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학설사에서 리센코 학설이 지니는 오류의 근원으로 획득 형질 유전설을 듭니다.
춘화 처리(vernalization)에 영감을 받은 리센코는 지속적인 환경 자극을 통해서도 다음 세대의 DNA 염기서열을 조절할 수 있다는 획득 형질 유전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선천 형질 유전설이 지배적인 이론 체계로 자리 잡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보자면 논란이 있는 주장이기도 했지만, 춘화 처리의 효과가 입증되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며, 엥겔스부터가 《자연변증법》에서 획득 형질 유전을 긍정하고 있다는 점―엥겔스의 사회적 관계 유전론은 《자연변증법》의 생물학 단계에 서술되어 있습니다―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세계관에 조응되는 이론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철학과 과학의 통일을 추구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세계관 상에서 철학은 과학적 지식과 체계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어야 했고, 결과적으로 리센코의 유전학설은 나름대로의 입지를 굳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동지들이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역사상, 리센코의 유전학적 학설에 근거한 농법은 소련 작물 생산량에 큰 타격을 준 바 있습니다. 형편없는 결과로 인해 리센코는 소련 생물학 체계의 허점으로 많이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획득 형질이 다음 세대의 유전형질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리센코의 유전학설에 사이비과학이라는 딱지를 붙일 대신에 당시 소련 공산당이 일부 식물종에 관한 리센코의 유전학설을 농업 경제 계획에 무리하게 동원했다는 것을 초점으로 비판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첫 번째 근거를 제시하자면, 일단 리센코의 유전학설에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가 무수히 많았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가설-연역적으로 완벽한 연구는 아니었지만, 귀납적으로는 충분히 확인된 사례였으며,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당대 일반적인 유전학 기반 이론과 충돌 없이 자신의 유전학설을 종합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그의 유전학설 근건이 되는 획득 형질 유전이 후성유전학의 발달로 인해 크게 입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학적 성과를 농업 경제 계획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전적으로 리센코의 몫에만 속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일부 식물종에 관련된 리센코의 연구 학설이 극히 일시적인 시기까지 소련의 농업 생산력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보다 배는 되는 시기 동안 리센코의 학설은 소련 농업 생산력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획득 형질이 유전되는 방식은 선천 형질이 유전되는 방식과 많이 다릅니다.
선천 형질은 감수 분열을 선행하여 이내 염색체 쌍을 형성합니다. 염색체 쌍의 형성이란 곧 유전자 재조합 과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재조합된 염색체가 DNA 염기서열을 구성합니다. 선천 형질 유전은 기존 염색체 쌍의 유전 특질이 유전자 재조합으로 인해 급격히 변화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개체는 이전 세대와 비교했을 때 그 특질 차이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반면 획득 형질 유전은 그 염색체 쌍에 결합된 메틸기와 관련됩니다. 메틸기의 결합은 유전자 발현 조절 기능을 담당합니다. 메틸기는 유전체에 존재하는 CpG Island의 사이토신 염기와 결합되는데, 바로 이 메틸기가 DNA 염기서열에서 특정 서열의 발현(해당 서열을 반영한 단백질 가닥의 형성)과 발현의 억제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메틸기는 화학적 과정을 거쳐서 히스톤 분자 덩어리를 생성해내는데, 이것이 크로마틴(chromatin) 구조에 변형을 주어서 해당 부위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크로마틴은 DNA와 히스톤 복합체인데, 염색체가 퍼져서 다른 화학적 성분과 결합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기능을 DNA Packaging이라고 합니다. 크로마틴이 없으면 체세포 분열은 물론이고, 감수 분열도 제대로 일어날 수 없으며, 전사 작용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크로마틴 기능이 상실된다면 유전적 특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DNA 메틸화를 통해서 변형된 크로마틴 구조는 재조합 과정에서도 변형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그대로 유지됩니다. 즉 특정한 염기서열체 부위의 발현 억제라는 요소가 감수 분열 과정을 통해서 그대로 유지되며, 또 유전자 재조합 과정에서도 히스톤 분자 덩어리가 끊어지지 않고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환경적 자극으로 인해 발현 억제 기능이 생성된 기존의 유전체가 선천 형질 유전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다음 세대에도 유전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획득 형질 유전은 선천 형질 유전처럼 즉각적이진 않습니다. 더 임밀하게 말하자면, 재조합되기 전의 크로마틴 구조는 즉각적으로 반영되지만, 특정한 환경에 대한 거의 완전한 유전적 기제를 갖는 개체가 나오기까지는 지난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CpG Island의 사이토신 염기 부위는 무수히 많은데, 이 부위 중 일부에 메틸기가 결합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선천 형질이 갖는 유전적 특성이 다음 세대의 유전적 특성 형성에서 더 강력한 결정률을 가지게 됩니다. 즉 특정한 환경적 자극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유전자 발현 조절 기제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전 세대와 그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의 다음 세대를 걸쳐서 무수히 많은 환경적 자극이 축적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까지 제가 서술한 내용이 전한 바와 같이, 리센코의 유전학설을 마냥 사이비과학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온당한 것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서두에서 서술한 것처럼 대개 학설시에서 리센코의 결함을 획득 형질 유전설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최신 학설을 온전히 담아낸 학설사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후성유전학의 발달로 인해 선천 형질의 유전과 획득 형질의 유전은 서로를 제약하며, 또 연관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제가 서로를 제약하고 서로를 규정지어준다고 말하는 이유는, 실은 메틸기 기전 없이는 선천 형질 유전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것을 서술하자면 길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니 생략하겠습니다.
님 설명 너무 잘해주셨어요 저도 생물 살짝 배웠는데 님은 혹시 전공자신가요? - dc App
전공은 아닌데 관련 공부를 해본 적이 있어서..
ㄹㅇ 너무 좋은 설명이심요 - dc App
중국의 농업실패 사례도 그렇고, 어쩌면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과학적 행위에 집착한 나머지 전통적인 경험으로 습득된 현장 노동자들의 경험론이 무시되었던 것 아니었던지 고려가 필요할지도...
솔직히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이론단계의 것을 국가 전체에 "좋아 빠르게 가" 한건 실책이 맞는거같음 - dc App
그 문제도 주요 문제 중 하나였을 겁니다. 낡은 것을 물리친다는 것이, 사실은 새로운 모순을 창출해내기도 합니다. 과학에 근거한다는 것이, 사실은 그것의 도입으로부터의 미숙함을 피한다는 것을 완전히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보니...
들어본 적 없는 이론인데 실제로 검색해보니 나름 대접받는 이론이네요. 신세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