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자 룩셈부르크 (연재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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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전투 (연재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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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에 이어서....)
칠레전투 1부와 2부가
통시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3부는 이와는 다르게
아옌데 정권 시기의 칠레 인민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당대 칠레 민중들이
어떻게 '민중 권력'을
주도적으로 형성하였고
어떻게 사회주의의 길로
나아가려 했는지 알아보자.
1972년 칠레 산티아고
아옌데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카 퍼레이드를 하는 대통령을
거리를 꽉 채운 군중들이
"아옌데!"라고 외치며 환호한다.
1970년의 대선에서 승리한
아옌데의 인민연합 정부는
광범위한 사회개혁을 실시하여
구리, 철, 석탄, 초석, 석회 광산을
모두 국유화하였다.
또한 주요 독점기업과
대지주들의 농지,
국내외의 은행들도
국유화 대상이 되었다.
이는 곧 인민의 지지로 이어졌다.
하지만 1부, 2부에서
이미 보았던 것처럼
우익, 야당, 기득권층
그리고 미제국주의는
아옌데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1972년 말
미국의 경제 제재와 더불어
우익 세력과 부르주아지는
운송 업체를 조정하여
어용 파업을 시행한다.
여기에 맞춰서
우익 성향의 이익단체들과
동맹 파업에 들어갔고
야당은 이를 지지했다.
뒷돈은 미국이 대주었다.
곧 차량 공백으로 인한
전국적인 유통망 교란이 펼쳐졌다.
하지만 칠레의 노동자들은
초기부터 파업의 진상을 깨닫고
직접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차량을
끌고 나와 시민들을 실어날랐다.
또한 정부의 요청에 따라
직장에 정상적으로 출근해 일했다.
여기 한 공장의 인터뷰가 있다.
노동자1 : 평소처럼 출근합니다. |
파업 동안 고용주들이나
이익단체들은 손을 놓았다.
이들은 정치와 관련 없는 듯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정부를 적대했고
현장의 노동자들과는 괴리되었다.
예를 들어 '칠레전문직연맹'이라는
전문직 이익단체의 의장의 인터뷰를 보자.
"현재 칠레전문직연맹 의장으로 (중략)
|
전문직은 노동자가 아니던가?
노동자들을 모아놓은 단체의
의장이라는 사람이
'노동자가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부르주아지 혹은
그에 결탁한 중간계급이
어용 파업에 참여하고 있을 때
공장에서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은
계속 노동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들은 사장이나
기술직들이 있을 때보다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노동을 했으며 심지어
자주적으로 공장을 관리했다.
노동자들은 자신 있게
인터뷰에 임한다.
"기술자들이 안 나옵니다.
"훌쩍 가버렸어요. 잘 해나가고 있어요."
"이제 우리 방식으로 나무랄 데 없이 합니다."
|
정부를 지지하는
숙련 노동자들이
기술직을 대신했으며
여러 공장을 담당하여
문제점을 해결하였다.
그 사이 야당인 기독교민주당이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까지 방해하자
인민연합을 지지하지 않는
노동자들조차도 분노하게 했다.
"이번에 기독교민주당이 "부르주아지들은 늘 노동자를 깔봐요. |
실제로 이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지지정당의 지도부와
큰 이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지도부보다는
자신들과 공장에서 함께
일하면서 한솥밥을 먹는
노동자들과 일체감을 느꼈던 것이다.
앵커 : 인민연합 편이 아니라면 |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정부를 믿고
아옌데와 인민연합을 지지하며
계속 일하고 생산하는 것만이
칠레를 위한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나라 상황이 아주 어렵지만 "졸부들은 놔두라 그래. |
한편 부르주아지들이 매점매석으로
물품부족을 교사하자
시민들은 직접 행동하여
사재기 창고를 적발하고
물품들을 골고루 분배해주었다.
"그 졸부들은 현 정부를 존중하지 않아요. |
일부 공장에서는
생산품들을 인민들에게
직접 판매하였으며
각지의 노동조합들이
물품을 운송해주었다.
거리에서는 노동자 시위대가
굳게 닫힌 상점 문을 여는 등
노동자 계급은 주체적으로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을
대행하여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각 공장에서는
자신들의 공장을 지키기 위해
방위위원회가 조직됐다.
이들은 일종의 자경단으로
노동자 계급이 주축이었다.
또한 공장들은
다른 공장들과 협의하여
자체적으로 원자재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물품 부족을
해결하였다.
