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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조선학교’가 있습니다.
북의 사회주의 체제에 우호적인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학교로, 일본에서도 민족교육을 통해 민족의 존엄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2010년 고교 무상화 제도에서 자국 내 외국인 학교 중 유일하게 전국 10곳의 조선학교만 배제했습니다. 지난해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 해당)는 이런 조처가 ‘합법’이라 쐐기를 박았구요. 아베 정권은 작년부터 시행된 유치원 무상 정책에서도 조선유치원을 배제하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사실 일본 당국의 조선학교 차별은 유서깊습니다. 1948년 일본 문부과학성은 ‘조선학교 폐쇄명령’을 내립니다. (이 조치에 불만을 품은 재일동포들은 4‧24 한신교육투쟁으로 일본 경찰에 맞섭니다.) 이 폐쇄령 배후에는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압박이 있었습니다. 해방 당시 제8군 사령관 로버트 아이첼버거 중장의 일기가 그 증거가 될듯합니다. 일기를 보면 1948년 4월 시점에 ‘조선에서 일어난 폭동’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제주 4‧3사건을 말하는데 그는 일본의 조선인들이 ‘빨갱이’와 연대해 재일점령군(미국 극동군)을 곤란에 빠트릴 데모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위험성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의 반공, 냉전주의적 인식이 조선학교 차별의 근본 원인인 것입니다. 그때 생겨난 억압과 차별이 교육 문제, 소수민족 문제 등으로 다변화되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학교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하나를 위하여>의 수록곡으로 짧은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하나


내가 태어난 때부터
사랑하는 조국은 둘이었네
슬픈 역사가 이땅을 갈라도
마음은 서로 찾았네 불렀네
볼을 비빌까 껴안을까
꿈결에 설레만 가는 우리
처음 보아도 낯익은 얼굴아
가슴에 맺힌 이 아픔 다 녹이자
함께 부르자 함께 부르자
이 기쁨을 누구에게 들릴까
이 노래를 이 춤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들에게

어린 품속에 그려본
사랑하는 조국은 하나였네
오랜 세월에 목이 다 말라도
마음은 서로 눈물로 적셨네
볼을 비빌까 껴안을까
반가와 이야기 나눈 우리
처음 보아도 낯익은 얼굴아
이땅에 스민 이 눈물 다 말리자
함께 춤추자 함께 춤추자
이 기쁨을 누구에게 보일까
이 노래를 이 춤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들에게


하나로 되자 하나로 되자
이 기쁨을 누구에게 전할까
이 노래를 이 춤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