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우산 시위 이후 잦아든 듯 했던 홍콩의 반정부 대중운동은 2019년 6월 범죄 혐의자를 중국 본토를 포함한 홍콩 외부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송환법에 반대하여 다시 불붙었다. 물론 중국공산당의 법정에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므로, 홍콩 민중이 차라리 홍콩에서, 자신들의 눈 앞에서 재판받기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위가 격화되자마자 미국, 유럽 등의 제국주의 정부와 언론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홍콩의 ‘민주주의, 자유’를 요구하는 성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지난 1백년 동안의 제국주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경종이 울렸다. 19세기의 제국주의가 ‘문명화, 기독교’의 가면을 쓰고 활동했던 것처럼, 20세기와 21세기의 제국주의가 애용하는 가면은 ‘민주주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그것을 악용하려 들 지라도, 홍콩 시위는 분명한 대중운동이고, 단순히 제국주의의 약탈을 위한 도구는 아니다. 물론 일부 자칭 마르크스주의 단체들이 홍콩 시위를 ‘대중’과 ‘권력’의 대결로 단순화하며 전면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오류이다.


대중이나 심지어 노동계급의 광범위한 참여가 있더라도 그것이 꼭 진보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폴란드의 솔리다르노시치(연대노조)가 대표적인 반례다. 한때 이 ‘노동조합’의 회원 수는 1천만 명이 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조직의 실체는 제국주의의 명령을 받고 생산수단이 사회화된 폴란드에 다시 자본주의를 복귀시키려는 반동 조직이였다. CIA는 매년 200만 달러를 5년 동안, 미 국무부의 자금으로 운영되는 NED(미국민주주의재단)는 1천만 달러를 이 조직에 제공했으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가톨릭교도가 인구 대다수인 폴란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연대노조를 비호하였다. 제국주의가 수천만 달러의 자금과 정치적 지원을 말 그대로 쏟아부어 창조해낸 이 조직은 공공연하게 폴란드 노동계급의 도살자인 독재자 피우수트스키를 존경한다고 떠들고 다니던 반유대주의자 레흐 바웬사가 이끌었다. 폴란드가 자본주의의 손아귀에 떨어진 후 치뤄진 1990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들은 이제 가면을 쓸 필요도 없다는 듯 상대 후보를 폴란드인을 가장한 ‘비밀 유대인’이라고 부르며 선거 벽보에 다윗의 별을 그려댔으며 바웬사 자신도 정체를 숨긴 유대인들이 폴란드 사회 각계각층에 숨어 있다며 이 ‘비밀 유대인’들에게 정체를 드러내라고 요구했다. 역시 이 선거에서도 NED는 바웬사의 선거 캠프에 250만 달러를 지원했다.


그러나 연대노조를 지지한 1천만 폴란드 노동계급이 모두 제국주의에 속아넘어간 바보였거나, 돌이킬 수 없는 반동이었다고 생각하며 이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 돈과 속임수만으로 대중운동을 허공에서 만들어낼 수는 없다. 대중이 거리에 나서기 위한 사회적 배경이 존재해야 한다. 대중운동이 폭발하는 이 중요한 순간에 소련과 폴란드의 스탈린주의 정권의 탄압으로 왜곡되지 않은 마르크스주의 강령을 따르는 노동계급 혁명 정당이 그 싹조차 틔우지 못한 것과, 제국주의의 지원으로 이 가짜 노동계급 지도부가 일시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 이들이 이런 지도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와 동일하게 홍콩의 시위는 분명한 대중운동이다. 그 배경에는 끔찍한 주택문제나 저임금, 거의 아무 규제도 없는 노동조건과 같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비참한 상태를 유지하는 홍콩 정부, 그리고 홍콩 부르주아와 동맹을 맺기 위해 홍콩을 자본주의 섬으로 유지하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 억압 또한 존재한다. 이것들은 오직 대중운동을 통해서만 분쇄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중국 노동자국가는 약간의 유예 후에 중국공산당의 손에 의해 자본주의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운동을 제국주의가 악용한다는 이유로 단순한 제국주의의 음모나 대중의 광란이라고 보는 시각은 오류이다. 홍콩과 중국 본토의 노동계급은 대중운동을 통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해야 한다. 중국 노동자국가의 방위를 중국공산당 관료집단의 손에 맡겨놓을 수도, 중국 노동자국가를 그대로 제국주의에 넘겨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둘은 궁극적으로는 결과가 같다). 그러나 ‘수많은 대중이 지금 이러저러한 운동을 하고 있다’는 데 무조건 열광하는 대중추수주의자들과 달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느냐가 아니다. 어떤 노선과 구호로 누구에 의해 운동이 지도되느냐, 그것이 궁극적으로 노동계급과 민중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 즉 노동계급이 권력으로 가는 길로 한 발을 더 내딛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노동계급은, ‘현재’ 그것을 노동계급의 대다수가 깨달았든 아니든, 스스로 권력을 쥐어야만 스스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홍콩 시위대 진영의 지도적 인물들을 살펴보자면, 미국 제국주의의 충실한 하수인 조슈아 웡 등이 이끄는 데모시스토당(역시나 NED의 지원을 받는)이나 홍콩 독립, 본토인 추방, 심지어 영국 제국주의에 재편입을 주장하는, 본토파(Localist)라 불리는 극우 분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홍콩의 독립이라! 그러나 홍콩의 본토에서의 정치적 분리는 오직 두 가지 경우, 즉 중국 전체가 청조의 붕괴 이후처럼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군벌들로 다시 조각나거나 '독립' 홍콩이 제국주의의 금융 기지에 더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하고 중국 본토에, 동포를 향해 무기를 겨눈 제국주의의 군사 기지로 변모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 둘 모두 역겨운 반동적 전망이며, 홍콩 노동계급에겐 ‘독립’이 아니라 노예화이다. 또한 홍콩 독립을 공공연하게 주장하지 않는 데모시스토, 민주당 등의 자유주의자들도 오히려 시위가 발생하자마자 미국으로 달려가 홍콩과 중국 정부를 제재해달라고 간청하고 NED의 자금을 받아내는 등 제국주의의 지원을 약삭빠르게 받아내는 데 있어서는 본토파를 능가한다.


