었다.
그 전술들과 이에 대한 인민들의
대응은 아래와 같다.
첫째는 매점매석과 암시장이었다.
잘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력을 이용해
물품들을 사재기를 해놓고서는
그걸 자신들의 집이나 창고에 그득그득
쌓아놓아 물품 부족 사태를 유발했다.
이에 아옌데 정부와 인민연합은
식량물가위원회(CCPO)를 강화시켰는데
이 단체는 투기에 대한 제보를 받아
정부가 개입해서는 그 물품들을 찾아
민중들에게 적절하게 판매해 분배했다.
또한 배급카드를 이용한 배급제를 도입해서
인민들이 사재기 물품을 받을 때
자신들이 필요한 물품들을 적절하게
충분한 양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럼에도 사재기 때문에 물품 부족은 여전했다.
하지만 칠레 인민들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자신들의 생을 꾸려나갔다.
가게에서 만난 한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웬만하면 다 참고 있어요.
제 아이들의 보다 나은 앞날을 위해서요.
저는 이 정부를 지지해요."
둘째는 의회에서의 보이콧이었다.
대의민주주의 장치에서 야당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해는
법률을 부결시키거나 정부의 활동에
'의회'의 이름으로 딴지를 거는 거였다.
그래서 야당 의원들은 CCOP 직원들을
소환하여 이들의 활동을 추궁했고,
아옌데 정권에서 새로 입각된 장관들에
대해서 정치공세와 거부권을 행사하여
이들을 줄줄이 사임시켰다.
예를 들어 의회는 3개월 동안
행정관 2명과 장관 7명을 해임했다.
이는 비례적으로 따져보면
열흘에 한 명씩 해임한 꼴이었다.
이 정도로 의회의 방해는 극심했다.
심지어 이들은 헌법까지 바꾸려들고
법률에 분명히 나온 대통령의 권리까지
부정하면서 아옌데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우익 세력의 프레이가 상원의장이 되면서
정쟁은 더욱 더 심해져만 갔다.
게다가 의회는 정부가 상정한
개혁 법안을 줄줄이 부결시켰다.
우익세력이 좌절시킨 법률은 다음과 같다.
경제사범 처벌법
가족부 창설 법안
노동자 임금과 재교육 법안
노동자의 공장 참여 법안
해양부 창설 법안
자주 관리회사 법안 등 20여 개...
이에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의회와 야당을 성토하며
정부를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야당은 자기들을 위한 법을 가지고 이것이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입니다. 정부의 정책을 강화하고 기구를 정비하여 명백히 제도 속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야당은 모른 척합니다. 칠레를 위한 정부의 활동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 현실은 정부의 실정에서 비롯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잇지만 국내외의 요인들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특히 현 정부는 제국주의와 지주-은행가의 봉건적 과두체제와 맞서고 있습니다." |
칠레 인민과 노동 계급도 행동에 나섰다.
야당 세력이 정부의 모든 각료를 내쫓으려 하자
거대한 대중 집회를 통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야당과 우익을 향해 분명히 경고했다.
한 노동자는 우파들의 행태에 대해
이렇게 비난했다.
"여태껏 우파들이 해온 짓이 그래요.
|
그럼에도 야당의 방해는 계속되었다.
야당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제도권의 정쟁은 물론이고
사회 내부에서의 갈등도 증폭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파시즘 단체였다.
작중에는 '조국과 자유'라는 이름의
파시스트 조직이 나와 행진한다.
이들은 야당 세력의 지원을 받았고
부르주아지 단체들로부터도 돈을 받았다.
그렇기에 이들은 성장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 세력의 가장 큰 뒷배는
다름 아닌 큰형님 '미국'이었다.
미국은 CIA 요원과 국무성 관리까지
파견해서 야당과 파시스트들을 후원하고
교육하면서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이렇게 파시즘과 반동의 물결이
의회는 물론이고 우익 세력에 스며들었고
군부에서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이렇게 쿠데타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기서 싹이 트고 있었다.
[뱀발]
1.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설령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해서 선거 같은 의회주의 제도를 완전히 거부한다는 건 아니다. 당장 갤주님만 해도 수정주의를 거부하고 혁명을 외쳤지만 그럼에도 의회주의 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에 계속 남아 있었으며, 혁명가 레닌도 전술적인 의미에서의 선거 참여를 독려했었다.
