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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미국 노동자의 대부분이 하루 10시간, 1주일에 6일을 일하였으며, 노동자들의 1년 소득은 약 400~500달러 정도로 생계에 필요한 최소액이었던 600달러에 못 미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노동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하였다.

1886년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 위하여 미국 각 지역에서 파업과 시위가 발생하였다.
5월 1일에는 미국 전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 위해 파업에 동참하였다.

특히 이때 시카고에서는 매코믹수확기회사에서 파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5월 3일 매코믹 공장에서 경찰이 발포하여 파업 노동자 4명이 사망하자, 다음날인 5월 4일에 노동자들이 경찰의 폭력을 규탄하기 위해 시카고의 헤이마켓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으나, 경찰이 집회를 해산시키려고 하자 누군가가 경찰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다.
이에 경찰은 발포를 감행하였고, 이로 인해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이후에 집회를 주도한 노동운동가 8명이 폭동죄로 체포되어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충분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7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결국 1명은 자살하였고 4명이 사형되었으며 2명은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만약 당신이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는 있다.
그러나 사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 이때 사형당한 어거스트 스파이스의 최후 진술 중 일부

1893년 일리노이 주지사였던 존 피터 알트겔드가 '헤이마켓 사건'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노동운동가 3명을 사면하였다.
이로 인해서 알트겔드는 공화당과 보수파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후 선거에서 패배하게 되면서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삶이 끝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래와 같이 말하며, 자신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전혀(Never)! 만약 같은 사안을 내일 다시 다뤄야 한다고 해도, 난 똑같이 행동하겠소."

1889년 7월,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헤이마켓 사건'을 계기로, 1890년 5월 1일을 '노동자 단결의 날'로 정하여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한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를 계기로 1890년 5월 1일 첫 노동절 대회가 개최되었고,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5월 1일'을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국제적 기념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