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박정희는 김구 고평가에 대한 여론을 국가적으로 이용해먹는것에 가깝지 진심으로 그랬다기엔 아니였음
그리고 그런 행각은 한일회담으로 인한 6.3사태 이후엔 안하게되었을 정도였는데
60년대 중반에 있던 김구 추모식에선 민주당 인사 상당수 참석했는데 민주공화당(박정희 그거 맞음)인사들은 별로 참석을 안했을 정도임
거기에 더 나아가 최인훈(광장 작가 맞음)은 70년대에 쓴 '총독의 소리'라는 시리즈와 속편이던 '주석의 소리'를 통해
총독부의 해적방송 - 박정희 정권과 분단정국 옹호
환상의 임시정부 지하방송 - 남북화합과 민주주의 옹호
이런 구도로 나타내곤 했었음
그럼 이렇게 된 원인을 거슬러보면 4.19가 나오는데 4.19이후 여러 진상규명중에서 대표적인게 조봉암법살과 김구 암살 진상규명이였고 안두희 뚝배기를 깰려는 시도도 이때 생겨나고 있긴 함
그래서 어떻게보면 이승만때문에 고평가받게되지 않았나라는 주장도 너무 틀린건 아니긴 함
오히려 그렇게 되어갔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거기에 제1공화국 내내 김구는 오히려 용공분자라면서 금기시된 영역에 포함되었을 정도라 ㅇㅇ
(1949년 이후로 추모식 조또 없었고 1960년이 되서야 추도식이 열리기 시작했었음)
그리고 그런 행각은 한일회담으로 인한 6.3사태 이후엔 안하게되었을 정도였는데
60년대 중반에 있던 김구 추모식에선 민주당 인사 상당수 참석했는데 민주공화당(박정희 그거 맞음)인사들은 별로 참석을 안했을 정도임
거기에 더 나아가 최인훈(광장 작가 맞음)은 70년대에 쓴 '총독의 소리'라는 시리즈와 속편이던 '주석의 소리'를 통해
총독부의 해적방송 - 박정희 정권과 분단정국 옹호
환상의 임시정부 지하방송 - 남북화합과 민주주의 옹호
이런 구도로 나타내곤 했었음
그럼 이렇게 된 원인을 거슬러보면 4.19가 나오는데 4.19이후 여러 진상규명중에서 대표적인게 조봉암법살과 김구 암살 진상규명이였고 안두희 뚝배기를 깰려는 시도도 이때 생겨나고 있긴 함
그래서 어떻게보면 이승만때문에 고평가받게되지 않았나라는 주장도 너무 틀린건 아니긴 함
오히려 그렇게 되어갔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거기에 제1공화국 내내 김구는 오히려 용공분자라면서 금기시된 영역에 포함되었을 정도라 ㅇㅇ
(1949년 이후로 추모식 조또 없었고 1960년이 되서야 추도식이 열리기 시작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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