물론 아옌데 정권과 인민전선을 혁명적 사회주의 정권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허나 이들은 의회주의와 사민주의에 깊숙히 빠져들었던 서구 사회주의 정당하고도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는 민중의 혁명성이 크게 고양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민중의 혁명성과 자발성, 그리고 투쟁성은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 이행 프로그램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렇기에 아옌데 정권은 계속 되는 우익, 기득권층, 미국의 공격에도 계속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갤주님도 이런 상황에서는 아옌데를 어느 정도는 지지해줬을 것 같다. 대통령도 먹고, 의회도 먹고, 민중들도 독일에 비해서는 혁명적으로 나오는데...)
2. 당시의 칠레의 정당과 정치단체, 그리고 이들의 연합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인민연합(Unidad Popular[UP)
1970년 9월 대통령 선거에서 살바도르 아옌데를 입후보자로 내세워 승리한 좌파 정당들의 연합.
사회당(The Socialist Party), 공산당(The Communist Party), 급진당(The Radical Party).
인민행동통일운동(The Movement of United Popular Action[MAPU]),
인민독립행동당(The Independent Popular Action Party),
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 등 6개의 정당으로 구성되었으며
이외에도 많은 원외 정당이나 좌익 사회운동 단체 등도 참여하였음.
* 사회당(PS)
1933년에 창당된 마르크스주의 정당. 인터내셔널에는 가입하지 않지만 인민전선 전술은 지지하였다.
살바도르 아옌데가 여기 소속이었으며 1952년, 1958년, 1964년 대선에 이 당 소속으로 출마하였다.
* 공산당(PC)
1922년 창당되어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한 노동자 계급의 정당. 1949년에 불법화되어 지하조직으로 있었지만
1958년에 다시 합법화되었다. 1964년 대선에는 사회당과의 연합으로 살바도르 아옌데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지만 기독교민주당 측 후보 프레이에게 패배하였다. 하지만 1969년 인민연합을 형성하고
1970년 선거에는 살바도르 아옌데를 다시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승리했다.
* 급진당(PR)
과두독재지배에 반발하여 1862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정당. 주로 중간계급의 이익을 대변했다.
그럼에도 인민연합에는 대다수가 참여했다. 여기서 갈라져나온 당내 우파들은 '급진민주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었는데 여기서도 또 다른 분파가 떨어져 나왔으니 그게 '좌익급진당'으로 이들은 인민연합에 적대적이었다.
* 인민행동통일운동(MAPU)
기독교민주당으로부터 결별한 좌익으로서 1969년에서 형성되었다.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 정당이라고 선언했다.
1973년 총선 이후에는 두 파로 갈라져 한편은 혁명적 입장을 채택해 MAPU라는 이름을 그대로 썼으며,
다른 한 쪽은 공산당을 지지하여 MAPUOC라는 이름을 썼다.
* 좌익혁명운동(MIR)
쿠바 혁명에 고무되어 게릴라적 성향을 가지고 1965년에 형성된 정치단체. 지하로 잠복해 있어서 1970년의 선거에는 불참했다.
하지만 인민연합의 좌익 중에 가장 중요한 조직이었고, 노동자 계급의 지지는 약했지만 사회주의로의 의회주의적 방향에 대한
이념적 대안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 민주주의동맹(Confederation de la Democracia)
인민연합에 맞서고자 기독교민주당(PDC), 국민당(PN), 좌익급진당(PIR)의 선거협정.
* 기독교민주당(PDC)
1957년 팔랑헤당과 사회보수당의 연합으로 설립된 정당. 1964년 선거에서 프레이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바 있다.
하지만 1970년 선거에서는 인민연합의 살바도르 아옌데에게 패배했고 이후 야당의 중추세력으로 남았다.
* 국민당(PN)
1966년 전통적인 두 개 좌우익정당의 연합으로 설립된 정당. 지배계급과 부르주아지의 입장을 옹호했다.
* 좌익급진당(PIR)
급진당에서 갈라져나온 소수분파로서 인민연합에 적대적이었다.
* 조국과 자유(PyL)
네오파시스트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좌익 계열과 아옌데 정권을 향한 테러 혹은 쿠데타에 관여하였다.
[후기]
오늘 정열적으로 열심히 글을 써서
오늘내일 안에는 칠레전투를 끝내 볼까 합니다.
영화가 총 3부작이니 1부작에 상하로 나눠서
총 6편이 올라올 것 같군요.
열심히 노동할테니
나중에 개표방송할 때 틈틈이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ㅋㅋ
개추
이 영화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