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1930년만해도 김두봉, 안창호, 조소앙, 김구등이 합세할 정도로 스펙트럼이 존나 넓어었음
물론 이건 1935년 민족혁명당의 창당과 합류, 탈당등으로 인해 약해지긴 했지만 임정에서 중도파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었음
거기에 1940년 3당 합당으로 재창당되는 등 김구계파를 우위로 조소앙 계파 이런식으로 굴러가고 있었고 심지어는 해방 후엔 건준 우파 몇몇 인사을을 포섭할 정도였긴 했었음
(는 이건 오래가지 못했지만)
해방 후 정치적으로 시달리고 삽질도 하고 중도계열이 이탈하는 등 나름 유지하곤 했는데 김구 암살로 인해 완전히 뿔뿔이 흩어졌음
이렇게 흩어진 정치인들이 그래도 1948년 제헌 국회에서 거기에 엮여진 의원들이 무소속임에도 나름대로의 조직을 구성해서 소장파와 협력하고 1950년 무소속 구락부와 협력하는 등 그랬음
이후엔 혁신계, 민주당계, 청년단조직으로 제각각 나뉘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ㅇㅇ
납북된 정치인은 1956년 조소앙, 김원봉의 평화통일론에 호응해줬지만 이것또한 오래 못가고 그랬음
한독당이 만약에 살아있다 치면 다른나라의 빅 텐트 정당마냥 크게 굴러갈 지도 모를텐데 이건 좀 아쉽다고 생각이 듬
그런데 김구가 해방 정국에서 너무 편협하게 정국을 이끌어갔었기 때문에, 한독당이 계속 살아있었어도 분열은 뻔했을 듯. 안재홍, 조소앙, 신익희 등등 나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ㅇㅇ 당장 해방만해도 신익희는 1차 반탁운동 이후 손절해서 청년단쪽으로 합류한것에 가까움 이후엔 안재홍이 뒤따르고 그 담이 조소앙이였지만 ㅇㅇ
개인적으로 1950~60년대 민주당의 신파-구파 분열, 혁신계의 극심한 분열 등의 양상을 보면, 정치에서 대동단결이라는 구호야말로 가장 이루기 어려운 목표라는 것을 아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았음.
대동단결이라는 구호 당장 에초에 따로 활동하던 인사들이 단결하려는 경험에 대해 별로 많지 않아서 그런게 아닐까 싶은디 그만큼 험난한게 그런거지 않을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