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이라는 자기정체성도 멤버마다 다르다. 가나에서 성장한 여성은 흑인 다수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여성이라 하기보다 그냥 사람으로 정의하길 선호한다. 두 가지 인종을 타고난 혼혈인들은 스스로를 온전히 흑인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흑인여성 네트워크의 정치적 의미에 동의해서 참여하기도 한다

컬러리즘(colorism), 우리 안의 차별을 직시하다 


‘흑인’이라는 포괄적인 정체성 우산 아래 모인 사람들이 느슨한 연대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쏘울 시스터즈가 작년부터 주력하는 ‘컬러리즘(colorism) 워크숍’이 바로 이를 목표로 한다. 


시에나: “처음으로 영어.독일어를 병행해 진행했던 행사였어요. 당시에 컬러리즘에 대한 소논문을 쓰고 있어서 저에게 중요한 화두였고, 우리 모임에서도 꼭 다뤄야할 개념이라 생각했지요. 컬러리즘은 한 인종이나 민족 집단 내에 존재하는 차별을 일컫는 용어예요.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피부 톤이나 얼굴 모양, 머리 결 같이 흑인임을 나타내는 외모 지표가 차별의 근거가 돼요. 사람들은 보통 컬러리즘을 거론하길 꺼려요. 주류 인종에 의한 차별만 다루기도 버겁고, 자기들끼리도 화합하지 못하면서 무슨 인종차별을 해결하냐는 외부의 공격을 받을까봐 우려하는 거죠. 


하지만 컬러리즘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뚜렷한 현상이에요. 독일에 있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은 대부분 혼혈이니 여기서 역시 컬러리즘이 작동하고, 그 양상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두 분 다 가나 출신이고 자신은 독일에서 나고 자란 한 멤버는 짙은 피부를 갖고 있어요. 혼혈이 다수인 독일 흑인 커뮤니티에서 자기 이야기는 안 들린다고 느끼죠. 반면 흑인 혼혈들은 피부 톤이 아무리 옅어도 독일 사람으로 인정받기까지 어려움을 겪는다는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어요. 


여성 커뮤니티인 만큼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인 상호교차성도 앞으로 더 탐구해 멤버 간 연대를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의미로 보는 영화”(Screenings with Meaning)라는 영화토론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 집단 내의 특정 정체성이나 이슈를 드러내는 영화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구성인데, 첫 번째 주제는 흑인 퀴어여성이다. 컬러리즘과 상호교차성의 관점에서 시에나는 자기 위치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시에나: “저는 미국 여권을 갖고 있고 영어가 모국어이니 분명 특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죠. 대학 학위가 있어서 그걸 발판 삼아 독일에 올 수 있었고요. 풀타임 노동을 하지 않고도 경제적으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어요. 저의 피부 톤은 아주 엷지도 짙지도 않은 중간쯤이라서 심각한 컬러리즘을 겪지 않아요. 이런 점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흑인여성은 인류문화의 ‘회전문’이라는 말 


시에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갖고 있고 독립된 자아를 중요시하는 페미니스트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기까지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어떤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물었다. 언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냐고. 그런 결심은 한 적 없단다. 어릴 적부터 스파이스 걸스나 미녀삼총사 같은 여성들이 활약하는 미디어 콘텐츠에 열광했고 그런 여걸이 되길 꿈꿨는데도.


시에나가 가까이서 보고 자란 여성상 역시 강인하고 독립적인 존재였다. 엄마는 이혼 후 쓰리-잡을 뛰면서 아이들을 키운 싱글맘이었다. 군부대에 비정기적으로 출장을 나갔고, 청소녀 교정 쉼터에 나가면서 부동산 중개사로도 일했다.


시에나: “페미니즘에 크게 공감한 적 없었어요. 왜냐면 저한테 페미니즘은 언제나 굉장히 백인스러웠거든요. 이미 특권층이고 여러 가지 자원이나 힘을 가지고 있는 중산층 여성들이 더 가지려고 싸우는 것. 대학에 가서 인종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이론적으로 파헤쳐보면서 비로소 페미니즘을 다시 봤어요. 페미니즘 문학을 비판하는 민족지학적 관점을 통해서요. 그러면서 내가 탐착치 않아 했던 게 ‘백인 주류 페미니즘’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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