그러나 홍콩 시위 운동에는 이들과는 다른, 아니 달라야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홍콩에서 두번째로 큰 노동조합 홍콩노총HKCTU(영웅적인 1967년 반영 봉기를 이끌었으며, 현재는 반정부 시위에 반대하는 건제파에 속한, 홍콩 최대의 노동조합 홍콩노련HKFTU와는 다른 조직), 사회민주연선, 공당, 인민역량, 4월 5일 행동 등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 정당, 그리고 소규모 마르크스주의 단체들이 그들이다.  비록 HKCTU 또한 제국주의의 자금과 정치적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사회민주주의가 지난 1백년 이상 동안 제국주의 도살자들에게 기쁘게 협조하지 않은 적이 드문 이념이라는 사실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분명 이들은 홍콩 노동계급의 전체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노동계급만이 할 수 있는, 그 자체로 노동계급이 사회의 중추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파업이라는 행위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잠재적으로는 중요한 차이이다. 실제로는 실현되지 못하고 연대노조 운동이 되어 제국주의의 수족 역할만을 했을지라도 폴란드 스탈린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노동계급 운동에서도 잠재적으로는 그랬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든, 생산수단이 사회화되었으나 관료집단이 정권을 탈취한 노동자국가든, 그리고 관료화된 노동자국가의 지배 하에 있는 자본주의 홍콩이든 올바른 방향은 노동계급이 부르주아와 관료집단을 분쇄하고 직접 권력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에게서도,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게서도 독립된 독자적인 조직과 강령을 건설하고 파업으로 스스로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 조직들은 어떤 식으로 대중운동에 참여하고 있는가?


HKCTU는 분명 반정부 운동에 참여하는 방법으로써 파업을 조직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파업인가? 그들의 총파업 지침에 따르면, ‘사회적 환경과 법치주의가 훼손되면 기업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고용주에게 ‘파업은 당신 회사/기관이나 경영진을 향한 것이 아니다. 이것의 목적은 시민으로서 나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나는 당신 회사/기관으로부터 이해와 지원을 받으리라 기대한다’고 감히 파업을 하는 것에 대해 선처를 구걸하는 파업이다.


