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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전투 3부작 총평






칠레 전투. La batalla de Chile. The Battle Of Chile. 1975~1979






'선거를 통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 수립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인민연합의 살바도르 아옌데가 선출된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으며 소속 정당인 인민연합은 좌익 정파들의 선거 연합이었다. 이는 세계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좌익 세력이 정권을 잡은 것은 칠레만의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옌데 정권의 출범은 '선거'를 통해서도 사회주의 정권이 출범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특히 제3세계에 해당하는 남미에서, 미제국주의가 시퍼렇게 살아있던 남미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옌데 정권은 집권한 이후 곧바로 광범위한 사회주의적 개혁에 들어간다. 칠레 각지의 광산, 독점기업, 대지주의 토지, 국내외의 은행들이 국유화되었다. 이를 통해 그동안 부르주아지와 외국계 기업에게만 돌아가던 국부(國富)가 칠레에게로 온전히 돌아왔고, 이는 칠레 인민을 향한 복지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칠레 인민은 아옌데 정권을 열렬히 지지했고, 이는 1971년 지방선거와 1973년 총선에서 인민연합의 승리로 이어졌다. 이 지지는 아옌데 정권이 끝날 때까지 굳건하였다.


허나 아옌데 정권의 행보는 곧 반대 세력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그리고 거기에 맞선 칠레 인민의 투쟁도 전국적으로 펼쳐지며, 상황은 점차 혁명적으로 흘러간다. <칠레전투> 3부작은 바로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옌데 정권이 선출된 지 3년이 되어가는 1973년 초부터,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는 그 해 9월까지의 정국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반동 세력의 공세


아옌데와 인민연합의 선명한 '사회주의적' 색채는 우익 세력과 부르주아지, 그리고 미제국주의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물론 아옌데 정권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였기에 이들은 곧바로 무력을 쓰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정권을 흔들려고 노력했다. 아옌데 정권은 집권 내내 반대 세력과의 갈등과 맞서야 했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더디기만 했다.


영화 1부 '부르주아지의 반란'과 2부 '쿠데타'는 그런 칠레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반동 세력은 부르주아지와 미국의 지원 아래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의회 내에서는 아옌데 정권의 입법안을 거부하거나 정부 각료들을 보이콧하여 낙마시킨다. 부자들과 상인들은 물품을 사재기하여 물품 부족 사태를 유발하고 암시장을 경영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린다. 고용주 단체는 합심하여 어용 파업을 선언하고 미국이 뒷돈을 대주며 경제적 혼란을 키운다. 또한 파시스트 단체를 육성하고 반동 세력의 시위를 조장하여 치안을 불안하게 한다. 이런 상황을 보고 TV 토론에 출연한 공산당 의원은 일침을 놓는다. "인민의 정부를 불법 정부로 규정하는 활동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반동 세력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옌데 정권은 사회주의적 개혁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칠레 노동자 계급의 굳건한 지지도 계속 이어진다. 그리하여 1973년 3월에 치뤄진 총선에서 인민연합은 이례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 민주적 방식으로 아옌데 정부를 끌어내릴 수 없음을 알게 된 반동 세력은 끝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1973년 6월 29일의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그 해 9월 11일에 일으킨 쿠데타는 성공한다. 아우구스트 피노체트가 이끄는 쿠데타군은 대통령궁을 무차별 폭격하고, 아옌데 대통령은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며 결사항전하나 결국 자살하고 만다.



'민중 권력을 향하여'


비록 쿠데타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붕괴했으나, 아옌데 정권이 쿠데타 이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칠레 인민의 지지였다. 영화 내내 인터뷰를 하는 노동자마다 "인민의 정부를 지켜야 한다"라고 입을 모은다. 칠레 인민은 아옌데 정권을 '우리의 정권'이라고 봤고, 인민연합을 '우리의 정당'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아옌데 정권이 있어야만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사회주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식이 있었기에 칠레 인민들은 반동 세력의 공세를 자신들의 단결을 통해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영화 3부 '민중의 힘'에서는 아예 한 편을 전체적으로 할애하여 칠레 인민의 투쟁을 다루고 있다. (물론 1부와 2부에서도 투쟁은 계속 나온다.) 반동 세력의 공세에 맞서는 칠레 인민의 투쟁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우선 매점매석과 암시장을 막기 위해 인민들은 직접 나서서 투기를 감시했고, 매점매석된 물품들을 적발하여 주민들에게 적절하게 분배하였다. 어용 파업으로 인해 운송과 대중교통이 마비되자, 스스로 차량을 끌고 나와 사람과 물품을 실어 날랐다. 파업이 일어난 회사와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게 정부를 돕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계속 일했다. 물품 부족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계 부품을 스스로 제작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불어 '민중 권력'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이어진다. 각 공장과 회사 내에서는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방위위원회를 만들어 공장을 반동 세력으로부터 지키고자 한다. 이는 '공장 지구'라는 노동자들의 자치 기구와 연결되어 공장 점거와 공장 자주 관리 운동으로 이어진다. 시민들은 '인민상점'을 만들어 부족한 물품을 상인 없이도 공급할 수 있게 하며, 가구별로 물품을 공급하는 방안을 생각해낸다. 노동자들은 농민과 연대하여 대지주에 맞선 계급 투쟁에 나선다. 지역 주민들과 힘을 합쳐 '공동의용대'를 만들어 지역 내의 총체적인 문제에 맞섰고 공권력을 대신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노동자들은 쿠데타 위협에 맞서서 자신들의 무장까지도 주장하기에 이른다. 한 노동자는 말한다. "인민들이 정부를 지키는 데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편 노동자들의 참여를 통한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논의도 이어졌다. 물론 혁명적인 상황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칠레는 '부르주아 자본주의 국가'였다. 아옌데 정권이라는 '인민의 정부'가 들어섰다지만 아직도 노동자가 주도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이를 해결하고 사회주의로 가기 위해, 노동자들과 좌익 세력은 자주적으로 노동자들이 공장을 관리하고 경제 정책에 참여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계획적인 생산, 공급, 운송을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칠레 인민은 전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성하고 단결했으며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놀라운 행동력과 조직성을 보였다. 대중의 참여와 투쟁을 통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인민은 혁명적으로 고양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옌데 정권과 좌익의 한계


