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marxists.org/archive/deutscher/1967/marxism-newleft.htm


1967년 봄 아이작 도이처는 하퍼 칼리지(현 뉴욕주립대 빙엄턴)에 석좌초빙교수로서 6주를 보냈다. 이하는 아이작 도이처가 발행을 도운 학생 잡지

New Left Forum의 첫번째 호에 실린 것으로 녹음된 토론 중 일부이다. 다른 참가자들은 에릭 데이비스, 앨런 화이트맨, 개리 워첼 그리고

멜빈 레이맨 교수가 있었다.

도이처가 처음으로 명확하게 짚어내려 한 것은 소위 신좌파가 어떻게 과거의 급진적 그룹들과 다르며 그 주장의 내용이 실용주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은 방향을 고수하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였다.

도이처 :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는 각각의 언어와 각각의 맥락에서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에서조차도 그 술어적 혼란이 정신적 혼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몇년전 어떤 저자들은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선포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들의 선포문을 자세히 본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공산주의와 맑시즘의 종말'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진부하고 흔하며 반동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대신 이데올로기의 종말이라는 잘 꾸민 경구를 사용한 것입니다.

사회를 바꿀 방법에 대한 위대한 포부와 사상들은 구식이고 버려져야 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주장한 이데올로기의 종말은 실은

그들 자신의 이데올로기의 종말이었고, 그들 자신의 무저항주의이자 사회와의 화해였습니다.

이러한 '예언자'들 은 여러 전향한 좌파,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라는 단어의 다른 의미도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맑스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맑스의 이데올로기 개념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과는 꽤 다릅니다. 이데올로기란 허위의식이고, 거짓된 생각이었고, 무의식적으로 상황을 숨겨 그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하기 위해

사회의 다양한 계급들이 만들어내는 물신이었습니다.

이러한 맑시스트적 관점에서 볼 때 프랑스 혁명의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라는 표어는 이데올로기의 표현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실제는 부르주아적 사회질서의 결정화였습니다.

현실을 가린 이데올로기적 베일이 곧 '자유, 평등, 형제애'였던 것입니다.

전향한 좌파들이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주장할 때 그것은 실제로는 '나는 존중받는 사회로 돌아가겠다. 더 이상 존재하는 질서의 요새를 강습하지 않겠다.'라는 뜻입니다.

소위 신좌파라고 불리는 여러분 중 일부는 실용주의에 찬동하며 모든 이데올로기를 뒤로 하고 싶어합니다.

이는, 실제로는, 사회와 사회의 변화에 관한 모든 위대한 사상을 멀리하려 시도하며 실용주의를 수용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실용주의 또한 사상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실용주의와 이데올로기를 교환해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틀렸습니다.

그건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다른 것으로 바꿀 뿐입니다.

실용주의는 '실용적인 성공, 실용적인 이득 -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 판단 기준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데올로기적 평가이며 따라서 다른 모든 것과 같은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나저나, 멀리할 이데올로기가 있긴 합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이 버리고 싶어하는 그 이데올로기를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정말 이데올로기와 실용주의를 교환하려 하는 것이라면, 왜 여러분은 자신들을 신좌파라고 부릅니까? 그 강령에 새로운 게 무엇이 있습니까?

실용주의는 미국 철학 사상만큼이나 오래되었는데요.

가장 주의가 얕은 구경꾼조차 여러분이 자신을 신좌파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러분이 새로운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 전 세대의 마르크스주의자, 레닌주의자, 혹은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자신들을 구분짓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구세대가 그리 잘 해내지 못했고, 따라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은 꽤 옳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새 시작을 하고 자신들을 신좌파로 부른다, 이는 상당히 깨끗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여러분이 '새로운 사람들'입니까? 여러분이 젊습니까? 젊은 사람들도 아주 낡은 생각으로 시작하면 금세 아주 늙을 수 있고, 확실히 이것이 여러분의 나이가 실제로 어떤가보다는 더 중요하게 고려할 점이죠.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이 지지하는 새로운 생각이 무엇인지 정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여러분이 구세대에 반대하며, 구세대의 사상에서 반대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만약 그저 '이것이 이데올로기의 종말이다'같은 말을 할 것이라면, 여러분은 그들의 파산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파산은 출발점이 될 수 없습니다.

신좌파로 불리는 여러분을 묶는 것은 실제로는 자기만족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며 살찐 동시에 멍청한 부르주아 사회에서 비롯했으며 또 이에 반대하는 감정적 소외인 것은 명백해보입니다.

화이트맨 : 불만은 공통분모의 일부이고, 따라서 이는 실용주의입니다. 그러나 주된 요소로 제가 생각하는 것은 휴머니즘입니다.

도이처 : 휴머니즘은 세대를 걸쳐 모든 정치적 운동, 이데올로기, 종교와 정당의 공통 분모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부터가 휴머니즘은 공통 분모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존슨 대통령에게 당신이 휴머니스트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렇소. 나는 휴머니스트요.'하고 답할 것입니다.

히틀러조차도 그 자신을 휴머니스트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저 인류 중 몇몇 분류를 인간 이하로 대했을 뿐입니다. 휴머니즘을 여러분은 어떻게 해석합니까?

화이트맨 : 휴머니즘은 각각의 인간을 비할 데 없이 귀중한 것으로 여깁니다.