HKCTU, 사회민주연선, 공당, 4월 5일 행동 등 노동조합과 좌파 단체들이 민주당 등 자유주의 단체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사회민주연선의 당원이 의장을 맡고 있는 민주인권전선이 제시하고 있으며, 시위대의 중심 구호가 된 5대 요구는 무엇인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이다. 이 중 애초에 시위를 촉발한 송환법은 이미 철회되었으며, 영국 제국주의가 제정한 폭동법 적용은 5건을 제외하고 중지되었다. 경찰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는 비록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행사한 폭력은 미국의 인종차별적, 억압적 경찰조직이 유색인종과 사회 활동가들에게 행사하는 것과 비슷하거나 덜한 정도의 폭력으로 보이지만, 중국공산당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명령을 듣는 자본주의 홍콩 정부의 경찰조직이 시종일관 공정하고 평화적으로 행동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으므로 정당한 요구로 보인다. 그러나 ‘국제적’인 조사단을 구성한답시고 제국주의의 하수인들(2019년 볼리비아에서 부정 선거를 ‘발견’한 미주기구OAS와 같은)을 불러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체포된 인원 전체에 대한 석방, 불기소는 지하철에 불을 지르고 시위대에 반대한다고 해서 민간인의 몸에 기름을 뿌리고 방화한 등의 자들도 조건 없이 석방하고 불기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보통선거권의 요구이다. 이것이 회원 수적으로는 노동계급과 좌파 조직들이 압도하며, 지도부까지 차지하고 있는 조직의 요구이다! 아마 이들이 즉시 민간인권전선을 탈퇴하고 민주당 등 자유주의자들만 남는다고 해도 조직의 노선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노동계급의 독자적 운동을 건설하는 데 얼마나 무능력한지 더 알아보자. HKCTU 건설일반노조의 람슈메이는 서울의 대중강연회에서 ‘"이번 시위의 특징은 익명의 대중이 만드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홍콩에서 시위는 홍콩의 자유(Liberty in Hongkong) 온라인 포럼게시판(lihkg.com)에 익명의 누군가가 제안을 하고 토론이 벌어지면서 조직된다. 토론에 참가한 이들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텔레그램 채널을 개설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짠다. 실무그룹이 만들어지고 실제 행동에 옮긴다. 텔레그램 채널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서버가 국외에 있어 경찰이 추적하기 힘들다. 그는 "익명성에 기반한 인터넷상에서의 사회운동"이라고 표현했다. 홍콩 시위에서 ‘가장 특징적인 성격이 탈중앙화"이며 "전통적인 방식의 조직이나 정당 지도가 아닌 대중 스스로가 결정하고 후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홍콩노총의 역할은 참가자 중 한 명일 뿐이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러나 전통적인 조직, 정당이 사용하던 지도 방식, 즉 회원과 지지자들에게 하달하는 관료적 명령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지도부가 없는 시위’라는 소리는 아니며, ‘대중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것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이것은 ‘자신들은 노동조합 조직의 틀 내에서 관료적 방법으로 지시하는 것 이외에 노동계급을 지도할 방법을 모른다’는 노동조합 관료의 고백일 뿐이다. 또한 노동조합의 틀 밖에서 운동이 조직된 결과 ‘익명의’, 즉 제국주의의 돈을 받았는지, 중국 본토인 추방을 주장하는지, 홍콩이 제국주의의 동맹으로 ‘독립’하거나 영국 식민지로 복귀하는 것을 원하는지 아닌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들이 시위의 구호와 노선을 정하게 내버려 두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런 ‘탈중앙화’에 대한 홍콩 노동계급 조직의 대응은 이렇게 지도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것, 부르주아를 추종하든 관료집단을 추종하든 상관 없이 기존의 정당, 조직이 자기 입맛대로 운동을 조종하기 어려워진 것은 기회이다. 노동계급 내에서 행동강령을 제시하며 그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설득하여, 명령이나 강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노동계급에게 배타적인 지도력을 쟁취하려는 투쟁을 할 기회 말이다.


이러한 투쟁을 하는 조직은 친제국주의 분자들에 대한 제국주의의 자금지원과 정치적 지지를 폭로하고 이런 혐의에 대한 홍콩과 중국 당국의 수사나 처벌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본토파, 데모시스토 등의 분자들이 본토인 추방, 홍콩 독립, 제국주의 국가들이 군사적 개입, 제재 등 인종주의, 친제국주의 구호를 내세운 시위를 한다면 ‘일부에 불과’ 하다며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항의 시위를 조직해 그들을 거리에서 분쇄할 것이다. 또 모든 파업은 홍콩과 중국 본토의 정부 당국 뿐 아니라 그 동맹인 홍콩 자본가들에 반대한다는 것을 명확히 할 것이다.


거대한 대중운동에서 노동계급이 자신의 독립된 조직과 노선을 확립한다면 작업장을 점거할 뿐만 아니라 수도, 전기, 치안, 의료, 통신, 교통 등의 사회기능을 장악해 직접 운영하며 이를 침해하려는 자들을 분쇄하는 데까지, 즉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2019년 9월 4일 송환법은 철회되었지만 운동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보통선거권과 같은 민주적 권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에게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으나, 보통선거권 그 자체는 노동계급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 해 주지 않는다. 특히 남한의 노동계급은 1987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잘 알고 있다. 민주적 권리는 노동계급의 이익에 종속되어야 한다. 엥겔스는 보통선거권이 ‘우리 세력의 수를 세고 선거 선동으로 대중과 접촉하며 의회 연단을 선전의 장으로 삼을 수 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보는 환상을 품지 않았다(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서문).


1997년 홍콩 반환 이후에도 중국 본토와 구별되는 자본주의 홍콩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중국공산당이 홍콩과 홍콩에 투자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부르주아들과 동맹을 맺고 손쉬운 금융자금 수급책과 부패 세탁처로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중국공산당은 홍콩에서나 중국 본토에서나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에서 위험천만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것은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중국공산당 관료집단의 불안정한 권력은 프롤레타리아 또는 부르주아의 손에 넘어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부르주아에게 권력이 넘어간다면, 상당량이 형해화되었으나 아직도 거대한 부분이 잔존하고 있는, 생산수단에 대한 집산적 소유는 붕괴될 것이며, 중국 노동계급은 지금 가진 것조차도 잃어버릴 것이다. 제국주의의 중국공산당에 대항한 투쟁은 중국에 대한 부르주아들의 더 자유로운 약탈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홍콩과 중국 본토 노동계급이 국내외의 부르주아와 중국공산당 관료집단에서 독립된 운동을 건설한다면 그들의 중국공산당에 대항한 투쟁은 바로 그 반대, 중국공산당이 비호하는 홍콩과 중국 본토의 부르주아를 타도하고 분쇄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으로만 중국 노동자 국가가 수호될 수 있으며, 사회주의를 향한 길에 다시 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