칠레 인민들은 혁명적인 상황에 맞춰 투쟁하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아옌데 정권과 좌익 세력은 여전히 유우부단한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무장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좌익 단체 지도부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노동자들을 설득하려 했다. 이는 노동자들의 반발을 불러왔으며, 상부와 하부 간의 의견 갈등을 일으켰다.


영화 2부에서는 한 공장에 노동단체 간부진과 노동자들의 설전이 나온다. 이들은 공장 점거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간부진은 공장 점거의 의미는 파시스트의 준동을 막기 위함이라고 말하며 몇몇 공장은 점거하기에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에 한 노동자가 말한다. "정부가 노동자들의 조직을 요청했어요. (...) 조직하라고 해서 그대로 했어요. 그런데 대통령은 여전히 어떤 식의 행동을 삼가라고 해요. 그럼 왜 조직을 했어요? 뭐가 겁나요? (...) 이걸 알고 싶어요. 민중의 힘을 신뢰하는 지를. 총노련은 노동자들을 믿지 않나요? 금요일 아옌데 동지 앞을 행진하면서 지지 구호를 외친 사람들을? 대통령은 노동자 조직을 믿고 있나요?" 한편, 영화 3부에서 지지부진한 토지 문제를 성토하며 한 노동자는 공무원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혁명 사업을 하는 공무원은 시계만 들여다보면 안 될 겁니다."



물론 혁명적으로 고양된 인민들은 '인민의 정부'였던 아옌데 정권을 굳게 지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반동 세력의 공세를 해결하겠다며 합의를 지향한 아옌데 정권의 자세는 어떻게 보면 답답한 것이었다. 공장 점거와 노동자의 무장 건에서도 아옌데 정권과 좌익 정파들은 의견을 통일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논의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갔으며, 쿠데타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아옌데 정권은 정국 타개를 위해 군인들을 내각에 참여시켰는데, 오히려 쿠데타 위협을 높이고 말았다. 결국, 이는 아옌데 정권과 좌익 세력 내부의 한계였다.


이 점을 간파하고 있던 사람들은 아옌데 정권이 비극적인 결말을 맺을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 그래서 하루빨리 정부가 해결책을 찾고 대처할 것을 요구했다. 3부작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터뷰에서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위아래를 싹 씻어내려야 해요! 정부가 그 잔때들을 털어내지 못하면 결국은 도태될 거요. 다른 대안이 없소. 확고하게 나가야지. (...) 지금이 기회고 다신 오지 않을 거요. 적들은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소. 숨 돌릴 틈도 안 줄 거요." 하지만 한계는 극복되지 못했고, 쿠데타로 사회주의의 길은 좌절되고 말았다.



칠레 혁명의 교훈


1970년대 초반 칠레의 격동적 상황은 '칠레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혁명적이었다. 민주적인 선거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승리를 거둬 집권했고, 칠레 인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단결하고 연대하여 '민중 권력'의 초석을 닦았다. 하지만 반동 세력의 공세와 여러 가지 한계들로 인해 혁명은 좌초되고야 말았다.


그러나 칠레 혁명의 경험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칠레 혁명은 민주적인 선거로도 사회주의 세력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동 세력의 공세에도 인민들의 단결과 투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민들이 스스로 '민중 권력'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상황이 혁명적으로 치달을 때 우물쭈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칠레전투> 3부작은 이런 점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물론 다큐멘터리로서 정치적 구호와 주장보다는 1973년 당시 칠레의 모습을 오직 영상과 인터뷰로만 채웠다. 그럼에도 영화는 정치적이자 문제적이며, 우리에게 많은 화두를 던진다. 민주적으로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있는가? 민중의 힘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반동 세력의 공세를 막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갈등과 분열 혹은 의견 차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성공으로부터도 배우고, 실패로부터도 배운다. 칠레에서의 경험은 시작은 성공이었으나 결말은 실패였다. 허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반성하느냐이다. 그리고 어떻게 제대로 실천하느냐이다. 이를 분명히 새길 때에야 역사는 전진할 수 있다. 실패가 아니라 승리로 나아갈 수 있다. 진정한 사회주의의 길로 향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옌데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것이다.



저들에게는 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들이 우리를 굴복시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범죄와 무력으로는 결코 사회의 진보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인민들의 역사의 큰 길을 활짝 열고

모두가 자유롭게 거닐며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1973년 9월 11일)








[후기]


드디어 칠레 전투 3부작 리뷰가 끝났습니다.

선거 때문에 FEEL 받아서 시작했는데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자꾸만 늦어졌습니다.

기다리신 모든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영화 리뷰는 이런 식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훝어보고

'본격적인' 리뷰를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칠레 전투 때문에 중단되었던

갤주님 영화 리뷰도 빨리 끝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예고했던

맑시즘 관련 연재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4월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해보겠습니다.

기대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