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은 진리를 즉자적인 보편자로 간주하고자 하였던 고구(故丘)의 철학자들―칸트, 야코비, 피히테, 셸링―을 비판합니다. 진리는 그 자체로 무한한 자기 부정―절대적인 타재성―, 즉 무한한 부정적 관계 속에서 매개된 것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진리는 전체(Das Wahre ist das Ganze)”(II, 15; 76.)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를 어떠한 즉자적인 보편자, 낱말로 제시하고, 이러한 사유에 ‘근거’를 부여하는 데 있어서는 거기에 따라오는 여러 자의적 인상을 들추거나 환기하는 것에 그칩니다. 종교적 인상에 뿌리를 박은 ‘진리’는 “진리는 신”이라는 말의 당위에 의존하고 이는, 직접적인 충격으로써 와닿는 능력, 즉 ‘(자의적으로 구상된) 신의 능력’에 대한 무조건적 경배에 의존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진리’를 언급함에 있어, "이것의 진리는 저것이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제시에 있어 그것이 매개된 직접성―자신에 대한 부정을 되먹은 것으로서―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것에 있어 진리’가 ‘저것’이라는 낱말과 동격으로 됨을 드러낼 뿐이라면 역설적으로 제시된 것은 전혀 진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것에 대한 진리란 단순히 그 어떠한 것에 포섭된 정형화된 규칙의 형태가 아니며, 어떠한 즉자적 개별자와 동격일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헤겔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말하자면 시원이나 시초 혹은 원리나 절대자라는 말을 우선 직접적으로 언표된 상태에서 보면 그것은 보편자, 보편적인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예를 들어 내가 「모든」 동물이라는 말을 한다고 해서 이 한마디가 곧 동물학에서 취급되는 모든 내용을 통틀어 나타내줄 수는 없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신적이거나 절대적인 것 혹은 영원한 것이라는 등의 낱말도 역시 그 말 속에 내포된 모든 의미를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낱말은 단지 직접적인 어떤 것을 지칭하는 데 지나지 않는 직관을 가리킬 뿐이다." (II, 16; 77.)
더 나아가, 진리란 자기 자신에 대해 시종일관 긍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진리가 완전한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통속적 사유와 결합하게 될 때, 어떠한 것이 모순적이라면 그것은 즉시 진리와는 무관하다고 간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됩니다. 하지만 모순 또는 모순적 지와 이를 이루는 계기를 자체 내에 포괄하며 총체성으로 되어 있는 것이 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것이란 필시 모든 현상이 발생하고 사멸하는 내적 원리를 자체 내에 간직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현실적 모순을 진리의 존재 양식으로부터 배제한다면 이는 진리가 ‘완전하지 않은 완전한 것’임을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따라서 진리는 추상적으로 생각되어질 즉자적 긍정성, ‘무모순성’마저 부정하고 그것을 자기 존재의 내적 계기로 삼는, 엄연히 모순적인 것으로서도 간주되어야 합니다. 결국 "진리는 전체"라고 하였을 때 이 ‘전체’란 "오직 스스로의 전개과정을 통해서 자기완성을 기하는 바로 그러한 존재"(II, 16; 76-77.)이며, "하나의 타자화작용(Anderswerden)이면서 동시에 밖으로부터 재차 자신에게도 복귀되어야만 하는, 즉 매개성을 띠는 것"(II, 17; 77.)입니다. 매개란 "오직 자발적 운동을 통해서 얻어지는 자기동일성(Sichselbstgleichheit)이려니와 이를 또 달리 표현한다면 자기 자체 내에서의 반성과 대자적인 존재로서의 자아의 계기이며 나아가서는 순수부정성"(II, 17; 77-78.)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부정을 필연적 계기로 지니는 구별이나 상이성마저 포괄합니다. 소위, 우유(偶有)한 것마저 자기의 사지로 지니는 것이 진리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란 이것들을 사상한 ‘순수한 것’이 아니라 온갖 잡다한 것을 자기의 피(被)산출자이자 자기의 계기로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헤겔은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진리란 결코 진짜 금속에서 광재(鑛滓)를 골라내 버린다거나 혹은 그릇을 다 만들고 난 뒤에는 그것을 제작하는 데 사용된 도구를 치워버리는 경우와도 같이 양자간의 비(非)상등성 자체가 소멸되고 난 뒤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상등성은 부정적인 것이거나 혹은 다름아닌 자기(das Selbst)로서의 참다운 진리 속에 직접적으로 현존해야만 한다. [...] 허위적인 것에는 언제나 약간의 진리가 담겨 있다는 식의 표현은 마치 도저히 융합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만 외적·표면적으로만 결합된 데 지나지 않는 기름과 물의 관계를 놓고 하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그야말로 참과 거짓이 쌍방간에 지니는 진정한 의미, 즉 그들이 결코 상용될 수 없는 완전한 타재성의 계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만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타재성이 지양돼 버린 상태에서 더이상 참과 거짓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 일상적인 지의 영역이나 또는 철학의 연구가 행해지는 곳에서 이를 주도하는 사고방식이 독단론으로 치우친다는 것은 결국 진리를 하나의 고정된 최종적 결과이거나 또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인지되는 명제 속에 있다고 보는 속된 견해에서 기인된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II, 29-30; 98-99.)
헤겔에게서 정신이란 자기전개의 성과물을 자기 계기로 지니고 있으면서 자신을 부단히 부정하는 구체화 작용을 의미하는데, 이는 한편으로 진리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헤겔에게서) 정신은 절대자(Absolute)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는 오직 체계 속에서만 구체화될 수 있다는 것과, 더 나아가서 실체는 본질적으로 주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모두가 절대자를 곧 정신으로 표명"(II, 19; 82.)하는 것입니다. 〈전도된 헤겔〉을 추구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자는 정신이 아니라 물질을 구체화 작용의 주체로 상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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