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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마항쟁

부마항쟁과 관련하여 좀더 엄밀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은 시위의 주체가 누구였나 하는 점이다. 박정희는 부산의 데모는 선량한 시민보다 “식당보이나 똘마니들”이 많지 않았냐면서 “그놈들이 어떻게 국회의원의 사표를 선별수리 하느니 뭐니 알겠는가. 신민당에서 계획한 일인데”라며 시위의 배후는 신민당이고, 데모에 나선 것은 “식당보이나 똘마니들”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 ‘똘마니들’이 역사를 바꿨다. 부산시경의 <79부마사태의 분석>이란 보고서를 보면 “20세 전후 불량성향자 대학생 가장 합세(때밀이, 식당종업원, 공원, 구두닦이 등)”를 “데모의 특이양상”으로 지적했다. 특히 “야간이 되면서 시위대는 도시룸펜, 접객업소 노동자, 영세상인, 반실업상태 자유노동자, 무직자, 구두닦이, 식당종업원, 상점종업원, 고교생 등 도시하층민이 중심이 되어 시위를 주도”한 것이다.

















- 광주민중항쟁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중요성을 지적한 논평가는 거의 없었지만, 내가 인터뷰한 많은 참가자들은 그들을 전투적 저항의 중심에 올려놓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박남선은 이렇게 기억했다. “깡패, 도둑, 가지즉은 군대에 맞서 하나의 공동의 정신을 공유했고..... 시민군 내에서 하층계급 사람들이 가장 잘 싸웠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나가라고 할 때, 창 녀, 식당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기꺼이 우리를 숨겨줬어요.” —윤영규, 정해직




봉기 초반 기동타격대의 여러 대원들과 5월 27일 오전 도청에 남았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룸펜이었다. 헌혈하겠다고 주장하던 성판매 여성, 실업자와 반실업자, 구두닦이와 고아 등 주변화된 사람들의 참여는 주목할 만하다.

















얘기가 나와서 일부 내용 추가하여 다시 올려봅니다.

4.19혁명에서 도시 하층민의 참여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니 빼고 두 항쟁 관련 텍스트만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