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슨 바로 동중서 이후의 한나라 시기.




물론 계량주의 비판적 사고 그까이 거 없지만은 일단 관찰되는 자연 현상으로부터 얻은 데이터로 이론을 구축, 정당화하는 방식을 주장한 건 마따




이들이 가진 특색은 고머 그리스의 물이 근본이다 이러던 양반들과 달리 단순히 세계의 구조가 어떤 지를 탐구하는 걸 넘어서서 그걸 가지고 국가와 인간의 본질같은 소위 '인문학적 질문들'에 답하고자 했다는 거임.




동물 생태계의 양상을 근거로 사회에 필수적인 규범이 무엇일 지를  알아낸다던가 사람이 신체구조를 탐구해서 인간의 본질을 알아내려 한다던가 요런 식임.




요즘에 뇌를 보고 윤리학과 연결시키겠다 뭐 이러는 거랑 비슷한 것이제.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춘추번로으 위인자천편을 보믄 동중서는 인간이 인간을 기를 수는 있어도 스스로 만들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함.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연(천)에 의해 만들어지지. 따라서 '인간다움', 즉 인간의 본질이란 어디까지나 자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말.



또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나왔기에 자연과 동질성을 가지고 있으요. 인간은 자연의 질서를 인식하여 24절기를 나누는 등 그것에 이름을 부여하고 사계절에 따라 농사를 지으며 가축을 부리는 등, 자연과 공유하는 동질성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감응하고 살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의 질서를 인식하고 거기에 맞춰서 문명을 세워야 된다는 게 동중서으 주장임.





이런 한대유학의 사조는 한나라 내내 발전하다가 위진시대부터 주류에서 밀려나기 시작함.




이는 이들의 이론이 오행설 가지고 오등작을 옹호한다던가 현실과 잘 안 맞는 측면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뭣보다도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이론 문제가 컸음.




구체적인 사물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발견될수록 일원적이고 통합된 우주에 관한 이론을 제기하기 어려워져갔거든. 그래서 후대로 갈수록 한대유학자들의 우주론은 복잡해져갔음.




결국 관찰되는 것만으로는 세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대두됐고, 위진시대에는 이것이 관찰되지 않는 '무'에 대해 탐구하는 도가 현학으로 나타난 것.




이후 성리학에서 이들으 천인합일 사상 등과 함께 여러 관념들을 수용해가고, 한대유학자들과 같은 실증적 연구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졌지만,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 탐구가 주류여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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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른 갤에 썼던 글. 동양권이 실증적 탐구를 좀 더 중시했던 것은 맞음. 이게 '유물론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실제로 저때 학자들 중에는 머리 뼈 모양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추론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사람도 있음. 한나라 이후론 망했다지만 뒷 시대에도 이런 관점은 꽤나 영향력을 발휘하고.
다만 이걸 유물론이라 하기엔 이 기氣라는 개념의 특수성이 늘 걸리지. 기는 그냥 물질이라기보다도, 비물질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연속적인 혼합체에 가깝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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