노동자들의 탄탄한 조직력과
행동력은 곧 빛을 발했다.
어용 파업이 한창임에도
각종 공장의 생산량은
평상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리하여 공단이 있는 곳마다
일종의 '공장지구'가 출범했다.
이들은 개별 공장과 기업의 연합이었고
노동자들의 협력과 자주관리로
이뤄진 '민중 권력'의 초석이었다.
파업이 계속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파업측도 정부측도 협상에 나섰고
정치적인 활로를 모색하기 위하여
아옌데 인민연합 정부는
군인을 등용해 '민군내각'을 형성한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헌정파 군인들을 믿었으며
이들이 인민의 편이라 봤다.
노동자 : 군이 들어온 데 |
하지만 우려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이들은 민정체제에서
군인들이 끼어드는 걸
달갑게 보지는 않았다.
노동자 : 별로 달갑지 않아요. |
파업 이후에 열린 첫 시위
각 공장 지구마다 모인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를 행진하면서
자신들의 세를 과시한다.
그리고 이들 노동자들은
국립경기장에 모여서
민중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투쟁의 의지를 다져나갔다.
파업 이후부터의 사회운동은
이제 노동자들의 주도 아래
'민중 권력'과 관련되기 시작했다.
물론 정부의 도움도 있었지만
민중의 자발성도 중요한 요소였다.
1972년 말부터 노동자들은
"민중 권력 이룩하자!"
"노동자들에게 권력을!"라고
외치면서 조직과 연대를
더욱 굳건히 하였다.
어느 한 공장에서 파업이 열린다면
노동자들은 자신의 소속 지구의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았고
노동자들은 연대투쟁에 나섰기에
고용주와의 싸움에서 보다 유리했다.
노동자들은 공장 지구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힘 없던 노동자들을
하나로 이어주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때문에 사장이라는 쪽수로 치면 우리가 더 많은데. |
앵커 : 공장 지구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노동자 : 매우 중요해요. |
곧 수백여 개의 공장들이
노동자들에게 점거됐다.
하지만 이들은 소수를 빼고는
법적으로는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공권력까지 무력화시키곤 했다.
곧 노동자들과 주민들까지
전부 포함시킨 조직인
'공동의용대'가 만들어졌다.
이 조직이 어떤 조직인가에
대해서는 작중에서
사람들이 직접 말하는 것을
들어보도록 하자.
앵커 : 공동의용대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청년 : 공동의용대는 보통 사람들의 투쟁 조직입니다. 노동자 : 이 특수 시기를 담당할 유기적인 조직체로 |
개인이라면 그저 힘 없었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이제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장 지구' 혹은 '공동의용대'
등으로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뱀발]
1. 당시 칠레 노동자들의 조직 가운데 짚고 넘어가야 할 조직은 '코로돈(Corodon)'이다.
코로돈은 '산업통제위원회'로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직접 조직한 것이었다.
각 공장마다 설립된 코로돈에서 노동자들은 회원이 되어 직접 지도부를 선출하였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부들은 노동 관련 단체들로 파견되어 활동했다.
이들은 대중성과 조직성이 매우 뛰어났고 그렇기에 1970년 대선과 1973년 총선에서
인민연합이 높은 득표율을 얻도록 노동자 계층을 이끌 수 있었다.
아옌데 정부가 점차 위기에 빠지고, 6월 29일의 쿠데타 등 반동세력의 준동이 일자
코르돈은 쿠데타로부터 자신과 일터를 방어하고자 공장 점거와 무장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많은 공장들이 노동자들에 의해 접수되었고 이는 '민중 권력'의 성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허나 우익 세력은 이러한 행동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아옌데 정부와 유우부단한 좌익 정파들은 코르돈의 이러한 행동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했다. (칠레전투 2부 리뷰 중 간부와 노동자 간의 설전을 참고하시길...)
2. 작중 노동자들이 국립경기장에 모여서 민중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칠레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ón)'이라는 장르가
크게 유행했는데 이는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사회참여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음악과 음악가들은 사회주의 운동과 결합하여 활동하였으며
칠레에서는 인민연합과 연대하며 아옌데 정권 창출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에는 누에바 칸시온은 탄압에 시달려야 했고
대표적인 누에바 칸시온 가수인 빅토르 하라(Victor Jara)는 피살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노래는 지금도 남미에서 시위를 할 때 자주 불려진다.
정성추!
아 미제국주의 깨부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