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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의 대두와 시장의 성장으로 인해 근대 들어 형성된 서구 민족주의와 달리, 우리는 이미 남북국시대부터 꽤나 중앙집권적인 통일 국가를 갖췄다. 우리 민족은 전근대 국가의 백성이 구국을 위해 외적과 싸우던 전통을 갖고 있다. 봉건 지배층에 대항하던 동학농민군도 ‘보국안민 척양척왜’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러한 풀뿌리, 저항적 민족주의를 서구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데 쓰이는 일반론으로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나라의 위기에 외세를 끌어들이는건 항상 지배세력이었다.(민비를 생각해보라!) 민중은 누구보다 자주적이고, 애국적이었다.

반일이 계급 문제를 가리는데 이용되어온 것은 사실이나, 그건 ‘부르주아적’ 반일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반일이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는 그 특성상 일본의 기술과 자본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재벌과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진정한 의미의 ‘반일’을 할 수 없다. 노동자 민중의 반일이야 말로 진정한 반일이다.

동해-일본해/ 독도 영유권 문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등에서 한국 정부의 편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좌파가 계급전선 뿐 아니라 반제전선에도 복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전선은 사실 하나다. 예나 지금이나 제국주의는 자본주의를 유지시키는 기반으로 기능한다. “대한민국이나 일본국이나 똑같은 자본가 나라”라는 논리로 중립을 선언하는 것은 곧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투항이다. 한국을 아류 제국주의로 보는 의견이 있으나, 그것은 한국이 동남아 등 제3세계 국가를 향할 때 지적할 문제이지, 일본을 향할 때 꺼낼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문제에서 가해자는 전적으로 일본이다.

일본에서 우리 민족에 대한 침탈과 억압 역사를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집단이 아베를 위시한 자민당 수구세력이기 때문에, 우리의 반일은 곧 일본의 양심적인 민중들과 지식인, 진보세력과의 연대를 도모할 수 있다. “독도나 다케시마나, 동해나 일본해나 좌파에게는 의미 없다”는식의 태도는 일본 우익의 힘만 키워줄 뿐이다.

이러한 (서구와 구별되는) 우리 민족의 특수성, 반제국주의 전선, 반자민당 전선을 간과한 채 한일 문제에서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결코 ‘계급적’이지 않다. 제국주의 시대에서, 반제국주의는 곧 가장 높은 수준의 계급투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