도이처 : 이런 정의는 너무 막연하고 너무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어떤 뜻도 지니지 못합니다. 휴머니즘은 각각의 인간을 비할 데 없이 귀중한 것으로 여긴다 - 이는 아주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옛 기독교나 옛 유대교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신좌파의 사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 자신들을 옛 기독교인이나 옛 유대교인으로 부르진 않습니까?

화이트맨 : 우리에게 그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도이처 : 잠시만요, 정치적 명칭은 아기 때 세례에서 받아서, 성인 때 바꿀 권리가 주어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좌파라는 말은 정치적 태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워첼 : 신좌파라는 말로 우리는 30년대의 급진주의적 그룹과 대응하는 우리 세대의 그룹을 뜻합니다.

도이처 : 당신은 여기서 '' 좌파와의 연결과 단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과 같은 동시에 또 다르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신좌파가 30년대의 급진주의적 그룹과 대응합니까?

그들은 존재하는 사회적 질서에 대한 반대와 이에 대한 타도 혹은 변혁을 위한 포부를 보였습니다. 여러분은 사회를 바꾸길 원합니까? 그리고 또 어떤 종류의 사회로 이를 대체할 계획입니까?

여러분은 생산수단의 사회적 통제와 사회적 소유를 여러분과 다른 사람들의 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원리로 봅니까? 다른 말로, 여러분은 사회주의자입니까?

저는 신좌파가 자신들을 사회주의자로 여기는 이들과 비사회주의적 급진주의자로 표현될 수 있는 이들 간의 타협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주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중요하며 지금 미국과 같은 곳에선 특히 더 그렇습니다. 그들은 베트남 반전운동이나 민권운동같은 특정하고 제한된 목표를 위해서는 협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와 비사회주의자의 간극은 약간의 불안정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중대한 것이며 그 이유는 두 그룹은 사회의 조직에 있어서 각기 다른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자가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비사회주의자와 다른 맥락에서 볼 것은 꽤 명백합니다.

후자는 인종문제가 존재하는 경제적 사회적 질서를 유지한 채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사회주의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회적 구조 안에서라도 흑인들의 권리를 향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오직 다른 종류의 사회만이 인종차별을 없앨 것이다."

급진주의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다른 대통령은 분별있는 외교정책을 펴서 우리가 지구 한쪽 끝이나 다른쪽 끝에서 일어나는 불쾌하고 불공정한 전쟁에 뛰어들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사회주의자는 다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회적 시스템을 가진 한 어떤 대통령을 선택하든 간에 여러분의 나라가 일으키는 제국주의적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접근법과 결론에 있어서 사회주의자와 비사회주의자의 차이는 꽤 주요합니다. 이는 차이나는 관점과 포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은 오직 약화시키기만 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빠르든 늦든 이를 돌파해야 합니다.


워첼 : 오늘날의 신좌파는, 아마도 마지못해, 억압받는 소수자들, 인종적이고 경제적으로 억압받는 이들에게 전선을 그으려 합니다.


도이처 : 억압받는 소수자라고요? 그렇다면 사회의 대다수는 억압받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이 나라의 백인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억압받지 않습니까?


워첼 : 억압받는 정도가 다릅니다.


도이처 : 다른 말론 두배나 세배로 억압받는 이들에게만 호소한다는 뜻이군요. 명백하게 그런 소수자들은 권력에 저항하는 어떤 부름에 있어서도 더 쾌히 응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운동이 오직 소수자에게만 기대었을 때 어떤 사회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데이비스 : 저는 전체 사회가 우리의 꺼림칙하고 깊이없는 문화와 함께 억압받고, 소외되고, 좌절하고, 불만족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도이처 : 당신은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매우 맑시스트적 개념입니다. 자신의 사회적 기능으로 인해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본가의 생각과 정체성도 왜곡된다고 맑스 자신이 말했습니다.

자본가들 또한 그들 자신이 대표자이기도 한 시스템의 희생자라고 맑스가 거의 열정을 가지고 말하는 문단들이 있습니다.

시스템이 억압하고 억압받고 이들을 인간의 캐리커쳐로 그려내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물질적 그리고 정치적 이익이 유산계급에게 이 시스템을 방어하도록 만듭니다.

노동계급은 이를 묵과할 수도 있으나 이를 유지하는 데엔 어떠한 이익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해의 부족과 허위의식으로 인해 그것을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노동자와 대주주를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현실에서 애써 눈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레이만: 우리는 미국에서 대단히 높은 수준의 계급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노동 계급이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에서 말입니다.

잠깐 신좌파의 목표가 사회적 질서의 현재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이 안에는 1930년대 주류 급진주의적 사상과의 연결점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여전히 두 운동 간에는 사고방식에 있어서 주요한 차이가 남아있습니다. 1930년대의 급진주의자들은, 물론 지식인들의 지원을 받아서, 혹은 심지어 그들의 인도를 받은

노동계급이 변화의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이해하는대로라면, 그 초기의 태아를 C. 라이트 밀스로부터 받은 신좌파는, 이런 개념을 폐기했습니다.

그들의 폐기는 노동계급이 급진 지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실용적' 판단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의 모든 투쟁성이 높은 임금과 나은 조건을 확보하는데 향했습니다.

이는 빵과 버터 투쟁이었지, 계급투쟁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신좌파는 - 이렇게 저는 수십년전 의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을 변화를 주도하는 이들로서 의존할 수 없고, 다른 그룹들에 의존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어떤 그룹? 인텔리겐치야나 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