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 Mahler (1860-1911)
내가 소개하려는 작곡가는 오스트리아(체코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독일어를 썼고 오-헝제국인이었으니 오스트리아라고 치자)의 작곡가인 구스타프 말러임.
클래식계에서는 후기낭만주의 교향곡을 완성하고 현대음악의 무조성 등의 선구자로 손꼽히고, 지휘자로서 현대 연주회 문화를 정립한 인물로 꼽히지.
그렇다면 이 사람은 정확히 어떤 성향을 가졌는가?
말러는 원래 바그너빠였기 때문에 유태계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시절에는 독일 민족주의에 경도되었다고 하고, 빈에서 음악 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민족주의 모임에 참여했다고 함.
재밌는 점은 그가 참여했던 민족주의 조직의 인사 상당수가 훗날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의 주요 창당 요인들이 되었고, 말러 역시 이들에 동조했다는 것.
말러 본인은 빈 황실 오페라단의 총감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공인으로서 대놓고 사민당에 가입하거나 지지 행보를 보이진 않았음.
하지만 오스트리아 사민당의 초대 당수였던 빅토르 아들러의 부인 엠마 아들러는 이렇게 회고했다.
"말러는 항상 정치나 당적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그를 만난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901년 제국의회 선거에서 황실-왕실 오페라단 황실-왕실 총감독 구스타프 말러는 자기 선거구의 사민당 후보를 찍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빅토르 아들러였다. 기독사회당(오스트리아의 우익 정당)은 분노하여 김을 뿜었고, 우익 언론은 온갖 언사로 증오감을 드러냈다."
(여담으로 이 선거에서 빅토르 아들러는 천여표 차이로 반유대주의자인 우익 후보에게 패배했다. 지못미)
아직 개량주의와 혁명주의의 갈등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시점이었고, 그가 갈등이 본격화되기 전인 1911년 사망했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쪽에 섰는지는 확실하지 않음.
확실한건 그가 독일 민족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경도된 인물이란 거임. (그래서 대진연에서 변혁당으로 넘어온 내가 이양반 작품을 좋아하는 건가...)
이어서 그의 좌파 성향을 보여주는 일화 한가지를 소개하려고 함.
1905년 노동절 빈에서는 당연하지만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가 열림. 수많은 노동자들이 빈 도심에 집결, 시가 행진을 벌이면서 8시간 노동 쟁취, 사회 혁명, 자본주의 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고 붉은 깃발과 장미, 리본을 휘날렸음.
집회가 끝난 후에도 4-5천 가까이 되는 노동자들은 쁘띠 부르주아들의 쉼터였던 식당이나 카페에 진을 치고 뒷풀이를 벌였다고 함.
이런 '사태'에 전율한 빈의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은 모든 가게 문을 닫고 거리마다 경찰들이 배치되어 언제든 발포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음.
말러는 이날 한스 피츠너(오스트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최후의 독일 낭만주의자로 꼽히지만 내놓고 나치에 부역한 꼴통이다.)의 오페라 리허설을 위해 극장에 출근했고, 추가 논의를 위해 피츠너를 초대함.
하지만 피츠너는 말러의 아내인 알마에 빠져서 핑계를 대고 먼저 말러의 집에 가 알마를 만남. 이후 이야기는 알마의 회고로 대신함.
"피츠너는 흥분과 분노로 가득했다. 그날은 5월 1일이었고, 그는 노동자들의 시가 데모를 마주쳤다고 한다. 그 '프롤레타리아적 면상'에 분노하여 그는 뒷길로 피했지만, 그들에게 쫓겼을 때의 감정은 그를 통해 내 방까지 전해졌다. 얼마 후 말러가 집에 왔다. 그는 금방 피츠너가 왜 여기 왔는지(알마 꼬시러) 이해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행복해있었다! 그 역시 시가에서의 노동자들의 데모를 마주쳤고, 한동안 그들과 함께 행진했다고 했다.
"그들은 모두 나를 형제처럼 바라봐줬어!"
"그들은 우리 동포야!"
"그들에게 미래가 있어!"
1시간 가까이 논쟁이 벌어졌다. 양쪽(피츠너와 말러) 모두 한치의 양보도 없이 나를 중간에 내버려둔채 말싸움을 벌였다."
그러니까 한국에 비유하자면 국립오페라단 감독쯤 되는 양반이 퇴근길에 노동절 집회에 나와서 노조하고 같이 시가 행진에 나섰고, 그걸 두고 태극기 부대급 꼴통들과 말싸움을 벌이는데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는 거임.
지금도 그정도 급 되는 양반이 파업이나 노조를 지지한다고 하면 조중동에서 집중포화를 갈길텐데, 하물며 합스부르크 제국의 심장부에서 그것도 황실 전속 지휘자가 그런 발언을? 확고한 신념이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었겠지.
당연하게도 그는 우익 언론들의 숱한 공격(물론 정치문제보다는 유대인 혐오가 중심이었지만)에 떠밀려 2년 후 음악감독을 사임하고, 6년 뒤 지병인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남. 사후에는 나치에 의해 그의 곡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되고...
하지만 전후 그의 작품은 다시금 재평가되고, 지금 그의 교향곡들은 네임드급 오케스트라면 반드시 연주해야 할 곡으로 인정받고 있지.
로붕이들도 모진 탄압에도 자기 신념을 말러처럼 확실히 지켜나가길 빌면서 작품 하나만 추천할게.
2010년 광주시립교향악단이 5.18 항쟁 30주년을 기념하여 연주한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 중 마지막 부분이야.
원래 가사는 독일어지만 전남대 김상봉 교수가 직접 광주항쟁의 열사들을 기리는 방향으로 번안해서 불렀음.
역사적 의의에서나 음악적으로나 모두 들어볼만한 곡이니까 조금이라도 들었으면 함.
비추 잘못누름 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