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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인민전쟁: 연속혁명인가, 마오주의 '신민주주의'인가? 中


"CPN(M) 근거지에서 대토지 소유자의 땅은 농민들에게 분배되었고, 부채는 탕감되었으며, 채무농노제는 폐지되었고 카마이야 농노에게는, 최소한 일정 지역에서, 드디어 어느 정도의 토지가 배분되었다. 마오주의자는 소규모 토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비탈진 땅’ 을 협동경작하는 것을 장려했다. 한편 롤파와 루쿰에는 3개의 ‘해방구(commune)’가 설립되었다(Monthly Review, 2005년 11월). 식품 가공과 더불어 면화, 비누, 양초 그리고 종이의 소규모 제작이 시작되었고, 노동집약적 공공노동을 통해 기초적인 도로와 관개수로를 건설했다. 가난한 사람들 특히 여성과 달리트 (소위 ‘불가촉천민’이라 일컬어지는 카스트의 가장 낮은 계층)도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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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주의 근거지에서 달리트와 소수 민족 그리고 여성에 대한 차별은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그들은 ‘인민위원회’에 대표를 파견한다. 여성은 인민해방군의 낮은 직급 (비록 높지는 않지만)에 상당히 많다. 나중에 여성 전사들의 비율은 40%에 육박했다. 장총을 멘 마가(Magar)족 여성의 모습은 네팔 인민전쟁의 상징적인 모습이 되었다. 여성에겐 상속권 교육권 그리고 이혼할 권리가 주어진다. 가정폭력과 강간은 심각하게 처벌받으며, 여성은 더 이상 아동결혼과 일부다처제에 종속되지 않는다."





중요한 고비마다 주저하고, 왕정타도 전후로 기성정당들과 연정을 꾸리면서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간게 안타까울 따름. 개량성이야 이전부터 잉태되어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