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중적인 분석은 수천 명의 육체로 훈련 된 움직임을 상연하는 집단 안무(퍼레이드, 대형 경기장에서의 집단 공연 등의)를 원-파시즘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그와 동일한 현상을 사회 주의에서 발견한다면 아마 두 ‘전체주의’ 간의 ‘깊은 연대성’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전형적 분석은 핵심을 놓친다.35) 그런 집단 공연은 파시즘에 고유한 게 아닐뿐 아니라, 좌파나 우파에 의해 전유되기를 기다리는 ‘중립적’인 것도 아니다. 파시즘은 그것의 원래 창조자인 노동자들의 운동으로부터 그 것을 훔쳐서 자기화한 것이다.36) ‘원-파시즘적’인 요소들 중 어느 것도 그 자체로 파시즘적인 것은 없다. 그것들을 ‘피시즘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단지 그것들의 특수한 분절(전치)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용어로, 이 모든 요소들은 파시즘에 의해 ‘탈-적응된(ex-apted)’(굴절-적응)된 것이 다. 다시 말해서, ‘문자 앞에 선 파시즘(fascism avant la lettre: 파시즘 이전의 파시즘)이란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일련의 요소 다발로부터 파시즘을 만 든 것은 문자 자체(명명)이기 때문이다.37)

 김선규. (2019). "하이데거의 국가론 그리고 나치즘 -하이데거 독자로서의 지젝-"에서 발췌해봤음.

 

 뇌피셜로 요약해보면 뭐만 하면 파시즘적이다, 라는 건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는 거임. 사실 다양한 행위나 표현들은 원래부터 파시즘적인 것이 아니라 나치가 그것의 의미를 가져와 악용한 것인데, 마치 처음부터 그것이 파시즘을 길러낸 것처럼 말한다는 것임.

 거칠게 비유하자면 독초가 자라난 땅은 비옥해서 자라난 것이지, 독초가 자라나야 하는 운명적 토대는 아니라는 거.

 흥미로워서 한번 끄적여봤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